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성 박사 (생리학, 창조과학선교회)
지구가 우주에서 유일하고 특별한 이유는 지구에만 생명체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특별한 지구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가 사람인 이유는 사람은 창조자의 형상이고 모든 창조물들이 사람을 위해서,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위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창조론의 기초’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우리가 어디서 왔는가?”에서부터 시작된 여러 가지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창조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근거한 창조를 기초로 40회의 글을 연재하였다. 이제 마지막으로 창조의 목적인 “사람”, 하나님의 형상을 끝으로 ‘창조론의 기초’ 시리즈를 마치려고 한다.
성경은 분명하다.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물들 중에 하나지만 다른 것들과는 격이 다른 창조물이다. 우리가 다른 동물들과 유전학적인 면에서나 생김새가 다르기는 하지만 이런 것들이 사람을 그렇게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창세기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다른 창조물과 사람을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이것이 왜 우리는 다른 어떤 동물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복합적인 행동들을 하는지를 설명해준다. 우리는 상상하고, 전에 결코 보지 않았던 물건들을 만들고, 낯선 사람들에게도 동정심을 보이고, 창조 세계에서 자기의 역할과 운명을 생각한다.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다른 피조물들과는 다르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도록 창조되었고 그분의 가장 소중한 창조물이다. 인류가 반역하여 죄인이 되었을 때 하나님과의 화해를 위해 그 분 자신이 죽을 정도로 귀중한 가치가 있었다. 당신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존재였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시고, 지금도 지속적으로 우리를 유지하고 보호하고 계신다. 그 분에게 전적인 예배와 감사를 드리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는가?
사람은 작은 창조자다. 동물들도 사람들처럼 자기가 살 집을 만들고 댐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 동물들은 하나님께서 심어 놓으신 본능에 따라 그렇게 하는 것 뿐 더 이상의 발전은 없다. 반면에, 사람은 자기의 상상에 따라 어떤 것들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사람은 순전히 지적이고 미적인 목적 그 자체만을 위해서도 어떤 일들을 수행하는 유일한 존재다. 사람의 몸은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지구에 있는 물질로 만들어졌다(창2:7, 19). 심지어 동물들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영혼(soul, 히브리어로 네페쉬)이 있고 영(spirit or breath 히브리어로 루하흐)도 있다. 그러나 사람만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다(창1:27). 이것이 창조자인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신 이유다.
사람만 어떤 것을 예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교를 가지고 있다. 마음속에 우리의 창조자 즉 하늘 아버지와 연결되고 싶어 하는 간절한 소망이 있는 것이다. 창세기 3:8에는 ‘날이 서늘할 때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가 살던 동산을 거닐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규칙적으로 사람들에게 모습을 나타내시고 함께 하셨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의 반역 사건은 하나님과의 그 관계를 깨뜨려버린 것이다. 그 이후로 사람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렸지만 그 관계를 회복하고자 여러 가지 우상들을 섬기고, 만족감을 얻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인류의 역사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우리가 할 수 없었던 일을 하나님께서 하셨다. 그 관계를 다시 회복시키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구속의 계획을 완전히 이루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류인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을 주시면서 당신이 창조하신 지구를 다스릴 사명을 주셨다. 그러나 그 다스림은 하나님의 창조물들을 잘 돌보는 것이지 탐욕스럽게 그것들을 학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관리인의 책임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1)생태계를 잘 보존하고 동시에 인류의 기본 필요들을 채우도록 환경을 경영하는 것 2)의도적으로 사람의 생명을 파괴하거나 실험 목적으로 사람의 생명을 창조하는 생명공학 기술을 발전시켜 다른 사람의 생명을 다스리지 않는 것 3)생명공학 기술을 인류의 고통을 감소시키는 데는 사용하지만 ‘수퍼 인간’을 만드는데 사용하지 않는 것 등이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처럼 높아지기를 바랐던 인류의 처음 두 사람은 창조자가 금지했던 단 하나의 요구마저 묵살하고 말았다. 그 타락한 아담의 형상인 인류는 지금도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있다. 선과 악을 스스로 결정할 뿐 아니라 진리도 스스로 결정한다. 그 결과물들 중에 아마도 가장 심각한 것이 진화론일 것이다.
진화론은 하나님과 그의 형상을 동시에 모독하는 이론으로 모든 죄악의 뿌리가 된다. 모든 죄의 열매들은 진화론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을 보면 금새 알 수 있다. 진화론이 끼친 가장 큰 해악은 ‘하나님의 형상’을 ‘동물들 중의 하나’로 바꾸어버린 것이다. 모든 삶의 기초인 사람의 정체성이 왜곡되어 죄악의 열매를 맺게 된 것이다. 동성애, 나체주의, 가정파괴, 낙태와 생명 경시 현상들, 전쟁, 인종차별, 포르노, 마약, 자유주의 신학, 공산주의, 혼전 성관계 등 무질서한 성 윤리, 무자비함, 무질서 등등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모든 행위와 생각 속에 진화론이 들어 있다. 이들이 진화론 폐해의 전부가 아니다.
진화론은 복음과 교회의 존재 이유도 없애 버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악의 근원으로 만든다. 진화 역사가 사실이라면, 그래서 인간이 존재하기 이전에 공룡과 다른 동물들이 고통 가운데 죽었다면, 그 수많은 죽음과 고통은 인간 존재 이전에 수억 년 동안 있어왔던 셈이다. 그러므로 진화론은 죽음과 고통을 사람의 죄와 상관없게 만들고 오히려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말하는 셈이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죽음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첫 사람 ‘아담’의 죄 때문에 이 세상에 죽음이 들어왔다고(롬5:12) 그 아담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창조자 예수님이 ‘마지막 아담’(고전15:45)으로 오셨다고 말한다. 어떤 형태의 진화론(유신론적 진화론/점진적 창조론/다중격변론/날-시대 이론)이든지 이 결론은 마찬가지다.
진화의 반대는 무엇일까? 대부분 ‘창조’라고만 단순하게 대답하고 예수님만 믿으면 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이미 진화론에 세뇌되어있거나 압도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자. 진화는 창세기 1장에 기록 된 ‘창조’만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진화는 사람이 누구인지, 왜 인류가 죄인이 되어 이런 고통 가운데 살고 있는지, 복음이 무엇이며 왜 필요한지, 전도와 선교가 왜 필요한지 등 교회의 기초를 설명하고 있는 인류의 공통 역사를 부인한다. 진화의 반대는 성경인 것이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해야 교회는 진리 가운데 설 수 있고 신앙을 물려줄 수 있다. 다른 터전이나 방법은 없다. 성경대로의 창조 신앙 위에 선 주님의 몸, 하나님의 형상들이 나타나기를 기대해본다. 이메일: mailforws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