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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눈물과 분노

(누가복음 19장 40-48절)

장성춘 목사 (안암제일교회 원로)

불의를 보고 탄식할 줄 모르면 진정한 애국자가 아니다. 성경 역사를 보아도 꼭 불의한 왕이 죄악을 범할 때는 의로운 선지자가 나와서 경고하고 책망한 것을 볼 수가 있다. 사울 왕이 계속 교만에 빠져 있을 때 사무엘 선지자가 나와서 책망을 했다(삼상 15장). 다윗 왕이 범죄 하였을 때 나단 선지자를 보내서 책망을 했다(삼하12:9). 솔로몬 왕이 범죄 하였을 때 아히야 선지자가 책망을 했다(왕상11:29). 아합 왕이 우상을 섬기고 폭정을 할 때 엘리야 선지자가 나와서 경고를 했다(왕상18:1). 히스기야 왕 때는 이사야 선지자가 도와주었다(왕하19:1-7). 니느웨 성이 멸망하게 되었을 때 요나 선지자를 보내어 경고했다(욘3장). 예수님 당시에는 헤롯의 범죄함을 보고 세례 요한이 책망을 하고 순교당했다(마14:3). 예수님도, 세례 요한도 타락한 백성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책망을 했다(마3:7; 12:34). 하나님은 자기 선지자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신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겔33:7). 만약 경고하지 않으면 그 피값을 네게서 찾을 것이라고 했다(겔3:17-21). 오늘날의 목사에게는 제사장적인 책임을 가지고 예배를 인도하기도 해야 하지만 타락하고 잘못하는 정부와 백성을 책망할 책임도 주어져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벙어리 개”라고 하였다(사56:10).

1. 예수님의 눈물(41-44절) 예수님은 공생애 중 세 번 우셨다.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인생의 나약함을 보고 우셨고(요11:35), 겟세마네 동산에서 자기의 십자가를 앞에 놓고 우셨으며(마26:37), 오늘 본문에는 장차 멸망당할 예루살렘 성을 보면서 우셨다.

(1)예수님의 눈물은 주후 70년에 이루어졌다. “우시며”(에크라우센)의 원 뜻은 슬프고 비통함을 뜻한다. 히브리서 5:7 “심한 통곡과 눈물”이라고 되어 있다. 예수님이 내다본 예루살렘 성은 주후 70년 후에 글자 그대로 이루어졌다. 주후 70년 4월 로마 장군 디도(Titus)에 의해 9월 8일까지 5개월 동안 포위되어 있었다. 포위당한 예루살렘 거민들은 외부와의 연락이 끊어지면서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했다. 견디기 힘든 부인들이 애들을 삶아 먹는 일까지 일어났다. 이때 죽은 사람이 110만 명이나 되었고, 노예로 잡혀간 사람이 9만7천 명이었다고 한다. 82년에 걸쳐 금장식으로 지어졌던 예루살렘 성전은 한 병사의 방화로 불에 타버리고 말았다.

(2)성을 보시고 우신 예수님 왜 예루살렘은 이렇게 비참하게 멸망당했을까? 그들은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점점 이방화 되어가고 있었다. 이것은 지금 우리나라의 실정과도 비슷하다. 우리가 서양 문명과 접하면서 의식주 문화가 서구화 되어가고 물질만능, 사치방탕, 음탕 타락 등이 우리나라를 이렇게 만들었다. 위정자의 잘못도 있지만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2. 예수님의 성전 숙청(45-46절)

유월절이 되면 거의 250만 명 정도가 예루살렘에 모여들었다. (1)그 당시 성전 규모는 성전 전체를 “나오스”(naos)라고 불렀고, 대제사장만 들어가는 지성소가 있었다. 성소 주변은 몇 개의 뜰로 되어 있었다. 이방인의 뜰, 누구가 들어갈 수 있는 곳, 여인의 뜰, 이스라엘 여인들만 들어갔다. 이스라엘의 뜰, 이것을 “니카놀”(nicanor)이라고 불렀다. 제사장의 뜰이 있었고 거기에 모든 기구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2)예수님이 분노한 이유 이 사건은 이방인의 뜰에서 일어났다. 돈을 바꾸는 데서 부정이 있었다. 모든 유대 남자는 반 세겔의 성전세를 내야 하는데, 이는 노동자의 2일 노임이다. 그런데 임시 환전소에서는 지정된 화폐로 바꿔주는 대신 갑절의 웃돈을 더 받았다. 이 돈은 성전 유지비로 일부 사용되기도 하면서 대제사장 안나스(Annas)의 특매점이 되었다. 비둘기파는 행위, 비둘기는 주로 생리 중이거나 출산한 여인, 문둥병 환자들이 바치는 제물이었다(레12:8; 14:22; 15:14, 29). 성전 밖에서 살 수 있는 것을 매점에서 사게 하고 돈은 15배나 더 받았다(Wm. Barclay, "마태복음 주석“, p. 349 참조). 그리고 임시 매점이 점점 성전 안으로 들어왔다(요2:13-17). 그래서 예수님의 분노를 샀다. 예수님은 돈 바구니를 다 엎어버리고, 비둘기를 날려버리고, 소와 양 떼를 내쫓았다.

3. 성전에서 가르치신 예수님(47-48절)

예수님은 이렇게 엄청난 행위를 행하고서도 그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대제사장, 서기관, 백성들의 두목(장로)의 표적이 되었고 현상 붙은 사람이 되었지만 워낙 따르는 사람이 많아서 감히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예수님이 요즘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을 볼 때는 울지 않으실까? 그리고 우리들의 예배는 경건한 가 반성해 보면서 예배에 임하고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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