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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네 시선

(고린도후서 4장 18절)

김풍운 목사 (벅스카운티장로교회)

“그래서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현대인의성경). 바울은 본문에서 자신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본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복음의 사람인 성도가 바라보는 눈에 대하여 생각하며 삶에 적용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뒤를 바라보는 눈입니다(past).

우리는 뒤를 돌아보며 후회하고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반성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후회하고 슬퍼하는 모든 일의 결박을 예수님께서 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음의 사람인 성도는 어찌할 수 없는 과거의 잘못과 허물을 가지고 자신도 남도 결박하지 않습니다. 다만 과거의 부족했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종으로서가 아니라 자유한 자녀로서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복음의 사람들의 눈에는 슬픔과 후회의 눈물이 아니라 자유와 기쁨과 온전한 평안이 만들어 내는 감사의 눈물이 있는 것입니다.

신명기 24장 18절은 “여러분은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일과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구출하신 일을 항상 기억하십시오”(현대인의성경)라고 말씀합니다. 곧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고 남이 지어놓은 훌륭한 집에서 살게 될 때 옛날에 자신들이 이집트에서 노예들이었다는 점을 잊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매년 유월절 예식을 합니다. 자녀들이 자라서 알아들을 만한 나이가 되면 처음으로 들려주는 말이 “우리는 이집트에서 바로의 노예였다”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어찌 그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입니까? “기억하다”는 “생각한다” “생각한다”는 “반추한다(ruminate)”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초식동물이 정신없이 많이 먹고 나중에 한가할 때 되새김질을 하는 것처럼 옛날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 오늘까지 베풀어주신 많은 은혜의 순간들을 되새김질하듯이 돌아보며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 믿음의 눈으로 뒤를 돌아보며 감사를 새롭게 합시다!

둘째는 옆을 바라보는 눈입니다(present).

인생을 드라이브하는 것에 비유한다면 주위를 잘 살피며 운전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바울은 이 일에 대하여 늘 조심했고 믿음의 아들 목회자 디모데에게도 여러 번 이 일을 당부했습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도 믿음에 있나 자신을 시험해 보라고 했습니다. 신호 및 속도위반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차를 몰고 가다가 가끔 경찰에 잡힌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우리 복음의 사람들은 그들을 보며 자신을 점검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찌 보면 우리들에게 정신을 차리라고 먼저 붙들린 위반자들로 우리 앞에 둔 분들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지 않았다면 그들보다 더 많이 붙잡혀야했던 범죄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보며 조심해야하는 것입니다. 붙잡히고 싶어서 잡히는 사람 없습니다. 벌금 내고 싶은 사람, 감옥에 가고 싶은 사람 없습니다. 슬피 우는 가족들 어려움 중에 있는 교회들 모두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삶과 신앙의 차를 운전해가며 늘 조심해야하고 특별히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볼 때면 자신의 방향이나 속도 운전자세 등을 점검해야 합니다.

아무리 인생 경함이 풍부해도 절대로 한손으로 비스듬히 기대어 자신만만하게 운전하지 말아야 합니다. 운전하면서 특히 조심해야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 부분(blind spot)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들 모두에게 블라인드 스팟(blind spot)이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특별히 차선을 바꿀 때는 옆을 한번 보아야 안전한 경험을 누구나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모두 스스로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부분들을 가지고 삽니다. 그 부분들을 보며 알려주는 하나님의 말씀과 진실한 분들 그리고 가까운 분들의 충고와 권면들을 반드시 참고해야합니다. 우리 모두 믿음의 눈으로 옆을 보며 조심합시다.

셋째는 앞을 바라보는 눈입니다(future).

