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덕 목사 (복음장로교회)
시편 59편의 배경을 보면 사울이 사람을 보내어 다윗을 죽이려고 그 집을 지킬 때라 했습니다. 아주 불안하고, 두렵고, 위급한 상황입니다. 이럴 때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다윗을 구원하셨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요4:24) 이 베풀어주시는 구원을 내가 어떻게 알고 구원을 받느냐 하는 데는 내 신앙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음악도 귀를 막아 두면 그 소리가 나에게는 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고 계시지만 내가 믿음의 눈을 열지 않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만 내 앞에 나타나 있습니다. 항상 믿음을 가지고 오늘도 함께하시고 구원하시고 이 위급한 상황에서도 지키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란 말씀대로 바라볼 줄 알고, 그 말씀을 생각으로 볼 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이란 반드시 말씀을 전제로 하고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마치 이와 같습니다
. 하나님의 실체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그림자인 말씀은 언제든지 볼 수 있습니다. 그림자를 보고 실체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없다면 우리는 믿음이 아니라 자기의 주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더라도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믿음은 완전히 다릅니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자기 주관이고, 믿음은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합니다. 그것이 다른 것입니다. 그림자를 보면 실체를 알 수 있고, 실체의 움직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지금 어떻게 하고 계시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항상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창세기 21장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사라에게 권고하시고 행하셔서 늙은 아브라함에게 말씀대로 아들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말씀을 보면 우리가 모이고 있는 이곳에 하나님이 함께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고 하셨습니다. 주는 말씀대로 다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에게 하나님이 믿음의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말씀대로의 하나님을 보게 해주시니까 다윗이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찬송하게 됩니다. 9절 “하나님은 나의 산성이시니”, 놀라운 고백이지 않습니까? 지금 자기의 눈으로 볼 때 자신의 환경 속에서 전혀 하나님의 손길이 보이지 않고 사울의 신하들에게 성벽처럼 둘러싸여서 도망갈 길도 없는 상황이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니까 하나님이 나의 산성이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지키고 계신다는 고백입니다. 믿음으로 보는 실체요, 영적인 은혜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증거물을 자꾸 주십니다. 그래서 그것을 보고 소망을 가지게 되고 감사하고, 그것으로 내 안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생깁니다. 그러나 나중에 하나님이 그런 것들을 슬며시 빼 버리십니다. 그럴 때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불안하고, “하나님, 제가 옛날보다 훨씬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왜 저를 버리셨나이까?”하고 기도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각기 자기 눈으로 하나님을 보려고 하는 것으로부터 그 시각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시각으로 바꾸시는 과정인 것입니다.
믿음이 성숙하고 성장할수록 더 많은 것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보는 훈련을 시키시기 때문입니다. 내 눈에 보이는 꽃을 하나님의 사랑의 징표로 생각하다가 꽃이 시들면 하나님의 사랑이 시들었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어린아이 같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시들지 않고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그대로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믿음으로 살도록 키워 주십니다. 말씀은 신비롭게도 내가 신앙이 자라면 더욱더 뚜렷해지고, 선명해지고, 믿음은 더욱 충만해질 것입니다. 다윗은 아주 위험한 상황에서도 여호와가 나의 산성으로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무조건 믿으셔도 괜찮습니다. 어리석게 믿을수록 그 사람은 가장 현명한 사람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그러한 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