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수 목사 (라스베가스 안디옥교회)
성경은 우리들을 여러 가지로 표현하는데 그 중에 생각해볼수록 마음에 와 닿는 표현이 바로 갈대, 특별히 ‘상한 갈대’라는 말이다. 갈대는 어디서든지 습기만 있는 곳이면 뿌리를 내리고 자생할 수 있는 번식력이 강한 식물이다. 그러나 작은 바람 앞에도 여지없이 흔들리고 마는 것이 갈대이다. 우리 주님은 우리들을 가리켜서 상한 갈대와 같다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교회에 나올 때 어떤 생각을 하고 나오는지 모르지만 바로 지금 주님이 갈대를 보시듯 우리를 보고 계신다는 것이다. 갈대 중에도 특별히 상한 갈대로 보고 계신 것이다. 왜 그러게 말씀하실까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인간은 가장 상하기 쉬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만큼 상하기 쉬운 존재가 없다. 그저 말 한마디에 순식간에 우리의 마음은 상처를 받고 우리 인생은 꺾이기 쉬운 상한 갈대와 같은 존재이다. 한번은 제가 교회에 처음 나오신 분들을 소개하는데 그만 소개를 받으신 분이 상처를 받았다. 왜냐하면 그분 앞에 계신 분을 소개하면서 “이러 이러한 분이신 데 참 귀한 분이 오셨다”고 소개했다. 그리고는 그 다음 바로 그 분을 소개했는데 그분을 소개할 때에는 그만 “귀한”이란 말을 하지 않았다. 거기에 그분이 상처를 받았다. 그 심정을 바꾸어서 생각해보니까 저 같았어도 상처받았을 것 같다. 우리는 그렇게 말 한마디에도 상처받고 상하기 쉬운 존재이다. 미국 내에 있는 병원의 환자들 65%이상이 Stress relating disease로 치료받고 있다고 한다. 위장병. 혈압에 심장병 같은 모두가 스트레스와 연결된 병들이라고 한다. 우리는 모두 이미 상한 갈대들이다. 이미 상처가 심하다. 그래서 교회에 와서는 아무 것도 아닌 작은 말 한마디에도 그만 우리는 상처를 받고 분함을 느끼고 마음이 상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 모두다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은 인생을 살았는지 주님이 우리를 가리켜 상한 갈대라고 말씀해주시는 그 말씀 한마디로도 우리는 위로가 될 정도이다.
우선 가정에서 받는 상처가 많고 크다. 서로 사랑하면서 살자고 만나 결혼한 가정인데 평생을 위로하면서 살자고 만난 가정인데 어디 그렇게 사랑만 받고 위로만 받고 사는가? 가정에서 받는 상처들이 얼마나 큰가? 어느 부부는 그 마음이 편치를 못해서 거의 1년 동안을 말하지 않고 지낸다는 말을 하는데 그 남편은 남편대로 그 아내는 아내대로 얼마나 그 마음에 상처가 크겠나? 그렇게 사는 것이 어떻게 사람 사는 것이라고 하겠는가? 우리는 다 이미 상할 대로 상한 갈대들이다.
가정이 아닌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온갖 상처를 받고 살아간다. 영어 못한다는 그 이유하나 때문에 얼마나 눈치를 보이고 멸시 당하는가? 뒤에서 비웃고 teasing을 당하고! 어떤 분은 6년 동안이나 열심히 하루도 안 빠지고 열심히 일하다가 한번은 몸살감기에 걸려서 꿍꿍 앓느라고 3일 동안을 직장에 못 나갔다. 그랬더니 그 수퍼바이저한테 전화가 왔는데 무어라 하는가 하면 얼마나 아프냐? 묻지도 않고 You are fired. 회사 그만 두라는 것이다. 이민생활의 세파 속에서 얼마나 우리들의 자존심이 꺾이는 상처를 받는가? 가정 직장 뿐 아니라 교회에서도 만찬가지이다. 교회에 등록하시는 분들을 면담해보면 가슴 아픈 사람들이 많다.
뚜껑을 열고 보면 우리는 누구나 가슴속에 비애와 슬픔과 탄식이 있는 사람들이다. 상한 갈대 같은 우리를 보시고 보살피시고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시는 주님의 말씀은 우리는 꺾어져도 다시 일어서게 되는 갈대임을 믿게 된다. 불타고 꺼져 가는 것 같아도 불꽃같이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는 갈대이다, 없어질 것 같아도 어디서든지 믿음의 습기만 있으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갈대처럼 오히려 상한 갈대들이 더 강한 신앙의 위력이 있는 것이다. 시편 147편에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주님이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 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상심하고 꺾여보고 상처받아본 분들이 가만히 보면 더 강하다. 아픔을 안다. 아픔을 견디고 일어선 그 신앙의 힘을 가지고 일으킨 역사가 바로 우리 기독교 역사이다. 그러므로 상한 갈대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만들어 가시는 승리가 있다.
모세도 상한 갈대였다. 다윗도 상처투성이였다. 베드로도, 마태도,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도 다 상한 갈대이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 벽돌을 쪼개시고 상한 갈대를 엮으셔서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오히려 하나님의 승리를 드러낼 수 있는 상자 구원의 방주들로 쓰임 받은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쓰임 받기를 바란다. 여러분도 다 상한 갈대들이다. 그래서 우리끼리도 힘들지만 서로 사랑으로 엮어지고 거기 주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역청을 칠하고 결코 죄악의 물에 빠져 침몰하지 않도록 서로를 띄우게 만들어 구원역사의 주역들로 쓰임 받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