때로 우리가 어려운 현실을 만나지만 복음의 사람들은 소망을 가지고 앞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비관적이지 않고 낙관적입니다. 부정적이지 않고 긍정적입니다. 농부가 추수할 때를 소망하고 이른비와 늦은비를 기다리듯이 우리도 소망 중에 인내하며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지난 10월 24일부터 27일까지 중동 U국에서 모인 중동선교사대회에 말씀을 전하러 다녀왔습니다. 주일날 밤 비행기를 타기 위하여 뉴욕 케네디 공항으로 가던 중 길이 막혀서 비행기를 놓치게 되었습니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출발하였는데 늦어져서 공항근처에서 자고 다음날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 대회 임원에게 형편을 말하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마음이 몹시 답답했습니다. “하나님 저희들이 실수한 것이 아닌데 길이 막혀서 비행기를 못 타게 되었으니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다른 일도 아니고 선교사님들에게 말씀을 전하러 가는 길이 막혀서 하루 늦게 가게 되어서 제 마음이 힘듭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라고 기도를 드리게 되었는데 순간적으로 “인력으로 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긴 것은 하나님이 막으신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합하여 선이 되게 하실 것이다”라는 생각이 떠오르며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 29장 11절이 떠올랐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행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요 장차 너희에게 소망을 주려 함이라” 그래서 다 하나님께 맡기고 깊이 잘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떠나 대회장소에 가서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였는데 하루 늦게 오게 되어 모두들에게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더 많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니 제 마음도 편해지고 선교사님들도 많은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준비한 설교가 모두들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었다고 감사해 하셨습니다. 특별히 선교사님들 간에 중요한 기도제목이 있었는데 설교를 듣고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는 중에 모두가 하나가 되어 기쁨이 충만하게 사역지로 가게 되었다고 회장 선교사님이 말씀해주셨습니다. 이 모두가 먹구름 뒤에 언제나 태양이 있는 것처럼 앞이 캄캄한 현실 앞에 항상 계신 소망의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또 차가 막혀서 잠시 서있게 되었는데 길가 작은 풀밭에 까만 새들이 백여 마리 정도 내려앉아서 무언가를 찾아서 먹고 있었습니다. 문득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아무런 걱정도 안하고 사는 새들을 보며 그들과 비교할 수 없이 우리들을 사랑하고 돌보시는 소망의 하나님을 생각할 때 몸은 피곤하였지만 내 영혼은 얼마나 기쁨이 넘쳤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약 14시간 동안 공중을 날아 돌아오는 동안 지난 64년 생애와 36년 결혼생활과 현재 섬기는 교회에서의 27년 사역을 돌아보며 때마다 일마다 힘들 때면 선하게 인도해주셨던 소망의 하나님을 생각하며 아내와 함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옛날 힘들 때 함께 불렀던 찬송을 조용히 읊조리며 기도할 때에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주께서 내길 예비하시네 주께서 내길 예비하시네 나의 하루 하루를 기도하며 살리라 주께서 내길 예비하시네.” 앞으로도 우리 앞을 가로막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보좌 우편에서 늘 기도해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소망을 잃지 맙시다.

넷째는 위를 바라보는 눈입니다(eternity).

우리 성도들은 뒤도 옆도 앞도 보지만 무엇보다도 위를 바라보고 살아야합니다. 먼저 하늘나라에 내 집이 있는지 보아야합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1절에서 “우리는 땅에 있는 우리 육체의 집이 무너지면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닌 하나님이 지으신 하늘의 영원한 집을 소유하게 될 것을 압니다”라고 천국에서의 영생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하늘나라에 올려 보낸 것들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모든 것을 가지고 누렸던 솔로몬은 “그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고 했는데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58절에서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고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수고는 헛되지 아니하다”고 말씀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가지고 예수님을 위하여 쓰지 않은 것은 모두 그 나라에서는 헛될 것지만 오직 예수님을 위하여 드리고 수고한 것만 헛되지 않을 것을 알게 합니다.

선교사대회 숙소에서는 집회를 할 수 없게 되어 있어서 아침식사를 한 후엔 ECC(Evangelical Christian Church)라는 건물로 옮겨가서 집회를 하였습니다. 선교사님 중 한분에게 ECC에 대하여 듣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슬람국가에서 평생 의료선교한 여선교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그 나라 왕실에서 태어난 모든 왕손들을 받아 기른 분이었답니다. 노후에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왕이 너무 고마워서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어서 바라는 것을 말해보라고 했답니다. 그 때 선교사님이 부탁한 것은 외국에서 온 크리스천들이 마음 놓고 예배할 수 있는 땅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땅을 주었고 그 땅에 커다란 건물을 짓도록 도와주므로 그 후로 그 나라에 와서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안심하고 예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안에는 각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이 53개 교회를 이루어 시간을 나누어 예배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전해 듣고 그 건물 앞에 서니 그 선교사님이 얼마나 부러운지 큰 도전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그 선교사님은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가족도 없이 살다가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얼마나 행복할까요?

우리 모두 장차 가야할 저 높은 곳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충성합시다. 복음의 사람은 뒤를 돌아보며 감사합니다(thankful). 옆을 보며 조심합니다(careful). 앞을 보며 소망을 갖습니다(hopeful). 그리고 무엇보다도 위를 보며 이 땅에 머물 동안 충성합니다(faithful). 우리 모두 이 성도가 가져야 할 시선을 점검해 봅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pwkim52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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