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장로교회)
교의신학 또는 이론신학이라고도 하는 조직신학에서는 신론, 인죄론, 구원론, 종말론, 교회론 등 기본교리를 가르친다. 즉, 여러 가지 커리큘럼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진리와 사실을 비롯해 하나님과 우주, 하나님과 인간관계 등을 짚어주고, 하나님의 창조, 섭리, 구원, 종말 등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가르쳐 준다.
그만큼 조직신학은 신앙의 근본과 기준이 되는 학문이다. 그래서 교회는 다양한 성경공부와 설교, 개인묵상 등을 제시하고 안내하면서 기초가 튼튼한 성도들이 되도록 가르치고 있다. 문제는 배우고 받아들여야 하는 성도의 입장에서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단순 요약해 보았다. “개는 개이고, 사람은 사람이고, 하나님만이 하나님이시다.” 반려견과 함께 생활하는 분들이 오해할지 모르지만 이 단순정의가 기독교의 기본이고, 교회의 기초이고, 성도 개인의 근본이다.
80년 만의 물난리를 당하면서 서울 강남의 ‘고급’이 영화 기생충에 등장한 하층민의 상징인 반지하의 물난리 화면과 같은 모습이 되어버렸다.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개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된 세상,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는 목적의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은’ 이 세상이 불과 몇 시간 만에 초라한 밑바닥으로 떨어졌다. 물난리 난 영상을 보는데 마치 창세기 1장 이전의
‘혼돈(混沌, Chaos)’의 시대를 감각하지 못하고 살고있는 이 시대를 향한 경고 사이렌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다. 빌딩이 서 있고, 사무실은 활발하고, 만남들과 사이버 대화들이 공존하면서 질서있게 진행되는 이 시대를 ‘질서 있는(Cosmos)’ 인류사회라고 자만하던 이 땅에 비구름이 잠시 열렸을 뿐인데 모든 질서는 혼돈으로 엉켜버리다니. 순식간에 창조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서울의 강남을 우리는 보았다.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고꾸라진 문명의 현장을 허망하게 바라보았다. formless, empty, darkness 창세기 1:1의 이 세 단어가 2022년 서울 강남 한가운데 쓰여진 현장이 비루하고 비참하게 널려져 있는 영상 앞에서 망연자실.
우리는 눈으로 보이는 것을 사랑하며 살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래서 교회도 건물을, 성도도 외모를, 능력도 결과를 보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듯 그제서야 감사한다고 고백하지 않았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잊어버리고 내 방식의 사랑을 당당해하던 교회는 그동안 도대체 어떤 사랑을 내세우며 감히 하나님을 닮아간다고 말했던 것인가.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껍질’에 유혹당한 이브처럼 우리는 그 껍데기사랑을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우기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서울 강남의 물난리만이 아니다.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캘리포니아의 심각한 가뭄, 뜨거운 태양의 땅 Death Valley에는 ‘천 년에 한 번 확률’이라는 돌발홍수가 덮어버렸다. 간단히 기상이변(氣象異變)이라는 말로 인류의 무엇을 설명할 수 있을까? 전 세계의 기상이변 현상은,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창세기의 언어를 기억하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개를 예뻐하되 사람으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나도 그 정도에 이를 수 있다고 자만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기독교의 기초교리인 조직신학이다.
물난리 난 곳을 청소하고, 보수하고, 다시 세운다고 될 일이 아니다. 다시 세워진 문명이 사람이 보기엔 '또 좋아 보일 수 있다' 해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될 수는 없다. 시절의 변화와 현상들의 실체인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세상 속에서 개를 개의 자리로, 사람이 사람의 자리로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만의 영광이셔야 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세상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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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0.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