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터빌한인장로교회)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기사와 능력을 행하셨습니다. 병든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떼를 지어 모여 들었습니다. 바로 이때 한 율법학자이자 서기관이 예수님께 나와 주님의 제자가 되기를 청하였습니다.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마 8:19) 이 서기관은 아직까지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선생님(랍비)이라고 부르며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든지 따르겠다고 합니다. 이 서기관의 간청에 대해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마 8:20) 여기서 당시 정치적 풍자로 여우란? 헤롯 왕을 말하고, 새는 로마의 통치자를 말합니다. 인자는 이중적 메시지로 하나님의 아들인데 사람의 모양을 입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권능 있는 모습이 아닌 십자가를 향하시는 모습인 인자의 모습(마 19:28, 20:18)으로 오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도는 "너희들이 나를 따라 다녀봐야 별 볼일 없다. 실질적인 소득이 아무것도 없고 고생만 실컷 한다. 나는 머리 둘 곳도 없는 사람이다.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떠돌이에 불과하다."라는 그런 뜻입니다. 사실상 예수님께서 서기관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싶다는 청을 물리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일관된 원칙은 예수님과 함께 하게 하시고 함께하는 것은 제자들의 믿음과 순종으로 결정됩니다. 당시 예수님을 따르는 그 길은 쉬운 길이 아니었기 때문에 부름 받은 제자들이지만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면서도 따르는 것은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을 결정하는 것은 영적인 가치(Spiritual Values)로 결정됩니다.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면 신앙을 수단으로 삼아 세속적인 가치를 탐하지 않는 길이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수많은 병자를 고치며 기적을 베풀고 떡을 만들어 먹이실 때 수많은 군중들이 무리지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복음만 전하실 때는 떡을 구하던 무리들이 다 썰물처럼 빠져나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옆에서 가만히 엿듣고 있던 제자 중 한 사람이 "예수님 따라 다녀봐야 별로 도움 되는 것이 없겠구나!"라고 생각하고 얼른 빠져 나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민망스럽게 변명거리를 댑니다.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 하옵소서!"라고 합니다. 이 사람은 부친을 핑계로 예수님을 떠날 계산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에게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마 8:22)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 육적으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강조점은 제자로 살려면 모든 삶의 우선순위를 영적인 가치인 예수님께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다음으로 미루지 말라(Don't Put it off until Next Time)고 하십니다. 육신적인 일을 핑계로 신앙을 보류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쟁기질을 할 때는 앞의 목표를 정해 놓고 똑바로 보아야지 뒤를 돌아보면 줄이 엉망진창이 되고 맙니다. 롯의 처는 소돔 성을 빠져 나오다가 두고 온 것들이 아까워서 뒤돌아보다가 완전히 망했습니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 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창 19:26)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결코 육신적인 일을 핑계로 신앙을 보류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무슨 일을 결정할 때든 항상 영적 가치에 우선순위를 두고 결정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부르실 때 즉시 따라야 합니다.(Must Follow Immediately) 교회는 세상보다 더 좋은 것을 주는 곳이 아니라 세상과 다른 것을 주는 곳입니다. 세상과 교회는 추구하는 가치가 완전히 다른 곳입니다. 예수를 잘못 믿는 사람에게 가장 큰 비극은 몸은 교회 안에 있으면서 눈은 교회 밖을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을 수단으로 세속적인 가치를 탐하는 것입니다.
옛날 독립군이 되려면 3가지 조건을 수락해야만 받아 주었다고 합니다. 굶어죽을 각오, 맞아죽을 각오, 얼어 죽을 각오라고 합니다. 한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도 이런 각오가 필요하다면 하늘나라를 위해서도 이런 각오 정도는 되어 있어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진리의 말씀을 붙잡고 고난 속에서 즉시 믿음을 지켰습니다. 우리나라에 처음 복음이 들어왔을 때도 고난을 각오하고 즉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부모님들이나 친척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박해를 받으면서 즉시 믿음생활을 했습니다.
독일의 순교자 본 훼퍼는 예수 믿으면 축복 받는다는 말을 너무 강조하는 것을 "값싼 은혜"라고 했습니다. 너무 당근, 사탕만 먹인 것입니다. 부담 없이 교회 다니는 교인만 양산한 것입니다. "값싼 은혜"에만 머물러 있는 영적인 어린아이만 만들었습니다. 진정한 제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당하게 요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값비싼 대가를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버린 만큼 얻습니다. 하나님께서 버린 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주십니다. 영적 가치에 우선순위를 두고 즉시 따르기를 결단을 하십시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영적 가치에 우선순위를 두고 하나님 먼저(God First)의 결단을 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시급한 일 때문에 더 중요한 일을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레이디 퍼스트(Lady first)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에서도 갓 퍼스트(God first) 해야 합니다. 내가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 먼저 갓 퍼스트(God first)해야 합니다. 19세기 미국 최고의 설교자라고 불리는 필립스 브룩스(Phillips Brooks, 1835-1893) 목사님은 "하늘의 것을 먼저 추구하십시오. 그러면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땅의 것을 먼저 추구하십시오. 그러면 하늘과 땅의 것을 모두 잃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나그네의 삶을 사셨습니다.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로마의 변방 이스라엘, 그 가운데서도 변방 갈릴리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조차 사람들이 자신을 에워싸자 그 자리를 피하십니다. 예수님의 나그네의 삶이 우리에게 구원이라는 위대한 선물을 안겨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그네의 삶을 사신 것은 예수님의 고향이 베들레헴이 아니라 하늘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이 땅을 살아가면서 나그네로 순례자로 살아 갈 수 있을까요? 우리의 본향이 하늘에 있다는 사실을 믿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기를 주님께서 원하십니다. 우리 모두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예수님을 따라가는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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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9.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