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수 목사 (라스베가스 안디옥교회)
사람은 사랑을 호흡하며 사는 존재이다. 사람은 울음을 터뜨리고 태어나면서부터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주시는 어머니의 모정과 가족의 사랑으로 성장해서 학교에 간다. 우정이란 사랑으로 세상을 배우고 자라며 애정이란 사랑으로 가정을 이루어 살다가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 사랑하는 자녀들을 남기고 눈을 감는 것이다. 그리고 보면 사람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랑을 호흡하며 살다 가는 것이다. 한 순간도 사랑이 없이는 사람답게 살수 없다, 사랑이 항상 있을 것이다.
옛날에는 신부가 가마를 타고 시집을 갔다. 가마를 끌고 앞서가는 사람과 가마를 메고 뒤따라가는 사람 다 땀 흘려가면서 먼 길 가느라고 수고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신랑이 기다리는 사람은 그 가마 한 가운데 앉아 있는 신부이다. 물론 앞에서 가마를 끌고 가는 사람은 신부를 잘 모시고 가면 신랑에게 막걸리 한 잔이라도 대접받을 것이라는 소망으로 산 넘어 고개 넘어 그 신랑 집까지 가는 것이다. 소망으로 가는 사람이다. 그런데 뒤 따라가는 사람은 가마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지만 한 가지 믿음이 있다. 바로 앞에 사람이 가는 대로 믿고 따라가기만 하면 틀림없이 신랑 집에 도달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따라가는 것이다. 믿음으로 가는 사람이다. 그러나 정작 신랑이 기다리고 반갑게 맞이하는 사람은 가마 속에 앉아서 신랑을 사모하고 있는 신부뿐이다. 사랑으로 가는 사람이다. 믿음과 소망 사랑 이 세 사람이 항상 있어야 신랑 집에 간다. 그러나 신랑에게 가면, 앞서 인도하던 소망도, 뒤에서 따라가던 믿음도 임무 끝이다. 더 이상 믿음도 소망도 있어야 할 것이 아니다. 오직 가운데 있던 사랑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다.
이 세상에서 신앙 생활하는 성도에게 항상 있어야 할 것이 믿음이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으니 믿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천국에 가서 신랑 되신 주님과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만나는 순간 우리의 믿음은 임무 끝이다. 믿음이 믿는 바대로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앙생활 중에 소망 또한 항상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소망하던 천국에 들어가는 순간 우리가 소망하던 것이 현실이 되어있기에 그 때는 그 소망을 더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사랑은 계속 있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도 사랑이 항상 있어야 하지만 천국에 가서도 사랑은 계속 있어야 된다. 신랑 되신 예수님이 기다리고 있던 우리들을 반겨 계속 사랑해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살 때 있었던 모든 것이 다 떨어지고 사라져도 천국은 사랑만큼은 서로 주고받아야 하기에 거기서도 계속 있는 것이다.
가정은 사랑이 항상 있어야 하는 사랑의 보금자리이고 교회는 천국에서도 있어야 할 사랑을 배우고 훈련하는 곳이다. 그런데 장성한 사람은 사랑을 주는 쪽이고 어린 아이는 언제나 사랑을 받는 쪽이다. 덕스런 사람은 사랑을 베풀어주지 못해 마음 아파하는 사람이고 어린 아이같은 사람은 사랑을 받지 못해 마음 아파하는 사람이다. 특별히 교회를 가만히 들여다보라! 사랑이 없다고 불평하는 사람들 보면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는 사람들이다.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기 때문에 온갖 원망과 불평을 일삼게 되는 것이다.
좋은 이웃을 찾을 것이 아니라 좋은 이웃이 되어주라는 주님의 말씀은 바로 사랑을 주라는 말씀이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사랑을 받으려고 먼저 대접받으려고 하면 실망하고 상처까지 주고 떠날 수밖에 없다. 내가 먼저 사랑을 주고 먼저 베풀어야 한다. 그 사람이 장성한 사람이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믿음은 항상 있어야 한다. 그리고 희망도 항상 있어야 한다. 물론 사랑도 항상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 모두 항상 있어야 한다. 사람답게 살기위해서는 어느 하나도 없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다. 사랑이 없으면 믿음도 희망도 이미 의미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