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터빌한인장로교회)
기독교를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고 합니다. protest란 말은 "저항하다"라는 뜻입니다. 중세에 타락한 가톨릭교회가 베드로 성당을 지을 때 면죄부까지 팔아 성당을 지은 것을 보고 마틴 루터가 95개 조항의 항의문을 써서 붙이고 종교개혁을 선언한 계기로 개신교를 진리를 위해 저항한다는 프로테스탄트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살아있는 성도와 교회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저항하는 성도와 교회라야 병들지 않고 계속 성장합니다. 우리 신체 중에 절대로 암이 발생하지 않는 한 기관이 심장입니다. 그래서 심장암이란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왜? 심장은 암이 없을까요? 심장은 "흐르는 물이 썩지 않는다."는 말과 같이 단 1초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진리를 위해 움직일 땐 움직이고 저항할 땐 저항하고 싸울 때는 싸우는 그런 성도나,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중요한 저항신앙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죄와 싸워라(Fight Against Sin)
둘째, 우리가 진리를 위해 저항할 것은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죄와 적극적으로 싸워야 합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왔노라"(마 10:34) 검은 싸움을 위한 도구입니다. 그러니 이 검을 주신다는 것은 싸움과 전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참 평화는 사단과의 치열한 전쟁에서 이길 때 얻습니다. 예수님은 죄와 타협하는 평화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참 평화는 마귀를 정복한 후에 오는 평화라야 참된 평화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평화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마귀를 정복할 검이 필요합니다.
가령, 동상으로 인해 발이 썩어들어 가는 환자가 있습니다. 가족들은 매일 좋은 옷과 좋은 음식, 그리고 금은보석으로 그를 치장해줍니다. 그때 유명한 외과 의사가 그 광경을 보고 수술을 서둘렀습니다. 예리한 칼로 썩어져가는 다리 부분을 과감하게 절단해냅니다. 살려면 아파도 수술을 해야 합니다. 상처를 도려내야 합니다. 썩은 부분은 절단해 내야 합니다. 그래야 몸 전체의 건강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가정의 불화(Family Discord)
두번째, 우리가 저항할 것은 믿음으로 인한 가족 간의 갈등을 극복해야 합니다.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함이니"(마 10:35) 가족 중 한 사람이 예수를 믿을 때, 믿지 않던 가족 사이에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전도자들이 예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이런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 모국 대한민국도 선교 초창기에 이런 갈등과 박해가 심했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머리 깎인 며느리가 수건 쓰고 새벽기도에 오기도 했습니다. 장손이 예수 믿는다고 호적에서 빼버린다고 했습니다.
왜? 복음이 들어가면 이런 가정불화가 일어납니까? 복음이 없는 가정은 이전에 사단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사단의 영역이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이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이때 가정불화와 갈등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영적인 전쟁터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우리를 원수처럼 대하는 불신 가족을 위해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끝까지 참고 주님의 사랑으로 대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인한 가족 간의 갈등을 극복하고 온 가족이 예수 믿고 구원받는 날이 올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시 126: 5)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라(Love God First)
세번째, 저항할 것은 혈연적 관계마저도 끊어야 하는 결단도 필요합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마 10:37) 주기철 목사님에게 이런 시험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목사님을 회유해도 안 되니까 마지막으로 부인과 자녀들을 데려다 두고 회유합니다. 두 길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한편은 신사참배를 하고 가족에게로 가든지, 아니면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못이 뾰족뾰족 올라온 송판 위를 걸어서 감옥으로 가든지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이때 주 목사님은 눈물 흘리는 가족들을 등지고 찬송을 부르시며 송판 위를 걸어가셨습니다.
사랑하는 자만이 사랑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기에 이런 사랑을 요구하실까요? 독생자를 주신 사랑, 독생자를 내 죄 값으로 십자가에 매달아버린 사랑입니다.(롬 8:32) 우리 모두 이 같은 하나님의 넓은 사랑을 경험하고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Take up Your Cross and Follow)
네번째,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마 10:38) 우리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께서 우리보고도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십니다. 당시에 십자가형을 받은 사람은 자기가 못 박힐 십자가를 지고 형장으로 갔습니다. 예수님 역시 자신이 못 박힐 십자가를 지고 친히 골고다로 끌려가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 역시 주님처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했습니다.(마 16:24)
십자가란? "나는 원하지 않지만 주님이 원하시는 것" 그게 십자가입니다. 그것에 순종하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 개혁할 때 생명의 위협도 받고 출교도 당하게 되고 명예도 다 잃게 되었지만 굴하지 않고 "보름스(Worms)에 있는 모든 집 기왓장들이 마귀가 되어 나를 공격할지라도 나는 그 자리에 서겠다."라고 했으며 "재물과 친척도 갈 테면 가라, 잠깐 살다 죽는 생명도, 이 죽을 몸도 죽일 테면 죽여라! 그래도 하나님의 진리는 살아있고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리라!"고 했습니다.
사즉생(死卽生)이요, 생즉사(生卽死)입니다. 주님을 위해 죽고자 하면 영원히 살고 자기를 위해 살고자 하면 영원히 죽습니다. 마틴 루터나 사도바울처럼 날마다 예수를 위해 죽고 예수님께서 내 안에 살아계셔서 우리를 주님 영광 드러내는 도구로 써주실 것입니다. 진리를 위해 저항하는 신앙, 도전하는 신앙으로 무장하면 주님께서 여러분을 마음껏 사용하셔서 위대한 승리자로 쓰임 받을 줄 믿습니다. 여러분이 다 세상 것을 포기하고 영원한 천국을 위해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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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9.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