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싱톤중앙장로교회)
무성한 여름이 지나가고 서늘한 바람 따라 가을이 오는 길목에 제가 좋아하는 세 가지 라틴어를 떠올려 봅니다. 첫째는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오랫동안 제 책상 앞에 이 글귀를 써 놓고 그 의미를 되살려보곤 했습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승리한 장군이 개선행진을 할 때 백마가 이끄는 전차 뒤에 탑승한 산 사람이 장군에게 계속 이 말을 새기도록 외쳤다고 합니다. 오늘 승리의 개가를 부르지만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고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교훈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2005년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 연설에서 매일 아침 오늘이 인생 마지막 날이라면 어떻게 살 것인가를 떠올리는 것이 삶을 더욱 가치있게 만들 것이라 강조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 거울 속에 자신을 볼 수 있다면 행복하고 감사할 이유가 충분한 사람입니다. 어제 세상을 떠난 사람이 전부를 드린다 해도 얻을 수 없는 하루를 선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오늘이라는 날 동안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사명을 위해 고결하게 불태우다가 주님 앞에 서야 할 것입니다.
둘째는 Carpe diem, 현재에 충실하라는 말입니다. 1990년 개봉된
'죽은 시인의 사회' 에서 존 키팅 선생님이 외친 한 마디로 전 세계 젊은이를 열광하게 한 말입니다. 저는 젊은 시절 이 경구를 마치 성경구절이나 되듯이 새 책을 사면 적어두곤 했습니다. 저의 시간 철학을 ‘하루살이’라 부르면서 먼 미래의 계획을 세우려 하지 않고 한날 한날 살아가고자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 구절은 가끔 젊은 날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현재를 즐겨라, 또는 한 번뿐인 인생을 마음대로 살라는 식으로 번역되어 그 진정한 의미가 몸살을 앓곤 합니다. 영어로 표현하면 Seize the day, 오늘을 잡아라, 주어진 오늘 하루의 삶에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제는 흘러간 물과 같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기에 매일 순간을 가치있게 살아간다면 인생은 참 아름다운 향기로 충만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에 영혼의 눈이 열릴 때 오늘 하루 진정한 최선의 삶이 나타날 것입니다.
셋째는 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독일 철학자 니체의 <즐거운 학문>에 나오는 말로 ‘운명애’라고 불립니다. 니체는 인간의 삶을 끝없는 권력의지를 통해 결코 이룰 수 없는 욕망의 샘에서 마실 물을 찾는 인간으로 묘사합니다. 인간은 죽음 앞에 굴복하는 연약한 존재이기에 결국 “네 운명을 사랑하라”는 명제에 도달합니다. 니체의 삶과 이 고백의 근거는 기독교 가르침과는 다르지만 이 말 자체는 참 의미있게 다가옵니다. 내 삶이 하나님의 절대주권 안에 놓여있다면 우리는 어떤 삶이 펼쳐진다 해도 모두 안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루 저녁에 사라지는 안개 같은 연약한 존재 앞에서 니체도 헤밍웨이도 허무를 노래했지만 신자에게는 그 연약함이 전능자의 자비를 구하는 통로이며 하늘의 은혜를 만나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지상에서 살아가는 날은 흐르는 물처럼 단 한번 살아갈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허락하신 삶은 순간마다 소망이 충만하며 아직도 호흡이 있다면 사명이 있기에 의미 깊은 인생입니다.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고 땅 위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달려가야 할 사명을 품고 있다면 우리는 영원히 아름다운 인생을 노래할 것입니다. 오늘도 온 세상 곳곳마다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지으신 만물이 창조주를 드러내는 영감으로 가득한 세상을 바라보며 하늘을 향해 기쁨의 찬가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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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4.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