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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야 할 한계

(요한복음 11장 1-4절)

이규섭 목사 (퀸즈한인교회 담임)

한 성도가 갑자기 무서운 병에 걸려 병명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가정은 주님께서 아주 사랑하시는 특별한 가정이었습니다. 환자의 누이 마리아는 한때 예수님의 발에 향유로 붓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입을 맞출 정도로 귀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가정에 큰 위기가 닥친 것입니다. 절대절명의 위기 가운데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 급히 오십사 부탁하였습니다. 그나마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 수 있다는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충격적인 사실은 마리아 가정이 이처럼 급박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찾아가 도와주시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이틀을 더 그곳에 머무는 동안 나사로는 죽고 말았습니다. 성경을 눈을 씻고 찾아도 그 이틀 동안 뭐 대단히 중요한 일을 하신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대부분 성도들은 상식적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니 모든 일들이 잘 될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합니다. 많은 경우 사실입니다.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원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고난을 겪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많은 경우 우리의 신앙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 한계를 넘어서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께는 악을 허용하셔서 그분의 선하신 뜻을 이루기도 하십니다. 아빠가 아들을 안고 바다로 들어가면 처음엔 재롱떨고 좋아하던 아이가 점점 깊은 곳으로 가서 자기 발이 땅에 닫지 않으면 불안해합니다. 불안하니까 온 힘을 다해 아빠를 꽉 잡습니다. 아이는 얕은 물에서만 놀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한계를 넘어서길 원하십니다. 마리아는 정말 귀한 신앙을 가진 자매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의 신앙은 죽음이라는 한계를 넘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사로가 죽을 것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마리아 가정이 그 한계를 넘어선 믿음을 경험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한계 안에서 사랑할 수 있습니다. 믿을 수도 있습니다. 봉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계를 벗어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원망과 시비와 좌절뿐입니다. 그런 부족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한계의 틀을 깨뜨리시길 원하십니다. 한계를 뛰어넘는 순간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교제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요한복음 11장부터는 노골적으로 죽으러 오신 주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특히 11장에 기록된 죽은 지 나흘이나 되는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은 장차 있을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해 주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손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주님이 하신 대답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 하시더라”(4절). 이 말씀을 들을 때 약간 신앙이 떨어지면 상태라면 어떻게 들리나요? ‘병 주고 약주는 것 아닌가? 애시 당초 병을 주지 않으시면 될 것이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디서 오해가 되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자신의 능력을 보이시기 위해 멀쩡한 사람 병 걸리게 했다가 낫게 해주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면 하나님께는 영광스럽게 되겠지만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결코 행복스럽지 않습니다. 오해죠.

우리 오해를 풀어 봅시다. 일단, 병들어 죽게 된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죄 가운데 타락한 인간이 스스로 자초한 일입니다. 질병도 그렇고 죽음도 그렇고 타락으로 인해 옥토가 엉겅퀴를 낸 것과 같은 것입니다. 물론 주님께서는 병에 걸리지 않게 하실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길 원하십니다. 무엇입니까? 사실 이러한 일들은 그저 하나님의 영광의 작은 일부분에 불과한 것입니다. 온전한 하나님의 영광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자신이죠. 그 하나님을 체험하라는 것입니다. 피상적인 우리의 한계를 뛰어 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길 원하십니다. 마치 누에고치를 뚫고 나온 나비가 넓은 세계를 경험하는 것처럼 우리의 작은 믿음의 한계를 벗어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천군천사들이 이렇게 찬양하였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이 방법 밖에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보여주신 것)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는 것은 하나님으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이 됩니까? 십자가야말로 하나님의 자기표현을 가장 정확하게 잘 드러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에게 조롱과 멸시를 당하시면서 십자가를 지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사랑의 극치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의 영광입니다. 이것을 경험함이 우리의 한계를 부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용납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간섭이 만족스럽지 않은 부분들이 있었습니까? 어려운 십자가를 요구하십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그렇게 사랑한 마리아도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늦게 오신 주님을 원망하였습니다. 이것이 그의 한계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한계를 부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저 병 낫게 해주는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를 원하셨습니다.

주님은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 앞에 서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불러내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다만 생명을 주시기위해서만이 아니라 그와 교제하기 위해서 불러 내셨습니다(요12:2,9). 바울은 로마서 5장 1-2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교제)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본문을 다시 검토해봅시다. 예수님이 베다니에 다시 돌아오셨을 때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심부름꾼이 예수님에게 가서 연락하는데 하루 정도 걸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틀을 지체했고 베다니로 돌아오시는데 하루가 또 걸렸을 것입니다.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심부름꾼이 베다니를 떠난 직후 나사로는 이미 죽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연락을 받고 있을 시점에 이미 나사로는 죽은 것입니다. 그러면 심부름꾼이 베다니에 돌아왔을 때도 이미 나사로는 죽어있었습니다. 당시 풍습에 의하면 이미 장례식이 다 끝난 상태 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혹 언제나 오실까 기다리던 마리아가 이런 질문을 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돌아온 심부름꾼에게 “예수님은 안 오시느냐?”(어떤 기대에 찬 말이 아니라 힘없이 말했을 것입니다. 이미 죽었으니 아무 소망이 없었을 것입니다) “네, 오시지 않고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라고만 하시던데요” “뭐? 죽을병이 아니라고? 벌써 죽어 장사지내 버렸는데...” 이미 장례식까지 치룬 마리아가 예수님의 하신 말씀을 들었을 때 어떻게 들렸을까요? ‘아니, 그것도 모르고 계셔? 무심하신 분!’ 하며 큰 상처를 입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나중에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마르다와 마리아의 반응을 보면 주님을 대하는 모습이 그리 반가운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한계에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주님은 이미 나사로가 죽은 지 알고 계셨습니다(14절). 그러나 이 사건을 통해 ‘죽음’에 갇힌 마리아 가정의 믿음의 한계를 부수고 더 큰 믿음을 주시고자 함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그저 좋은 일 해주시는 분 정도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분의 능력을 있는 병을 고치는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마리아의 영적 한계였다면, 주님은 이 영적 한계를 극복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죽음을 극복하신 주님의 영광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으시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어떤 모습으로든 극복하지 못했던 영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면 주님은 그 한계를 넘어서길 원하십니다. 주님의 의도대로 한계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곳에 참 교제가 있습니다. ksl019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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