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교회, 풀러 Th. M
개신교 대부분의 교단이 사용하는 신앙고백인 사도신경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로 시작한다. 영어로는 “I believe in God the Father Almighty...”이다. 영어로 하면 “내가 믿는다.”라는 말이 앞에 나오기에 더욱 신앙고백의 의미가 강하게 와 닿는다. 다윗은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을 때 시편 57편을 쓰면서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7절)라고 자기의 결심을 외쳤다. 이것 역시 일종의 신앙고백이다. 어려운 상황이 끝도 없이 이어질 때 다윗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찬송하며 감사할 수 있기를 확정하고 또 확정하였다. 이렇게 신앙고백을 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그가 처한 현실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자기 마음을 다잡고 흔들리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도 이렇게 신앙고백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은,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교회의 경우, 매 주일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한다. 또한 교인들에게 대표기도를 하는 시간이나 개인기도를 할 때 하나님의 성호를 부르며 신앙고백의 시간을 갖도록 권면한다. 우리는 기도할 때도 마음이 너무 급해서 우리가 필요한 것을 구하기에 바쁘다. 이런 식의 기도는 알라딘의 요술램프를 문지르며 지니를 불러내어 이것저것 주문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내 삶에 어떤 분이신지를 묵상하며 그 하나님께 나아갈 때, 내가 믿는 바를 그분 앞에 고백할 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며, 먼저 나의 결심을 밝히는 셈이 된다. 하나님은 나의 창조자이시고 아버지이신 사실 앞에 감격하며 그 영광스러움을 고백하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주신 십자가 사랑에 감사하며 먼저 자신의 신앙고백을 드리는 것이 대표기도나 개인기도의 적절한 순서다.
그다음으로는, 기다려야 한다.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나의 신앙고백이 현실이 되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동안 나의 도끼날을 갈아야 한다. “도끼날을 갈지 않아 날이 무디면 그만큼 힘이 더 든다. 그러므로 도끼날을 가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이다”(전10:10, 현대인의 성경). 도끼날을 갈지 않고 나무를 자르면 힘은 더 들지만, 효과는 그와 반비례한다. 그러므로 나의 신앙고백대로 되는 그날이 올 때까지, 나의 도끼날을 효과적으로 쓸 수 있기를 대비하면서 나의 도끼날을 최선을 다해 갈아야 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내 눈앞에 보이는 필요들을 외면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주는 나의 피난처>라는 감동적인 간증집을 펴낸 코리 텐 붐 여사는 2차 대전 당시 아버지와 함께 네덜란드에서 시계점을 운영하였다. 그는 유대인이 아니지만 탄압받는 유대인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어서 자신의 집과 이 일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은신처에서 유대인들을 숨겨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조산으로 태어난 지 보름밖에 안 된 아이를 품에 안은 유대인 산모가 자신들을 보호해 주기를 요청하였다. 울어대는 어린 아기를 어떻게 숨겨준단 말인가? 매우 난감한 상황이었는데 코리가 보기에 완벽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할 만한 사람이 나타났다. 인근의 교회에서 목회를 하는 목사였다. 하지만 그 목사에게 이 가족을 데려가 숨겨달라고 부탁하자 그는 냉정하게 거절하며, 이런 일은 불법이고, 너무나 위험한 일이며, 유대인 아이 때문에 목숨을 잃을 수는 없다고 매몰차게 쏴 붙였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코리의 늙은 아버지가 이렇게 말하였다. “이 아이 때문에 우리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지요? 우리 가족에게 그런 일이 생긴다면 저는 그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여길 겁니다.” 신앙고백과 현실 사이에는 엄청난 괴리가 있고, 신앙고백대로 현실에서 살려고 하면 큰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인생의 생사화복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믿기에 먼저 신앙을 고백하고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고 때가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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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