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수 목사 (라스베가스 안디옥교회)
25센트짜리 동전 한 개와 1불짜리 지폐 하나를 앞에 놓고 하나만 집어가지라! 그러면 동전을 집어가는 바보가 있었다. 그러면 동네아이들은 모일 때마다 바보는 동전이 좋은 줄 안다고 동전과 지폐를 함께 내놓고는 동전을 집어가는 이 친구를 놀렸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동리 어른이 어느 날 이 바보를 조용히 불러 지폐가 더 큰 돈인데 왜 동전을 집어가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제가 지폐를 집으면 친구들이 다시는 동전을 집어갈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 뻔하잖아요” 그러더란다. 어른은 혀를 차면서 ‘정말 똑똑한 바보구먼’했다.
일본의 한 화가는 예수님을 ‘바보’로 묘사했다. 사실 산상보훈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마태복음 5장 뒤 부분을 보면 예수님은 아무래도 바보라는 생각이 든다. ‘오른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 속옷을 가지고자 하면 겉옷까지 주어라!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면 십리를 동행해라! 너를 박해하는 원수를 사랑해라’ 이건 분명 바보나 하는 짓 아닌가? 그런데 성경은 이것이 똑똑한 바보의 라이프스타일(life style)이라는 것이다.
똑똑한 바보의 라이프스타일이 누구든지 네 오른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는 것이다. 왜 하필 오른뺨인가에 대해서 랍비들의 설명이 재미있다. 상대방의 오른뺨을 치려면 내 왼손으로 때려야 한다. 그러므로 오른뺨을 친다는 말은 손등으로 때리는 것을 말한다. 뺨을 치는 것만으로도 모독인데 손등으로 뺨을 때린다는 것은 가장 심하게 모독당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존중과 신뢰를 받아야 할 우리가 아주 심한 인격적 모독을 받았을 때 왼편도 돌려대라고 말씀하신다. 오른뺨 맞았다고 욱 하고 주먹을 내밀면 나는 살인자가 되기 쉽다. 그러므로 인격모독을 당했다고 살인자가 되기보다 그냥 손해를 보는 바보 관용과 온유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대하는 똑똑한 바보가 되라는 뜻이다.
두 번째 똑똑한 바보의 라이프스타일을 성경은 또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지게 하며” 했다. “너를 고발하여” 라는 말은 재판정에 고소를 당해서 다 빼앗기고 이제 속옷 한 벌까지 빼앗기는 비참한 상황을 말한다. 최소한의 권리를 마저 빼앗길 위기 상황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시 가난한 유대인은 겉옷을 낮에는 의복으로, 밤에는 이불로 사용했다. 그래서 출애굽기 22:26에서도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그것이 유일한 옷이라 그것이 그의 알몸을 가릴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로운 자임이니라’ 그랬다. 그래서 주님은 겉옷까지 내놓아야 할 형편에 몰리면 흔쾌히 내어주라는 것이다. 최소한의 권리,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내어주고 그냥 손해보고 사는 똑똑한 바보가 되라는 말씀이다.
세 번째 똑똑한 바보의 라이프스타일이 41절과 42절에 있다.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41절 “억지로”라는 말은 당시 시대적 배경을 알아야 한다. 이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제국의 통치아래 있었는데 로마군인들은 길가는 유대인이면 아무나 붙들어 강제로 한 마을에서 다음 마을까지를 짐을 지워 가게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세상 살아가다가 정말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 때로는 내 인격적인 의지나 결단이 없이 억지로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때도 관용과 너그러움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똑똑한 바보라는 말이다.
마지막 네 번째 똑똑한 바보의 라이프스타일이 43절 44절에 있는데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원수를 미워하지 말라” 정도가 아니라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예수님도 몸소 바보처럼 원수들을 사랑하셨다. 원수 갚을 힘이 없고 방법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똑똑한 바보처럼 사는 것이 복 있는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이기에 그렇게 사신 것이다. 십리 길을 가주는 인생이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가 있을 때 그 의무보다 더 많이 하면서 사는 인생이다. 주변 사람들이 거는 기대감보다 더 많은 성취를 이루어주는 인생이다. 받는 대가보다 더 많이 일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직장에서의 근무시간과 태도만 보아도 그렇다. 늘 지각하고 걸핏하면 조퇴하는 사람들–오리 길도 못 가는 사람들이다. 땡출땡근하는 사람들, 정확하게 제시간에 출근하고 땡 하고 퇴근하는 사람들이 오리길 인생이다. 그러나 좀 더 일찍 출근하여 하루 일을 준비하고 근무시간에는 성실하게 맡은 일을 다하고 그리고서도 좀 더 할 일을 찾아서 일하는 사람, 그 사람이 십리 길 인생을 사는 사람이다.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여기 중요한 단어가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이다. 함께 가고 싶지 않을 때가 문제이다. 그런데 여기 생략된 말은 ‘기쁨으로’ 라는 말이다. 기쁨으로 십리 길을 동행하라는 말씀이다. 가고 싶지 않을 때 그때도 포기하지 않고 도리어 기쁨으로 계속 가는 사람이 똑똑한 바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