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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함에 대하여

류응렬 목사

(와싱톤중앙장로교회)

연일 북한에서 쏘아 올리는 로켓포로 인하여 한국도 미국도 대응책을 두고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이번에 터진 카카오의 대란은 아무리 인간 사회가 발전하고 혁신적인 기술이 더 나은 세상을 약속하지만 결국 인간의 문명이라는 것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 줍니다. 세상은 매일 펼쳐지는 다양한 사건 앞에서 일희일비하는 삶으로 가득합니다. 유한한 세상 앞에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장엄함이 세상에 더 높아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랍니다. 

 

높고 푸르러 가는 가을 하늘은 제라드 맨리 홉킨스가 쓴 하나님의 장엄함, God’s Grandeur라는 시를 떠올립니다. “The World is charged with the grandeur of God” (세상은 하나님의 장엄함으로 충만하네). 온 세상 만물에 깃들인 장엄함이란 위대한 언어의 능력을 지닌 시인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으로 창조하신 세상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에게는 꽃을 찾아 분주하게 날개짓 하는 벌들에게나 바람에 실려 하염없이 날아다니다 이름 모를 땅에 내려 기어이 한 송이 꽃을 피우는 민들레 홀씨에도 새겨져 있습니다.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이지만 그 이글거리는 불덩어리가 온 우주 공간을 거쳐오면서 따스한 햇살이 되어 포도알 끝에 내려 단맛을 스며들게 하는 것을 관찰할 줄 아는 사람에게 장엄함이란 존재하는 하나의 단어가 아니라 가슴을 떨게 하는 경이로움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장엄함은 자연과 삶에 대한 경탄을 자아내게 하고 삶을 의미와 기쁨으로 차오르게 합니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리요 기쁨이 넘쳐나는 땅이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아무렇게 피어난 들꽃 하나도 솔로몬의 옷보다 아름답고 무작정 지저귀는 하늘의 새소리도 어떤 교향곡 보다 감미롭게 들립니다. 이런 눈과 귀를 가진 사람은 사람이 만들어 낸 위대한 업적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영광스러운 존재에 감탄합니다. 세상의 모든 장엄함이라 해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인간에 비하면 태양 앞에 화려한 샹들리에의 빛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지상에 존재하는 날 동안 우리 가슴이 이런 장엄함에 물들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영혼은 즐거이 삶을 노래할 것이요 마침내 진흙 인생에 생기를 불어넣어 호흡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어그러진 세상을 보든 거울 앞에서 무너진 자신의 모습을 보든 우리는 절망의 무게보다 언제나 저울추가 조금 더 기울어져 있는 희망의 날개를 바라볼 것입니다. 허물로 범벅 된 인간이나 어그러진 세상에 아파한다 해도 소망의 노래를 조금도 그칠 필요가 없는 것은 여전히 세상의 지휘봉은 하나님의 손 위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1741년, 헨델은 성령에 취해 먹고 자는 것도 잊은 채 24일만에 메시아 작곡을 마치고 마지막에 모든 선율을 뛰어넘는 심장의 소리를 새깁니다. 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마지막 할렐루야 연주가 끝이 났을 때 영국 왕이라 해도 그 자리에 그냥 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1789년, 하이든은 3년에 걸쳐 천지창조를 완성했습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1시간 50분의 공연이 끝났을 때 천상의 소리에 모든 사람은 하이든을 향해 박수를 보냈습니다. 노장의 하이든은 박수를 중단시키고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습니다. 천지창조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주의 영광 그 공로, 영원히 노래하라 우리 주를 아멘.” 깊어가는 이 가을날 주님 앞에 비오니, 부디 우리 삶이 하늘의 장엄함으로 차오르게 하소서. 

preachchrist@kcpc.org

10.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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