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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강준수 목사 (라스베가스 안디옥교회)

에드거 앨런포의 단편소설 ‘고자질하는 양심’이라는 책이 있다. 그 주인공이 사람을 죽여서 아무도 모르게 자기 지하실에 묻었다. 그 사실을 정말 아무도 모른다. 사건이 정말 완전범죄로 끝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날 밤부터 죽은 사람의 심장소리가 귀에 들려서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눈을 감아도 툭툭... 아니 귀를 막아도 그 소리가 들린다. 그 섬뜩한 심장의 고동소리가 계속되는데, 도무지 피할 수가 없다. 간담이 서늘하고 식은땀이 흘러서 옷이 다 축축하다. 잠도 편히 못자고 입맛도 잃어버려 음식도 제대로 못 먹고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지더니 몸도 야위어 가는데 그 고통을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심장의 고동소리는 바로 자기 자신의 가슴에서 들려오는 자기심장의 고동소리였다. 무엇을 말하는가? 죄를 범하면 두려움을 피할 수 없다. 양심이 소리치는 것이다. 아담은 지금 죄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인데 그 두려움의 원인, 죄는 숨겨놓고 그 결과 두려움만 호소하는 것이다.

어떤 통계를 보면 서울 장안의 사람들 중 70%가 한번 이상은 점을 보았다고 그런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새해 벽두부터 토정비결을 보고 그러는가? 그리고 그 70%의 69%는 몸에 부적을 부친경험도 있다고 했다. 더구나 요즘에도 우리 한국 초등학교 학생들 호주머니에 부적이 많이 있단다. 왜냐고 물어보면 두려워서 부적을 몸에 품어야 마음이 놓인다는 것이다. 우선 세상이 두렵고, 이 환경이 두렵고, 나아가 죽음이 두렵고 그래서 부적을 부치면 괜찮을까 해서 다 큰 어른들, 부모들이 그런다는 것이다. 두려움에는 원인이 법이다. 그 두려움을 느끼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봐야 할 텐데 그 원인은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도대체 무엇이 원인인가? 원인은 바로 지금 하나님과 단절되어 그 하나님과 멀어진 것이다.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된 죄가 그 원인이다.

범죄 후 아담은 변경과 핑계의 사람이 되었다. ‘내가 죄를 지었습니다’ 하면 될 것을 끝까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책임만 말한다. 하나님이 회개를 독촉하는 질문을 계속 던지며 기다리시는 시간에도 아담은 자기를 위장하는 일에만 몰두하면서 진실하지 못하고 그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어떤 성격 고약한 사람들을 보면, 걸핏하면 아내 때문에 그렇다고 그러고, 그 아내는 또 남편 때문이라고 한다. 부부싸움 하는 소리 들어보면 항상 자기는 빼놓고 당신 때문이라고 한다. 어린 딸이 어머니에게 질문을 한다. “왜 엄마는 머리가 그렇게 희어졌어요?” 엄마가 대답한다. “응? 딸이 엄마 속을 썩일 때마다 엄마는 힌 머리가 하나씩 나온다” 그러니까 딸이 “응? 그렇구나. 할머니가 왜 온통 흰 머리인지 이제 나도 알겠다” 그러더란다. 여러분! 원망은 언제나 상승작용을 한다. 세상탓, 조상탓, 나라탓, 하다가 마지막엔 하나님까지 탓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작금의 한국사태를 매스컴을 통해 접하면서 몇 가지를 깨닫게 된다. 하나는 모든 사이비는 결국 범죄와 파괴를 일삼는다는 사실이다. 영생교의 교주라는 사람, 성령이 강림한 척사라는 최태민씨 어려운 시기를 지나던 대통령의 딸을 접근한 최태민씨와 그 딸 최순실. 청와대를 내 집 드나들듯 드나들면서 세상에 나와서는 국가 질서를 파괴하고 이권에 개입해서 불법재산을 축적했다.

둘째는 사이비에 한번 빠지면 자신이 사이비라는 것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사이비의 종교의 특징이 바로 그것이다. 정신병자가 자신이 정신병자인 것을 모르듯이 사이비를 믿는 사람은 한 결 같이 자기가 사이비에 빠진 것을 모른다. 왜냐면 이미 사이비 악령에 그 영혼이 결박당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비로 인한 엄청난 가라지 넝쿨이 사회전반에 걸쳐 여기 저기 터져 나오는 데도 자신은 사이비에는 빠지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지 않는가? 이것은 단지 나와는 상관없다고 방관할 문제가 아니다. 사이비 가라지의 범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더구나 우리도 이런 사이비가 즐비한 세상에 함께 살고 있음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 이 복음에 똑바로 서야함을 절실하게 느낀다. 언제라도 우리 인생도 범죄의 가라지 밭이 될 수밖에 없고 그 인생도 겉잡을 수없이 멸망의 계곡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 사람의 마음에 생명의 말씀 복음을 심어서 구원해내야 한다는 전도의 시급성을 다시 생각하는 것이다. 사이비에 빠지면 영적으로 결박되어 내 자유를 잃어버리고 범죄의 가라지 넝쿨만 뻗쳐 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 범죄의 원인이 사이비신앙자체인 것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책임에서 자기를 숨기는 어리석음을 또 범하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어떤 태도로 인생을 살고 있는가? 인생의 방향 설정자체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은 아닌가? 돌아보아야 한다. 인생은 운동경기처럼 전반이 있고 후반이 있다. 그런데 인생의 절정은 전반에 있는 것이 아니고 후반에 있고 종반에 있다. 더구나 연장전에 꼴을 하나 넣으면 golden Goal 그것으로 경기는 끝이 난다. 과거를 더 이상 비판하지 말자. 누구 원망하거나 비판 말자! 후반 중요하다 아니, 종반이 더욱 중요하다. 내 육체의 남은 때가 중요하다 하나님이 오늘 여러분에게도 묻는다. 인생아! 네가 어디 있느냐? 우리에게 새로운 인생, 새로운 미래, 새로운 승리를 주시려고 내 인생의 태도를 교정해주시려고 찾아오시는 하나님 말씀이다. revpeterga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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