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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희망이다

(요한복음 5:1-9)

서삼정 목사 (아틀란타 제일장로교회)

예수님이 희망이시다. 예수님은 희망 없는 자에게도 희망이시다.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에게도 희망이셨다.

본문에는 38년 된 병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병을 고치려고 수없는 의사를 찾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해봤을 것이다. 아마 그에게 있는 재산도 다 탕진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베데스다 못에 가끔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동하게 하는데 가장 먼저 뛰어드는 사람은 무슨 병이든지 고침 받는다는 말을 듣고 베데스다 못에 찾아와서 물이 동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물이 동할 때마다 다른 사람들이 먼저 뛰어 들어감으로 그에게는 기회조차 없었다. 그가 가졌던 마지막 희망마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때에 예수님이 찾아오셨다. 예수님은 그에게도 희망이시기 때문이다.

아무리 오래된 병이라도, 아무리 중증 환자에게도 예수님은 희망이시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 오래 된 문제를 가진 자에게도 예수님은 희망이시다. 아무리 비뚤어진 성격이나 문제를 가진 사람에게도 예수님은 희망이시다. 거짓말, 탐욕, 교만... 이런 것들이 고질화 되어서 성격화 된 사람에게도 예수님은 희망이시다.

1. 예수님께 희망을 걸어라.

6절, “네가 낫고자 하느냐?” 희망을 가져라. 예수가 희망이다.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를 향하여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셨다. 사람이 오랫동안 병을 앓다 보면, 그리고 이것저것 다 해봐도 소용이 없이 세월이 지나다 보면 낫는 것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 38년 된 병자도 희망을 잃어버려가고 있었다. 예수님은 먼저 그의 희망을 일깨우시기 위해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어보신 것이다. 오래 병을 앓는 사람들의 더 큰 문제는 소망을 잃는 것이다. “나는 평생 이렇게 살아야 돼. 할 수 없지, 이렇게 살다 가는 것이지 뭐...” 하면서 희망을 접는다. 희망을 접는 것은 믿음을 접는 것이다.

병만이 아니라 성격의 문제나 습관의 문제나 경제문제나 삶의 모든 문제에 대하여, 우리는 오랜 세월 그런 삶에 굳어져서 희망을 잃고 그냥 그 자리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가난을 운명으로 그냥 받아들이려고 한다. 비뚤어진 성품 그대로 살려고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목적을 무시하는 죄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를 온전하게 회복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기 위해서 오셨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예수님의 이 말씀은 38년 된 병자에게 권세 있게 화살 같이 박혔다. “내가 나을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과 더불어 희망과 믿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물어 보신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예수님의 이 물음에 “아멘” 이라고 대답하는 순간 우리의 희망이 살아나고 믿음이 살아날 것이다. “당신도 낫기를 원하는가?” 예수를 바라보라. 예수가 희망이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이 질문은 베데스다 못에 대한 기대를 예수님께로 돌리기 위해서였다. 더 이상 베데스다 못에 희망을 걸지 말고 나에게 희망을 걸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당신도 지금 예수님 외에 다른 것에 희망을 걸고 있지 않는가? 당신은 더 이상 다른 것에 희망을 걸지 말고 이제 예수님께 희망을 걸어라. 당신의 베데스다 못이 무엇이든지 이제 거기서 눈을 돌려 예수님을 바라보라. 예수가 희망이시다. 이제 예수님을 바라보라. 그가 예수님을 바라보는 가운데, 예수님과 대화를 하는 가운데 믿음이 생겼다. 그가 예수님을 주 라고 불렀으나 아직 메시야라고 믿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보통분이 아니라 특별한 분 정도로 믿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보는 가운데 그의 믿음이 더욱 생겼다. 그가 불가능해 보이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한 것을 보면 예수님을 바라보는 가운데 더욱 믿음이 생긴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를 알지 못하는 자라도 예수님을 바라보기만 하면 믿음을 주신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예수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되고 본받게 된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께 희망을 걸어라.

2. 일어나 걸어라.

8-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일어나 걸어라.” 예수님은 그 병자를 향하여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명하셨다. 38년이나 자리에 누워있던 그에게 일어나라고 하셨다. 일어날 뿐 아니라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셨다. 세상에 이런 말씀이 있을 수 있는가? 이런 엄청난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이 말씀은 창조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창조주시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권세가 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진다. 예수님이 말씀하시자 그가 곧 나았다고 하셨다.

믿음으로 일어나 걸어라.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할렐루야! 그가 한 일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일어나 걷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믿음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사람들은 오랜 습관을 버리지 못해서 일어나지 않는다. 자기가 병자라는 생각, 자신이 일어날 수 없다는 고정관념에서 잘 벗어나지 못한다. 예수님의 ‘일어나 걸어라’는 말씀을 듣고도 믿음이 없는 자들은 여전히 일어나 걷지 않는다. 예수님이 명령하실 때 이미 병의 근원은 고쳐졌다. 그러나 일어나 걸어야 고침 받은 것이 실제로 나타난다. 병의 근원이 고쳐졌지만 일어나 걸어가는 것은 그의 몫이다. 예수님은 일으켜 세우는 데까지는 돕지 않으셨다. 그것은 그가 해야 될 몫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우리도 일어나 걸어가느냐 그대로 누워있느냐는 우리가 선택해야 할 일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한 인격으로 상대하시지 기계처럼 상대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명령하실 때 우리는 그 말씀대로 일어나 걸어야 한다.

오늘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일어나 걸으면 우리의 문제가 해결된다. 오늘 우리에게도 일어나 걸어라고 하신다. 가난을 떨치고 일어나라. 병을 떨치고 일어나라. 문제를 떨치고 일어나라. 깊이 빠져 있는 죄에서도 일어나 걸어라. 일어나 걸어라. 너무도 위대한 복음이다. 어떤 상황에 있던지 당신은 일어나 걸을 수 있다. 어떤 우울증 환자가 의사를 찾아갔더니 그 의사가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에 당신 병은 나보다 목사님을 찾아가야 할 병이라고 했다. 그래서 챨스 알렌 목사님을 찾아갔다. 알렌 목사님은 그의 이야기를 들은 후 다음과 같이 처방해 주었다. 시편 23편을 적어 주면서 하루에 3번씩 꼭 읽어야 함. 아침 식사 전에 한번, 점심 식자 전에 한번, 잠자기 전에 한번, 이렇게 매일 3번씩 꼭 읽어야 하며 시간도 꼭 지켜야 한다고 처방해 주었다. 그 사람은 돌아가서 그 처방대로 했다. 그는 얼마 되지 않아 깨끗하게 고침을 받았다. 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믿고 행하면 그대로 되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모든 인생의 문제에 대하여 예수님이 이미 처방해 놓으셨다. 당신도 예수님의 처방대로 따라 하면 된다. 예수가 희망이다. 예수가 희망이 없는 자에게도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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