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성 박사 (생리학, 창조과학선교회)
성경을 읽는 크리스천이라면 언제부터 그리고 왜 사람이 옷을 입게 되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왜 사람들이 옷을 입을까요?’라고 물어보면 보통 ‘춥거나 더워서’ 혹은 ‘부끄러워서’ 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지만 왜 독특하게 ‘사람만’ 옷을 입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리적인 설명을 하지 못한다.
1. 의복의 기원에 대한 세속적인 견해들
세상 학자들은 인간이 옷을 입기 시작한 때를 구석기 시대인 4-6만년 전부터라고 하는데 무덤과 벽화 등에 남겨진 증거 때문이다. 현 인류와 상관없는 네안데르탈인들이 극심한 추위를 견디기 위하여 사냥한 동물 가죽을 몸에 감싸면서 옷을 입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과거에 학자들은 이 네안데르탈인들이 3만년 전에 원인 모르게 멸종하였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연구보고(2010년 사이언스지)에 의하면 지금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정보가 들어있음이 확인되었다. 즉 그들은 우리 현대인들의 조상이었다는 말이다(여기서 다루지는 않지만, 물론 진화론적인 연대/시대들도 사실이 아니다).
옷을 입게 된 동기에 대한 학자들의 학설들로는, 신체 보호설, 심리적 보호설, 이성 흡입설, 신체 장식설, 그리고 기독교적인 정숙설 등이 대표적이다. 신체 보호설은 인간은 피부에 털도 없고 피부가 약하기 때문에 추위, 더위, 해충 등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옷을 입게 되었다는 것이다. 심리적 보호설은 신앙적인 면에 중점을 둔 것으로 몸을 가려 악을 피하는 등의 신앙행위로 옷을 입게 되었다는 것인데 열대지역임에도 주술적인 목적으로 옷을 입는 것 등을 그 증거라고 제시한다.
이성 흡입설은 다윈의 진화론과 관련이 깊다. 종족 본능을 위해 이성의 눈을 끌기 위해 옷을 입게 되었다는 설이다. 다윈은 대부분의 동물들의 미에 대한 관점이 이성의 주의를 끄는 것에만 국한되어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신체 장식설은 자기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고 싶은 욕구에서 옷을 입게 되었다는 설이다. 마지막으로 정숙설은 기독교의 옷의 기원으로 선악과를 따먹고 나서 수치심이 생겨 몸을 가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 학자들은 다른 여러 가지 옷의 기원설에 대해서는 증거들을 대며 옹호를 하지만 이 기독교적인 기원설에 대해서만은 반론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아프리카의 한 원주민들은 허리만을 감싸고 다른 신체부위들은 다 드러내 놓는다는 것이다. 즉 문화와 시대에 따라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이 달랐으므로 성경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적인 정숙설을 반대하는 학자들이 제시하는 아주 작은 반대 증거에 대해서는 납득할만한 설명을 할 수 있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세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대로의 세상이 아니다. 이 세상은 처음을 알 수 없게 변했고 왜곡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역사가 흐르면서 민족에 따라서는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신체부위도 바뀔 수가 있는 것이다. 심지어 양심이 화인 맞아 부끄러움을 모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와 시대를 초월해서 이 세상의 거의 모든 민족들은 아담과 하와가 가렸던 부위를 가리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지금은 그 부위를 가리고 살았던 사람들 중에 ‘자연으로 돌아가자’ 혹은 ‘자연을 보라’는 구호와 함께 나체주의를 찬성하는 몰염치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2. 나체주의와 진화론
나체주의는 19세기의 엄격한 도덕규범에 반발하여 20세기 초에 독일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옷을 입지 않은 수천 명의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유명 장소들에서 계속해서 나체 퍼포먼스를 한다는 뉴스를 듣는다. 그들은 사람이 처음부터 옷을 입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체로 사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말한다. 물론 순서로 보면 성경에서도 나체주의자들의 주장처럼 맨 처음에 아담과 하와는 옷을 입지 않았고 그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먹는 범죄로 말미암아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고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 옷을 입는 것이 자연스럽게 된 것이다. 더욱이 하나님께서도 옷을 지어 입혀 주셨다. 그러나 성경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은 인류의 역사 가운데 어떤 계기가 있어서 옷을 입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나체주의자들 중에는 사람을 자연의 일부인 동물들에 비교하면서 나체주의를 찬성한다. 본인들이 인식하고 있든 인식하고 있지 않든 그 속에는 진화론적인 사상이 들어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스스로 옷을 입는 동물은 하나도 없고, 사람도 수많은 동물들 중에 한 종으로 보는 진화론적인 생각으로 판단하면 옷을 입는 인류가 이상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참 증인이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거부하고 현재를 통해 과거를 깨달아 알려는 시도는 성공하기 어렵다.
한자의 기원은 길게는 BC 6600-6200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런 고고학적인 연대는 고무줄 늘어나듯 하기 때문에 믿을만한 것은 아니지만 중국에 성경이 들어가기 오래 전에 이미 한자가 만들어져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뜻글자인 한자에서 창세기 1-11장까지의 역사를 통해서 설명할 수 있는 글자 백여 개가 발견되었다(“한자에 담긴 창세기의 발견”, 미션하우스). 그 글자들을 만들었던 사람들은 틀림없이 바벨탑사건을 경험했거나 그 역사를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역사를 통해 보면 한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바벨탑사건 이후여야 되므로 BC 2250년경 이후였음을 알 수 있다. 성경역사를 배경으로 한 한자들 중에 옷에 관한 글자 나(裸)라는 것이 있다. 이 글자는 옷을 벗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그 의미구성이 성경역사를 모른다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옷을 의미하는 의(衣)와 열매(과일)를 의미하는 과(果)를 함께 사용하여 벗는다는 의미의 글자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옷은 벗는 일과 상관이 있지만 과일은 벗는 행위와 별 상관이 없다. 이 과일 나무가 벗는 행위와 옷과 상관이 있으려면 아담과 하와의 타락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창3:7).
4. 옷의 기원과 복음
진정한 옷의 기원은 하나님이다. 아담과 하와가 임시방편으로 넓적한 무화과나무 잎으로 부끄러운 부분을 가리기는 했지만 하루를 넘기기 어려운 것이었다. 인류가 맨 처음 입은 진짜 옷은 하나님께서 동물 가죽으로 손수 지어 입혀주신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3:21). 하나님께서 동물을 죽여 가죽을 벗기고 옷을 만드는 광경을 아담과 하와가 보았을까? 그렇지 않더라도 그들은 다음에 아이들의 옷을 만들거나 자기들의 옷을 만들기 위해 또 다시 짐승을 죽여야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그들은 대속의 의미를 뼈저리게 알게 되었을 것이다. 옷 입을 때마다 옷의 의미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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