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섭 목사 (퀸즈한인교회)
절대 절명의 위기를 경험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긴 한숨과 함께 ‘이젠 끝이다. 절망이야’라는 고백을 해보셨습니까? 그것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앞에 섰을 때의 느낌이었습니다. 우리도 때로 그런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앞에서 홍해를 갈라주신 그 하나님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마치 성난 바다처럼 여러분을 집어삼키려고 위협하는 것들이 오히려 여러분의 탈출로가 될 것입니다. 출애급 사건은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건입니다. 도대체 어떤 민족이 430년간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민족이 있습니까? 그야말로 이스라엘민족은 해방을 위한 아무런 준비도, 계획도 없었습니다. 이 모든 일을 이루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로버트 모건이 쓴 ‘홍해의 법칙’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머리말에는 ‘인생의 위기를 한 번에 역전시킬 하나님의 법칙’이라는 매력적인 표현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정말 그 말대로 인생의 위기를 한 방에 역전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이것이 사람의 힘으로는 안 되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법칙’이라는 표현처럼 마치 방정식과 같이 말씀 속에 ‘나’를 대입하면 그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법칙은 모두 10가지입니다. 법칙 1/하나님은 당신과 늘 함께 하신다. 법칙 2/나의 안전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라. 법칙 3/적을 인식하되 두 눈은 주님을 주시하라. 법칙 4/기도하라. 법칙 5/잠잠히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라. 법칙 6/확신이 서지 않으면 믿음으로 한 걸음을 내딛으라. 법칙 7/하나님의 충만한 임재를 마음속에 그려보라. 법칙 8/하나님 자신의 독특한 방법으로 구원하실 것을 믿어라. 법칙 9/현재 위기를 장래 믿음 성장을 위한 디딤돌로 받아들이라. 법칙 10/하나님 찬양하는 것을 잊지 말라.
여기에 제가 몇 가지를 추가해 보았습니다. 법칙 11/하나님께 원망하고 있는 동안에도 그들 위에는 구름기둥이 있었음을 기억하라. 법칙 12/모세는 하나님의 방법을 몰랐을 뿐, 하나님이 인도하심을 믿고 있었다. 법칙 13/사람들은 애굽 군대의 수몰을 보고야 여호와를 믿고 알았지만 모세는 기적을 보기 이전에 그 믿음이 있었다. 법칙 14/홍해가 바로 그들의 탈출구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막다른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우리 인생 가운데도 그런 경험을 하게 되는데 왜 하나님을 우리를 그렇게 인도하실까요? 이스라엘은 430년간 종살이 생활을 하면서, 바로가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 뼈에 사무칠 정도로 경험했던 사람들입니다. 본문에 자주 등장하는 ‘바로왕과 그의 군대’라는 말만 들어도 그들은 오금을 펴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노예근성으로 가득 찬 이들이었습니다. 마치 일제 강점기 때에 한국에서는 ‘일본 순사’를 그렇게 무서워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당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했던 그들이었지만 해방을 경험했다면 그 두려운 마음이 사라져야 마땅한 것처럼 바로왕을 두려워하던 노예근성이 사라져야 할 텐데 그것이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 두려움과 노예근성을 말끔히 씻어주시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 앞에서 바로왕과 그의 군대가 얼마나 허약한 존재인지 보여주실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보는 눈앞에서 수장을 시키는 엄청난 기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별 볼일 없다는 것이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4장에서 주제를 찾는다면 4, 18절에 언급된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로 말할 수 있습니다. 홍해 사건은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확실하게 보여주시는 방법이었습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왜 위기가 오나요? 말씀대로 사는데 왜 막다른 골목에 갇히게 됩니까? 진퇴양난의 위기 속에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과 내가 하나님의 백성 됨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모세가 막다른 상황 속에서 ‘홍해바다를 통과해야겠다’는 기상천외한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요? 모세는 그런 계획을 감히 상상도 못했지만, 하나님은 모세에게 홍해바다를 가르고 앞으로 전진하는 하늘의 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문제만 주시는 분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마마보이가 되길 원치 않습니다.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이 흐르게 하는 기적의 사람들로 세우기를 원하십니다. 길이 안 보인다고 길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눈에는 길이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예비 된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다 속 길을 보셨기 때문에 홍해바다 앞에 장막을 치라고 지시하신 것입니다. 뉴욕에는 자랑스러운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이 있습니다. 꼭대기에 올라가 보니 뉴욕이 다 보이더군요. 하나님은 가장 높은 곳에 계시기에 모든 것이 다 보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높은 곳을 다니시길 축원합니다.
모세가 막다른 길에 서게 되었을 때, 그는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13절에서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담대히 선언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실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과연 어떻게 구원해주실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기에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16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응답하셨습니다.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16절부터 27절까지 읽어 보면 반복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모세의 손’입니다.
홍해바다를 가르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홍해바다가 갈라지는 일에 실제로 사용된 것은 모세의 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손을 통해서 하나님은 홍해바다를 가르셨습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손을 뻗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섰으면, 홍해 바다를 향하여 믿음의 손을 내 밀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의 손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에 아무리 좋은 말씀이 많아도 순종하는 행위가 없으면 나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이 되고, 치료가 될 줄 믿습니다.
지금 우리 앞에는 홍해가 도도히 흐르고 있습니다. 광야는 우리를 함정에 빠트리려 합니다. 원수가 바로 뒤까지 우리를 바짝 쫓고 있습니다.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고 미래는 불투명합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때,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연약하더라도 믿음을 가진 당신의 자녀들을 그냥 방치하지 않습니다. 그 자녀들을 위해, 홍해를 가르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홍해 사건은 바로 우리를 위한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우리의 법칙입니다. 힘들고 어려워 홍해가 가로막힌 것 같은 마음이 들 때 이 사건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그 법칙에 ‘나’를 대입하십시오.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