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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창조론의 기초(36) 창세기

최우성 박사 (생리학, 창조과학선교회)

건물의 안정성은 기초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 신앙과 교회의 기초는 어디에 있을까? 예수 그리스도 혹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한 단계 더 나가서 예수님(복음)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것은 완전한 창조와 인간의 반역 사건에 따른 타락에 있다. 그러므로 창조와 반역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 창세기는 기독교 신앙의 근본이며 기초다. 그런데 최근 이 근본을 뒤흔드는 ‘이론’들이, 신학교와 교회에서, ‘진짜 역사’보다 훨씬 더 많이 가르쳐지고 있다. 최근에 미국과 한국 교회의 안정성이 심각한 지경에 이른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성경이 없다면 아무리 똑똑하고 연구를 많이 한 학자라 해도 인류의 기원을 알 수 없고, 우리가 어디에서 나왔으며, 우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여기에 살고 있는지, 왜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 우리는 창세기를 통해서만 이 세상이 맨 처음에 완벽했다는 사실-그 창조는 무한히 거룩하시고 가장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만족해 하셨던 “아주 좋은(very good)” 창조였음을 알 수 있다. 현 인류는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며 그들로부터 타락한 죄성을 물려받고 있다. 그러므로 창세기를 버리거나 왜곡하면 복음은, 이치에 맞지 않는, 구름 잡는 소리가 되고 만다.

창세기는 역사다.

혹자는 창세기 1장이 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전형적인 한국의 시나 영어의 시는 형식적으로도 리듬과 각운을 맞추지만 고대 히브리인들의 시는 형식이 아니라 내용상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창세기 1장에는 내용적인 댓구가 있다는 것이다. 창조 첫째 날 빛과 창조 넷째 날 해, 달, 별들; 창조 둘째 날 하늘과 창조 다섯째 날 공중을 나는 새; 창조 셋째 날 뭍과 식물들 그리고 창조 여섯째 날 땅 위의 동물들과 사람이 내용적으로 댓구를 이루기 때문에 창세기 1장을 시라고 주장한다. 이 설명에 혹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창세기 1장을 그대로 믿을 믿음이 없는데 댓구가 그럴듯하게 맞아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을 시라고 하는 주장에는 문제가 많다.

창세기 1장이 시가 아니라 평범한 서술인 이유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창조 과정은 지구를 준비하여 거기에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이다(사45:18). 그러나 위 설명(구조가설)에는 가장 중요한 지구에 대해서는 언급도 없다. 또 다섯째 날 창조된 물들에 사는 물고기는 둘째 날의 물보다 셋째 날 창조된 바다(물들이 모인 곳)가 더 적합하다. 둘째 날의 물과 첫째 날의 물은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다섯째 날의 물고기와 좋은 댓구를 이루지 않는다. 셋째 날 창조된 식물은 다섯째 날 창조된 새들과 여섯째 날 창조된 동물들과 사람들 모두의 먹이가 되므로 이것도 제대로 댓구를 이루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렇게 온전하지 않은 내부구조를 가진 창세기 1장을 하나님의 ‘시’라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언어구사능력과 설계능력에 의구심을 갖게 할 것이다. 더욱이 창세기 1장의 동사들을 분석해보면 시에 주로 사용되는 현재형이 아니라 역사 기술에 사용하는 과거형 동사들이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은 99.9% 시가 아니다(Thousands not billions, Master Books). 창세기의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창세기는 실제 역사를 평범한 문체로 기술한 것이다.

창세기는 모든 법의 근거다.

시민법이든지 도덕법이든지 무슨 법이든지 이 법들은 우리의 자유의 한계를 정하고 어겼을 때는 벌을 주게 된다. 첫 번째 법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주신 것으로 창세기에 나온다.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어서는 안된다는 법이었다. 우리가 법을 가지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반역적인 아담으로부터 악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법이 필요하다. 창세기의 역사를 통해서 볼 때만 법들이 왜 존재하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창세기가 기록된 대로 사실이 아니라면 성경의 어느 구절도 사실로 믿을 수 없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므로 거짓말을 하시지 않는다. 아주 좋았던 창조와 아담과 하와의 타락 등 창세기의 기록이 사실이 아니라면 신약의 예수님께서 하신 죄 사함과 구원의 약속들도 의미가 없다. 창세기의 반역 사건이 없으면 십자가는 왜 필요하며 구원은 왜 필요한지 이유를 알 수 없게 된다.

창세기는 인간 존엄성의 근거다.

사람은 다른 동물들과 완전히 다른 생명체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다른 동물들이나 식물들이 누리지 못하는 권리와 책임을 가지고 있는 질적으로 다른 존재다. 이것이 살인이 근본적으로 부도덕한 이유다. 사람들은 우리가 다른 모든 동물과 확실히 구별된 존재임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창세기 1장은 모든 생명체들이 ‘종류대로’ 창조되었다고 10번이나 강조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형상이 다른 생명체들과 완전히 구별된 존재임을 드러내고 있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에 대한 근거는 창세기다. 성경은 결혼을 말할 때 한 역사적인 사건을 이야기하는데 바로 창세기 2장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담의 옆구리를 떼어서 하와를 만들고 그 둘이 한 가정을 이루도록 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한 몸을 이루며 이혼하지 말라고 가르치셨다(마19:4-6).

휴식과 예배의 근거가 창세기에 있다.

이상하게도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7일/주의 시간 단위를 사용하고 있다. 이 주기는 천문학적인 것도 아니고 10개의 손가락으로도 셈하기에는 아주 불편한 시간 단위다. 이 7일의 주기는 어디서 왔을까? 창세기 1, 2장에서 하나님께서 6일 동안에 창조를 마치시고 7일째 안식하셨다. 출애굽기 20장에서 일주일에 대해서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하시고 7일째 쉬셨기 때문에 우리도 그 창조주간을 기념하여 지키며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십계명의 제 4계명으로 주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주일에 하루를 떼어 놓고 쉬면서 창조자를 예배하게 된 것이다(주일은 창조자며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구원 사역을 마치시고 우리를 위해 다시 살아나심을 기념하는 것이다).

창세기에는 가장 중요한 근거들이 들어 있다. 거의 모든 물질적, 비물질적인 것들의 기원이 창세기에 들어 있기 때문에 창세기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으면 이 세상도 복음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역사적인 창세기를 달리 해석해 보려는 마음은, 성경이 아니라, 사실이 아닌 수십억 년의 지구 나이에 근거한 진화론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수십억 년도 없고 진화도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진화론 시대다. 세상의 유혹에서 벗어나 성경으로 돌아와 만들어낸 하나님(우상)이 아니라 성경의 하나님을 가르치고 배워야 교회가 살고 나와 자녀들이 살 수 있다. 이메일: mailforwscho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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