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경기고등학교를 몇 달 다니고는 곧바로 서울대학교에 들어간 수재학생이 있었다. 학창시절 그는 어느 평범한 회사원이 어느 날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납치당해서 15년 감금생활을 하게 된다. 이유도 모른다. 이 사람은 감옥에 갇혀있는 것이 너무너무 억울하고 고통스러워서 감금될 때 쇳조각 하나를 가지고 자기가 탈출할 수 있는 벽을 파기 시작한다. 간수의 눈을 피해가며 15년 가까이 몰래 그 땅과 벽을 팠는데 드디어 자기 몸이 가까스로 빠져나갈 정도 쯤 되었다. 얼마나 오래 기다리던 그 탈출의 날 아침이 드디어 밝아왔다. 그런데 바로 그 탈출을 기도하려는 날 아침에 간수가 오더니 하는 말이 “당신은 이제 석방이다” 그러는 것이다. 그동안 아무도 몰래 숨어서 간수의 눈을 피해가면서 벽을 파온 것이 억울하지만 석방하라니 어찌하겠는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석방되어 세상에 나왔다.
그런데 이 사람이 세상에 나온 다음에 생각할수록 억울해서 자기도 원수를 갚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갇혀있던 그 감옥을 다시 찾아간다. 잠겨진 문을 뚫고 들어가 봤더니 놀랍게도 그 감옥의 한 사무실 안에는 모니터가 가득히 있다. 그리고 그 모니터는 자기가 감금되어 있던 방부터 모든 방을 비밀 카메라가 다 연결되어서 개미 한 마리도 놓치지 않고 낱낱이 보고 있었다. 자기가 벽의 구멍을 뚫는 것도 다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15년 다 살았으니 석방이다’ 그런 것이다. 자기는 전혀 몰랐다. 몰랐으니까 자기는 구멍 뚫다가 간수들이 오면 빨리 그림으로 덮어서 아닌 것처럼 했는데 그런 것도 다 보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산다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보고 계시다는 것을 의식하고 살며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삶이 되고 예배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아픔도 여러분의 눈물도 다 알고 계신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 외롭게 사는 것을 주님은 다 알고 계신다. 임마누엘 축복이란 성전에 나와 예배드릴 때 뿐 아니라 예배드리고 난 뒤에 세상에 나가 생활현장에서 살 때에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믿는 믿음으로 받는 축복이다. 그 신앙이 유혹을 물리치는 경건의 능력이 되고 인생의 시련을 극복하며 더 강함의 사람이 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나는 지금 하나님 앞에 있다는 하나님의 임재의식. 그리고 나는 지금 하나님 앞에 살고 있다는 영적인 인식이 우리를 임마누엘의 축복으로 인도해주는 것이다.
옛날 어른들은 코람데오 그러면서 살았다고 한다. “코람”이란 라틴어로 모모 앞에 라는 말이고 데오는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코람데오는 ‘하나님 앞에서’ 라는 말이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나왔다면 물질을 바쳐서 하나님 앞에 드려진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서있음을 의식한다면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 앞에 여러분 자신을 드리는 것이다. 그렇지!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하고 여러분의 삶의 구석구석에서 여러분 앞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고 살아가신다면 하나님은 일마다 순간마다 여러분 앞에 나타나셔서 여러분의 삶을 임마누엘의 축복으로 인도해주실 것이다. 주일마다 하나님의 성전에 오늘 이 예배드리러 오신 여러분을 중심으로 환영한다. 그러나 오늘 예배시간이 성전에서만이 아니라 한 주간 삶의 현장인 세상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살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회중예배가 되는 것이다.
그 제사에는 제물을 바치는 것과 분향하는 것이 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이 향은 하나님께만 드려져야지, 만일 자기가 그 향기를 맡으려고 향을 만들면 그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했다. 분향이라는 것은 제사에 빠질 수 없는 중요한 것인데 하나님께만 드리는 것이라는 점이다. 말하자면 제사의 대상 곧 오직 하나님께만 드리는 것이라는 말이다. 무엇이든 하나님께만 향기를 올려드리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내 자신을 드리는 제사가 되고 예배가 되는 것이다. 사업을 하던지 직장을 다니던지 무엇을 하던지 하나님께만 드리겠다고 약속하고 시작하시기를 바란다. 그러면 분명히 기적이 일어난다.
보시라!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자녀가 없다. 그런데 이후에 엘리사벳을 만나서 세례 요한이 태어날 거라고 그런 것이다. 이게 기적이다. 나이가 들어서 불가능한 얘기 아닌가? 그런데 이들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생활을 하면서 살았더니 세례 요한이 태어났다는 것이다. 우리 인생을 하나님 그 분께만 드리겠다고 작정하고 나아가면 바로 그 사람에게 기적이 일어난다. ‘나는 나나 나의 나가 아니고 나는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께 드려져야 될 인생이다’ 선언하고 하나님 앞에서 살면 틀림없이 기적이 일어난다. ‘하나님 이 사업이 잘 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거 하나님께 드리기 원합니다. 하나님 내 자녀 잘 되어야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자녀를 통하여 하나님께만 하나님께 영광의 향기가 되고 싶습니다’ 그런 기도가 기적을 낳는다.
신앙생활은 그런 것이다. 무엇을 하시던지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이 들어나야 되는 것이다. 돈 많이 벌었는가? 사업이 잘 되시는가? 좀 괜찮아지는가? 직급이 자꾸만 올라가서 기분도 좋아지는가? 바로 그 때에 고백하라. 하나님께만 여러분의 일생을 드려서 하나님만 향기를 맡으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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