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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대적할 용기를 내어야할 때

이동진 목사 (성화장로교회)
이동진 목사

(성화장로교회)

서울대 홍성욱 교수의 최근 칼럼에서 흥미로운 질문을 보았다.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에게 질문한 내용이라고 했다. 그 질문은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다. 쿵 소리가 나겠는가, 안 나겠는가?”라는 것이었는데, 소리가 난다고 대답한 학생이 70%,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대답을 한 학생이 30%였다고 한다.

이 질문은 사실 최근 어느 OTT드라마 초입부에 던져진 상징적인 질문이었다고 한다. 드라마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말하지 않았지만, 그 의미는 ‘꺼림칙한 상황을 내가 보지 못했다고 해서 아무 일 없을거라고 넘겨버리서는 안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홍 교수는 이런 질문을 제시하면서 고대 중세의 정신을 지배했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는 ‘소리가 난다’를 답으로 가르쳤지만, 17세기 과학혁명 시기에 등장한 근대과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을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나무가 쓰러지면 공기의 진동은 있지만 쿵 소리는 나지 않는다’는 답과 ‘만일 우연히 그 숲에 사람이 있다면 그 진동을 쿵 소리로 들을 수 있다’는 답으로 설명하면서 이것이 근대과학 세계관이라고 밝혔다.

이 설명을 위해 물체의 1차 성질(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 같은 입자의 크기, 모양, 배열, 숫자 등), 2차 성질(실제 존재하지 않으면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뿐인 색깔, 냄새, 맛, 소리, 촉감 등)에 대해 덧붙이고 있는 과학 전공의 홍 교수는 드라마에서 던진 이 질문을 가지고 과학적 풀이를 해가고 있지만, 오늘 우리가 찾아보고자 하는 것은 원래 드라마에서 선택한 이 말이 가진 속뜻(意味)이다. 속뜻, 바로 기독교신앙이 짚어낼 수 있는 죄(罪)의 문제로 이 말을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분명 무언가 있는 꺼림칙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못 보았으니까 별 일 없을 거라고, 괜찮을거라고’ 자기변호를 하며 넘겨버리는 문제가 우리 안에 있지 않은가?  분명 죄에 대해 무디어진 시대가 되었다.  성경이 밝히 알려준 죄들일지라도 우리가 막아서면 충분히 덮을 수 있다는 교만의 시대임을 부인할 수 없다.  교회들이 모인 교단 안에 이미 그러한 교만과 아집은 막강한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고, 적은 규모의 교회들 안에서도 자기들만의 카르텔로 ‘진리’보다 더 강력한 파워를 구축하고 있는 그룹이 있다. 오늘날 교회의 부끄럽고 무서운 모습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분명, 진리의 사람들, 겸손의 사람들, 사랑의 사람들이 없지 않음에도 하나님의 뜻과 대치되는 다양한 형태의 ‘교만 카르텔’이 교회를 좀먹고 있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예라고 답해야할 것에는 분명히 예라 답할 수 있는 용기, 아니오라고 답해야할 때는 그야말로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니오라고 답할 수 있는 정직한 용기가 신앙이다.  그 용기는 어디서 나올 수 있을까? 성경은 ‘성결(聖潔)’이 바로 그 정직한 용기라고 말해주고 있다.

가을, 노회들이 회집되는 계절이다. 노회와 교회들이 성(聖)모임이라면 부당하거나, 부정직하거나 불결한 것에 대하여 정직한 용기를 내어야만 한다. 최근 올림픽 이후 드러나고 있는 핸드볼협회, 축구협회 등 사회적 문제만이 아니라, 곳곳에 숨겨져있는 카르텔적 비신앙요소들에 대해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다. 쿵 소리가 나겠는가, 안 나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신앙이 필요하지 않은가?

이미 견고해진 여러 강력(剛力) 앞에서 아직 기회는 열려있다. 더러움을 씻어낸 깨끗하고 정직한 신앙. 거기에서 드디어 대적할 용기가 나올 것이다.  

djlee7777@gmail.com

 

09.14.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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