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수 목사 (라스베가스 안디옥교회)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가까이 해서 좋은 것이 있는가 하면 가까이 해서 해로운 것이 있다. 단적인 예로 사람도 가까이 해서 유익이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까이 해서 해가 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에게 가까이 해야 할 것이 멀어지고 있거나, 반대로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까이 하고 있다면 속히 돌이키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의 용기라는 사실이다.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우화 가운데 ‘호저 딜레마’라는 얘기가 있다. 전신에 고슴도치처럼 가시 같은 털이 있는 호저들은 너무 가까이 가면 상처를 받는다. 서로를 가시 같은 털로 찌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멀리 떨어져 있으면 추위에 견디기 힘들다. 그래서 상처를 주지 않고 또 따뜻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가까이 지내면서도 항상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찔리지 않고 또 추워도 이길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네 인간관계에서도 만일 이런 식으로 거리를 두려고 한다면 누구와도 친해질 수 없고, 결국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에게까지도 이런 거리를 유지하려고 한다. 하나님과 가까워지면 자기의 좌와 허물이 드러날까 봐 꺼려하고 하나님과 멀어지면 무슨 벌을 받을까 두려워 적당이 믿으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 사람들의 이런 심리를 꿰뚫어보시고 이렇게 말씀했다.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요3:20) 그랬다. 그러나 하나님과 인간 사이는 가까워야 행복하다. 하나님과 거리가 멀면 불행해진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과 떨어져 멀어졌다는 것이다. 하나가 되어야 할 부부가 마음이나 감정이 괴리가 생겨 각방을 쓴다고 생각해보라, 아니 두 사람 사이가 더 멀어져 별거를 한다고 가정해보라! 그 부부가 행복하겠는가?
시편을 쓴 아삽이라는 사람은 믿음을 가진 사람인데 무던히 믿음으로 살려고 애쓴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믿음을 부인할 뻔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악한 사람들이 세상에서 잘되고 평안히 지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고민해도 악한 사람들이 잘되고 선한 사람들이 고난당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얼마나 불공평한 처사인지 못마땅했던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그런 모순된 현실을 보면서 그 하나님이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벌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불편했는지 밤잠을 설치면서 고뇌했고 갈등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성전에 갔다가 거기서 그 문제를 해결 받았다고 고백했다. 그런 다음에 아삽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복이라!”고 외쳤다. 시18편에는 하나님은 나를 건지시는 분이시오, 방패시라고 노래한다. 하나님은 나를 건지시는 분이기 때문에 고난당해도 실패를 당해도 그분 가까이 있으면 구원받을 수 있고 하나님은 방패이시기 때문에 원수가 공격해도 그 분 가까이 있으면 막아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내 생명이요 나의 빛이시라고 노래한다. 하나님은 생명이시기 때문에 내 생명이 사망의 골짜기에 빠뜨릴지라도 그분 가까이 있으면 생명은 보존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내가 흑암의 골짜기에 방황할 찌라도 그 분 가까이 있으면 한 걸음 한 걸음 내 발이 밝은 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나 사이는 거리가 멀어지면 그때부터 절망이요 어두움이고 무기력이고 죽음으로 치닫는 것이다.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운행한다. 태양과 멀어질수록 춥다. 태양과 먼 곳일수록 생물이 살지 못한다. 태양의 빛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밤이 되고 태양 빛을 받는 시간이 낮이 된다. 그래서 모든 생명이 태양을 중심으로 돌면서 서식한다. 그런데 행전17:28에는 우리가 태양을 만드신 하나님을 힘입어 살며 움직이며 존재하고 있느니라 했다. 하나님이 없이는 살수도, 존재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 가까이 있는 것은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이미 풍성한 복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복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신앙은 왜 흔들리는가? 하나님을 멀리서 아니 멀찍이 따르려는 유혹 호저 딜레마에 빠진 증상이다. 베드로 같은 수제자는 왜 예수님에 대한 맹세를 3번이나 흔들렸는가? 예수님을 가까이 따라가지 않고 멀찍이 따랐기 때문이다. 사탄은 우리와 주님과의 거리를 호시 탐탐 노려보고 있다가 조금만 거리가 생기면 여지없이 파고 들어와서 우리 신앙을 파괴하고 마음을 우리 영혼을 흔들어대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되고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되면 우리 신앙이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하나님이 하나님 가까이 있는 우리의 방패가 되시기 때문이다. 양이 목자에게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 양은 이리와 늑대의 밥이 될 위험도가 높아진다. 유일한 양의 살길은 목자 가까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어도 여러분! 어찌하든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한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다행히 말씀과 기도 생활로 하나님께 가까이 할 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과 가까이 지내는 2016년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