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성 박사 (생리학, 창조과학선교회)
하나님께서는 맨 처음 지구를 창조하시고 6일 동안 지구를 완벽하게 꾸미셨다. 맨 마지막에는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을 정복하고 생물들을 다스리라는 복을 주시고 동물들에게는 풀을, 사람들에게는 채소와 과일을 먹고 살도록 모든 관계와 질서를 지정해주신 다음 그 모든 것을 보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다(창세기 1:31). 모든 것이 완벽하고 좋았다. 전지전능하시고 완벽하신 하나님께서 심히 좋아하셨다는 상태는 어느 정도였을까?
사람들은 엄청나게 나쁜 소식을 들으면 정신을 잃게 된다. 반대로 너무 좋은 소식을 들어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좋아 죽겠다’는 말이 그렇게 틀린 말이 아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심히” 좋아하셨다면 과연 어느 정도일까?
스바냐 3:17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하나님께서 우리 때문에 기쁨의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신다고 하신다. 창조 6일째 모든 창조 사역이 끝났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런 기쁨 가운데 계셨을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이 우주를 완벽하게 준비하셨다. 하나님은 시간도 공간도 물질도 없는 상태에서 그것들을 창조하신 분이시므로 그것들에 얽매이지 않으시는 분이다. 그 분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시므로 완벽하게 만드실 수 있었다. 이 사실은 열역학 제 2법칙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이 법칙에 의하면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무질서해진다. 태양계의 행성들이나 지구나 달의 움직임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지만 점점 무질서해지고 있다.
생명체들은 각 종류마다 독특한 DNA정보를 가지고 있는데 돌연변이 등을 통해 계속해서 무질서해지고 있다. 무질서의 법칙인 열역학 제 2법칙은 어디에서나 관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피조물들은 사람이 흉내 낼 수 없는 고도의 질서(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완벽한 시작이 있었을 뿐 아니라 그 시작도 얼마 되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생명체들이 보여주는 에너지 효율은 공학기술로 따라잡기 어렵다. 사람이 탄수화물을 섭취하게 되면 그 속에 들어 있는 에너지의 약 39%정도를 화학에너지인 ATP로 전환할 수 있다. 이런 효율은 공학자들의 꿈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61%의 에너지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체온을 유지하는데 사용하게 되므로 낭비되는 에너지가 거의 없다.
또, 세포 한 개로 된 생명체인 대장균이 가지고 있는 모터는 사람이 고안한 모터와 아주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 모터는 1분에 수천-수만 번 회전하다가 4분의 3회전 만에 정지하고 즉시 반대방향으로 고속회전이 가능한 가공할만한 모터다.
이 모터가 사용하는 에너지원은 음식에서 전환된 화학 에너지인 ATP가 아니라 ATP를 생산하는데 사용되는 원초 에너지인 수소이온농도를 직접 사용함으로써 가장 효율적인 에너지 활용도를 보여주고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에 의해 완벽하게 창조된 피조세계(자연)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는 말이 포함하고 있는 한 가지 의미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던 세계와 질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 완벽하심, 선하심, 아름다움, 사랑, 영원하심, 변함없음, 그리고 풍성하심 등 하나님의 성품들이 지금보다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 죄가 들어와 타락이 진행되었고, 땅이 멸망되었던 노아시대의 대 격변, 그리고 바벨탑 사건과 연관되었을 또 한 번의 격변적인 빙하시대를 거치면서 그 완벽했던 세상과 질서는 심각하게 황폐되고 망가져왔고 아직도 진행형이다. 죄의 결과는 죽음과 이와 함께 따라오는 노동과 고통과 아픔 그리고 끝없는 타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아홍수 이전 세상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는다. 거의 1000년 가까이 살았던 사람들의 수명이 그 환경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노아홍수 직후에도 가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 살았다. 홍수 직후에 태어난 3세대는 약 450년을 살았다. 이때만 해도 사람들이 지구 어느 구석에서나 잘 살 수 있었다는 고고학적인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북극 근처에 살았던 사람들과 시베리아의 매머드들 그리고 사하라 사막 같은 곳에서 어업을 하며 살았던 사람들과 대형동물들이 그 당시의 환경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이런 좋은 환경은 바벨탑 사건이 원인인 것으로 생각되는 빙하시대를 거치면서 또 다시 사라지고 현재와 같은 극단적인 추위와 더위가 공존하는 지구가 되고 말았다. 이때 사람들의 수명은 또 다시 250세로 급락했고 이 이후부터는 무질서의 법칙인 열역학 제 2법칙에 따라 점점 감소하여 100년 사는 것을 장수라고 여기는 험난한 세상이 되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창조되었다(창1:26-27; 시8:5). 이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를 성경에서는 자주 자녀관계로 설명한다(눅3:38).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인 아담과 하와를 위해 준비해주신 세상과 질서가 얼마나 완벽하고 아름답고 풍성했을지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완벽한 세상이 아니면 삶다운 삶을 살지 못하게 지어진 존재임이 틀림없다. 이런 존재가 범죄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타락과 죽음을 맞아야 했고, 노아홍수의 심판을 자초해 좋았던 환경마저 망가뜨려졌고, 바벨탑 범죄로 친척들과 담을 쌓고 원수로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 갈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라는 모세의 노래가 정확한 표현임을 확인하게 된다.
점점 더 타락하고 있는 존재는 스스로 그 흐름을 반전시킬 수 없다. 타락의 영향을 받지 않을 존재가 없으므로 죽음으로 향하고 있는 그 어떤 피조물도 스스로 구원할 수가 없다. 바로 이 사실들 때문에 창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소식이 유일한 복음이다. 그리스도의 공로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좋았던 처음부터 사실적으로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복음의 시작이며 우리 믿음의 시작이다(히11:3).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