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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회가 새로워지는 길

민경엽 목사 (오렌지 카운티 나침반교회)

5점 만점에 2.55점. 이것은 2008년 한국교회가 세상에서 받은 신뢰도 점수다. 어찌 보면 억울한 마음도 들고 나름 열심히 세상을 섬기고 있는데 알아주지 않아서 서운한 마음도 있지만 이렇게 낮은 점수를 받은 것은 한국교회의 현주소를 돌아보게 한다. 지난 주 “다시, 프로테스탄트”(복있는 사람, 양희송 저)라는 책을 읽으면서 한국교회가 제대로 평가를 받으려면 결국 본질로 돌아가는 데 길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밝힌 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서 제기된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는 데 공감을 하였다.

첫 번째 로고스(logos)는 자기모순이나 오류, 왜곡이 없어야 하고 새로운 지식에 비추어 늘 갱신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신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말씀을 제대로 아는 것이다. 렉티오 디비나(lectio divina), 이는 ‘거룩한 독서’라고 부르며 영적 훈련의 중요한 영역이다. 이 말은 말씀 아래 무릎을 꿇는 삶을 가리킨다. 말씀을 신뢰하고 그 권위 앞에 자신을 겸손히 내어드리며 그 말씀 속으로 들어가서 그 말씀의 일부가 된 듯이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말씀이 우리 삶의 모든 기준이 되게 하기 위해 부지런히 읽고 연구하고 묵상하고 암송하는 삶을 살아야 신앙의 본질로 돌아갈 수 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박윤선 박사가 주창한 대로 모든 것을 말씀의 잣대로 사고하는 ‘계시의존사색’이다. 우리는 너무 바쁘다. ‘한가하게’ 말씀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 그래서 설교자들부터 밑천한 영성으로 바닥을 드러내고 있으며 성도들은 일년에 성경 한 번도 안 읽는 얄팍한 영성을 가지고도 잘 믿는 줄 착각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금과옥조로 여기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명예로 여기는 참된 부흥이 일어나야 한다.

두 번째 파토스(pathos)는 열정 혹은 공감이란 뜻이다. 자신과 주변을 포함한 세상의 어떤 측면을 놓고 분노하거나 폐부를 찌르는 공감대를 갖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여인들과의 음행으로 타락해가는 것에 분노하여 창으로 두 남녀를 꿰었던 비느하스의 열정이라 할 수 있다. 마치 중세 카톨릭의 타락에 대하여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기치를 들고는 종교개혁자 루터가 그 당시의 부정 부패상에 대항한 것과 같은 것이다. 잘못된 가치를 향해 제대로 맞서 싸우는 능력, 그래서 자기희생을 통해서 자신이 믿는 바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열정이 파토스다. 지금 정체 혹은 쇠퇴기를 걷고 있는 한국교회와 이민교회에 필요한 것은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부흥에 대한 열정을 회복하는 것이다. 한국교회 믿음의 선배들이 지녔던 야성을 회복해야 한다. 목회자들부터 헝그리 정신을 회복하여 부르짖는 영성을 되찾고 원색적인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헌신해야 한다. 우리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복음을 들고 아골 골짝 빈들에도 나아갔던 이전 세대의 열정이다. 필요하다면 세상을 역행하여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피하는 좁은 길을 걸어가야 한다.

세 번째 에토스(ethos)는 기본적으로 인격성, 신뢰성, 혹은 윤리를 의미한다. 에토스는 일상에서 쌓아올린 신용이라 할 수 있다. 요셉처럼, 다니엘처럼 매일의 삶에서 조금씩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신뢰를 받는 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충실하게 살며 마땅히 필요한 자기희생을 기꺼이 감당하려는 태도가 있어야 한다. 이제는 삶에서 개신교인들의 윤리적 우위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1세기에 로마인들은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면서도 존경했다. 그들은 “기독교인들을 보라”라고 말하곤 하였다. 기독교인들의 겸손, 사랑, 성실, 신용을 본받자는 말들이 도처에서 울려 퍼졌다. 기독교인들은 타락한 로마제국의 사람들 사이에서 경건한 삶에 있어서 군계일학과 같았다. 로마인들은 비록 겉으로 핍박은 하면서도 속으로는 기독교인이라고 하면 신뢰하고 존경하였다. 그래서 로마제국이 기독교회 앞에 무릎을 꿇은 면도 있다. 교회의 각종 결정들과 행태들이 세상에 부끄럽지 않은 결과를 보여주어야 한다. 각종 분열과 부패로 인해 더 이상 세상이 교회를 염려해주는 치욕을 당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음을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좀 더 넉넉한 덕이 있는 삶을 살지 못함을 속상해해야 한다. 우리 세대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썩어지고자 한다면 다음 세대에 많은 열매를 맺어 이전 세대에 경험했던 부흥을 다시 주실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소서, 호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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