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성 박사 (생리학, 창조과학선교회)
‘하나님이 왜 사람들을 이처럼 사랑하시는가?’라고 물어 볼 때 종종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8)는 답이 제시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사랑이기 때문에 사람을 이처럼 사랑하신다는 대답은 근본적인 대답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개나 고양이를 사람만큼 사랑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자신의 생명을 포기할 만큼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것일까요?
창조과학 강연을 할 때 ‘우리 인류의 원래 조상이 누구입니까?’라고 질문해보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아담과 하와라고 대답합니다. (1)아메바 (2)유인원 (3)아담과 하와 (4)? 이렇게 4지 선다형으로 질문을 해도 대답은 비슷하게 나옵니다. 사람이 창조되었다는 것만 인식하고 있지 하나님과 어떤 관계로 창조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자기 자신,” 근본적인 자기 정체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형상”
성경은 남자와 여자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창1:26-27).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아담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흙으로 빚어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서 만드셨고, 하와는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여 만드셨습니다(창2:7, 21-22). 개와 고양이는 말씀으로만 창조되었지만 사람은 더 많은 노력을 들여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창조과정의 차이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을 그렇게 사랑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희생시키셨을까요? “사랑”이 유일한 대답이라면 하나님은 희생당한 독생자 예수님보다 창조된 사람들을 더 사랑하셨다는 이상한 말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이길래 하나님은 기꺼이 예수님을 죽는데 내어주었을까요? 성경은 하나님의 형상에 관해 여러 가지 정보를 주고 있는데 눅3:38은 아담의 조상을 하나님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을 영어 성경으로 보면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로 표기되어 있습니다(NIV: Adam, the son of God). 세상에는 자녀가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자기의 몸을 버려 그 자녀를 구한 부모들의 예를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형상(자녀)”인 사람이 영원히 죽게 되자 창조자이신 예수님이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들을 그토록 사랑하시는 지에 대한 분명하고도 근본적인 대답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 즉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2. 교회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흐려진 결과
전도지들의 내용을 보면 대개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인이어서 하나님께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죄를 용서해주실 수 있는 분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예수 믿고,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백성이 되시기 바랍니다.” 틀린 말은 없지만 내가 누구길래 왜 예수를 믿어야 하고 하나님 나라로 가야하는지 근본적인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 믿으면 부귀영화를 얻을 수 있다는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전도할 때 흔히 듣는 질문이 ‘내가 왜 예수 믿어야 하는지?’인데 준비된 대답은 ‘우리가 원래 하나님의 자녀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라고 근본적인 대답을 빠뜨린 채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이라고 논리적이지 않은 대답을 합니다.
우리가 원래 하나님의 자녀로 창조된 존재가 아니라면 우리가 그 창조자에게 돌아가야만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 분에게 생명과 부와 귀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누리려고 그 분께 가야한다는 말은 우리의 또 다른 욕심을 부추기는 결과가 되고 말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나를 너무너무 사랑하면 그 분이 내 아버지가 아닌데도 ‘아버지!’라고 불러도 된단 말인가요? 자기 아버지가 아닌데도 자기를 너무 사랑해주기 때문에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은 비열한 사람 아니면 바보 둘 중에 하나입니다(시아버지를 아버님이라 부르는 것은 관계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지 대가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원래 하나님의 자녀란 사실을 모른 채 예수를 믿으며 부귀영화를 바라는 것은 마치 보험을 사는 것과 같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의 의미를 모르면 예수를 믿는 것과 복음이 참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형상”을 흐리게 하는 것
“하나님 형상”에 대해 분명한 이해 즉,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답이 적혀 있는 성경의 창조기록에 대해 신뢰가 없고 따라서 그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의 창조의 믿음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창1장 26-27절에서 말한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쉽고 간단한 설명인 눅3장 38절(그 위는 요 그 위는 이요 그 위는 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 )이 별 의미가 없는 구절인 것처럼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이해를 구름을 잡는 것처럼 모호하게 한 주범은 성경의 처음 열한 장을 사실에 근거한 역사기록이 아니라, 시나 설화나 우화 혹은 기독교의 교리를 만들기 위해 여기저기에 있었던 기록들을 짜깁기하였다고 생각하게 한 사상일 것일 것입니다. 이 사상의 근본은 성경에 없는 수십억 년의 긴 시간 위에 자리 잡은 진화론입니다(물론 이 진화론은 사실이 아니라 허구입니다).
대다수의 한인 크리스천들은 진화를 믿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대다수 크리스천들이 성경과 다른 수십억 년을 사실로 믿고 있을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는 진화를 믿고 있습니다(창조를 믿는다고 하지만 고생대-중생대-신생대의 역사를 사실로 믿는 것이 현실적으로 진화를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들은 진화론의 믿음으로 만든 상상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의 지층들은 거의 대부분 노아홍수 때 만들어졌습니다). 여기에는 교회의 지도자들도 별반 다르지가 않아 성경을 떠난 여러 가지 창조이론들에 현혹되고 있습니다. 이 진화론의 사상이 하나님의 형상을 흐려버리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현대교회의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전도지에도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란 내용이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원래 누구였는지를 말하게 되면 자연스레 인류의 기원에 대한 문제가 따라 나올 것이고 진화론이 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피하기 위해 전도의 시작이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 결과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데도 무엇을 믿는지, 왜 믿는지 근본적인 대답이 없는 크리스천들이 많아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결국에는 진화론이 영생의 길을 막고 있는 것입니다.
4.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창조주 하나님이 진짜 자기 아버지인 사람은 하나님에게로 돌아가기를 원할 것이고 창조주시며 유일한 길이신 예수님을 찾게 될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그 분은 창조자며 사람을 “자기형상”으로 지은 분입니다. 그러나 영생복락 부와 귀가 있고 고통과 아픔이 없고, 편안하고 물질이 넘쳐나는 그런 세상으로 가게 될 것을 기대하며 아버지 아닌 분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그런 곳이 정말로 기다리고 있을까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막7:21-22). 교회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내 아빠 아버지,” “나의 근본”으로 믿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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