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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오기 전에!

(요한복음 9장 4절)

피종진 목사 (세계복음화협의회 대표총재)

밤이란 자기반성의 때이며 경건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찬미하며 기도하기 좋은 때이나, 불경건한 자나 악한 자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만을 계획하며 행하게 되는 때이기도 합니다. 한편 밤이란 어둡고 답답한 세계를 말하며 기쁨도 아름다움도 다 없어져버리고 무기력해진 때를 일컫기도 합니다.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시는 예수님 앞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개개인의 질병이나 고난이 그의 죄의 결과라는 인과적 관념에 젖어있던 제자들은 이같이 소경으로 출생한 경우는 그것이 본인 자신의 죄의 결과인지 혹은 그 부모의 죄의 결과인지 궁금하여 예수님께 질문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대답은 자신의 죄의 결과나 혹은 부모의 죄의 결과도 아닌 오직 인간의 불행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나타내고자 하심임을 말씀하시면서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밤’이란 주께서 그의 공생의 일을 마치시고 하나님께 가실 것을 가리킨 말씀입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에게는 어느 누구에게나 일할 수 없는 밤이 반드시 오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이 밤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1. 기력이 쇠하여져 어떤 일도 하기 힘들어지는 노년의 때를 의미합니다.

인생에게는 동녘에 떠오르는 태양처럼 생명이 출생되는 신생아기가 있는가 하면 정오의 햇살같이 강렬한 정열적인 청년기가 있으며, 서산에 해가 기울여 잠시 후면 밤이 찾아올 황혼의 노년기가 있습니다. 그런고로 지혜와 부귀영화를 한 몸에 누렸던 솔로몬왕은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때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해와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그리하라”(전12:1-2)고 기록하였고, 이어서 무기력해진 인생의 노년기에 대하여 표현하기를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어다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원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노년기에 이르른 인생을 비유한 것인데 아무리 힘 있는 영웅호걸 열사라 할지라도 인생 황혼기에는 모두가 기력이 쇠하여져 허리는 구부러지고 마음마저도 나약해져 어린아이 같이 되며 치아는 하나씩 빠져서 맷돌질의 역할을 감당해내기 어렵고 사물을 바라보던 창과 같은 눈은 시력이 약하여져 제대로 분별키 힘들며 검고 윤기 흐르던 머리카락은 살구꽃같이 희어지게 되며 만사에 의욕이 상실되고 결국에는 그렇게도 알뜰히 가꾸고 다듬던 육체는 본연의 위치인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런 날들이 오기 전에 위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아래로는 각자 주어진 위치에서 사명에 충실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할 것”(사40:30, 31)이라고 하였습니다.

2. 원치 않는 질병으로 인하여 일할 수 없는 병상의 밤을 의미합니다.

인생이 소원하던 부귀영화, 명예 권세를 다 소유했다 할지라도 질병으로 인하여 건강을 잃어버리고 병상에 몸져눕게 되어버린다면 모든 것이 다 수포로 돌아가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질병이란 인간을 나약하게 만들며 의욕마저 상실하게 합니다. 건강할 때 주님 앞에 나아오십시오. 그리고 다섯 달란트 맡았던 착하고 충성된 선한 청지기가 되십시오. 요사이 새로 등록하는 교우들 중에는 과거 신앙생활을 잘하지 않다가 몸에 질병이 생김으로 인하여 뜨겁게 회개하며 새로운 신앙의 결심을 가지고 새 출발을 하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그들이 한결같은 고백은 “병이 들기 전에 좀 더 충실히 주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됩니다. 이제부터는 열심히 신앙생활 하겠어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여지게 되기 때문이며(요삼1:2), 주님께 붙어있기만 하면 또 주님 안에 거하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해주시마고 주님은 약속하셨고(요15:1-6),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여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뛰게 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말4:2). 혹시 여러분 중에 질병으로 인하여 고통과 좌절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지금 곧 만병의 대 의사가 되시는 예수님께 믿음의 손을 내밀고 주의 도우심을 간구하십시오. 주님은 인간의 죄뿐만 아니라 질병까지도 친히 담당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주님 앞에 두 손 들고 나아와 간구하기만 하면 그 믿음을 보시고 질병에서 구원해주십니다.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살아온 분은 질병의 밤이 찾아오지 못하도록 기도하며 열심히 주님 위해 주 뜻대로 살아가십시오. 쓰는 칼에 녹이 슬지 않고 흐르는 물에 이끼가 끼지 않듯이, 충성된 자는 모세와 여호수아처럼 장수하며 기력이 쇠하여지지 않고 눈도 흐려지지 않는 영육의 축복을 보장받게 됩니다.

3. 인생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의 밤을 의미합니다.

죽음이란 그 누구도 면할 수 없는 것이며, 면제받을 곳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죽음을 예감하는 본능의 언어인 밤을 원시인들은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히9:27)이라는 것은 진리입니다. 또한 죽음이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연장자보다 연소자가 먼저 갈 수도 있고, 부모보다 자식이 먼저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또 가로되,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두리라” 하며, 물질의 풍성함으로 인하여 즐거워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그는 죽고 마는 하나님의 엄위하신 심판을 받습니다. 이는 아무리 풍성한 재물이라도 생명을 보장할 수는 없음을 암시한 내용의 말씀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죽음이란 차별이 없고, 공평하며 정직하게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오늘”이라는 이 순간을 중하게 여기고 오늘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내일은 나의 날이 아닙니다.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시며 연대를 정하시는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하루 1,440분이라는 시간적인 삶의 선물을 보람 있게 받아서 보람 있게 활용해야 합니다. 불가능이란 단어를 자기 사전에서 빼어버린 세계적 영웅 나폴레옹은 말하기를 “시간 이외의 것이라면 무슨 소원이든지 들어줄 수가 있지만, 시간에 관한 것만은 들어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는 아무리 위세 당당하던 나폴레옹이라 할지라도 시간만큼은 인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불가능한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메뚜기라도 짐이 될 수밖에 없도록 기력이 다 쇠하여진 노년의 밤이 오기 전에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실망과 좌절만이 엄습하는 질병의 밤이 오기 전에 △어느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사망의 밤이 오기 전에, 여호와를 경외하십시다. 맡겨진 달란트를 잘 활용하십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밤이 오기 전에 후회 없는 삶을 영위하려고 수고하며 노력하는 모든 분들의 삶이 주 안에서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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