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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를 평화의 날로! (1)


「마오쩌둥이 1958년 쓰촨성 농촌을 시찰하다가 배고픈 인민들이 먹어야 할 곡식을 참새가 쪼아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오쩌둥은 참새를 쳐다보며 ‘저 새는 해로운 새다’라고 말했습니다. 마오쩌둥의 한마디에 ‘참새 섬멸 총지휘부’가 만들어졌습니다. 얼치기 지식인들은

 ‘참새가 사라지면 70만명이 먹을 수 있는 곡식을 더 수확하게 된다’며 바람을 잡았고 대대적인 소탕작전이 벌어졌습니다. 이제 곡식 수확량이 늘어나야 할 순서인데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참새가 사라지자 메뚜기를 비롯한 해충이 창궐했고 농작물은 초토화됐습니다. 1958년부터 3년 동안 중국인 3000만명이 굶어 죽었는데 마오쩌둥 한마디가 불러온 참사였습니다. 해충의 공격을 받아 농작물이 쑥대밭이 되자 다급해진 마오쩌둥은 소련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러고는 시베리아 벌판에서 참새 20만마리를 잡아다가 중국 각지에 풀어놓았습니다. “해로운 새, 참새를 때려잡자”고 쫓아다니던 사람들이 곧바로 “이로운 새, 참새를 잡아오자”며 시베리아 벌판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생태계가 있습니다. 인간은 자기의 유불리에 따라 자연생태계를 교란하였습니다. 각종 감염병의 창궐도 자연생태계를 파괴한 인간이 받은 업보입니다. 하나님이 자연을 다스리라고 했지 파과하고 착취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퍼온글). 공감의 울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의 핵심은 “평화”입니다. ‘평화’는 ‘平-균형, 和-어울어짐’ 즉 ‘관계성’입니다. 사람과 자연의 평화, 사람과 사람의 평화, 공동체와 민족과 국가 간의 평화 등등 ‘더불어 함께 사는 일, 균형과 조화’입니다. 6월은 한반도에, 한민족에게 아주 특별합니다.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난 달이기 때문입니다. 올해가 1950년 6·25전쟁 발발 72주년이요,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휴전 69주년이 되었습니다. 휴전이 이뤄진 지 70여 년 동안 우리는 상호 불신과 미움과 증오의 평행선상을 달려, 오늘날 한반도의 정세는 핵의 위협과 미사일이 오고 가는 전쟁 위기 지역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인 평화’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상황과 정반대의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된 데는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여러 원인들과 다양한 이유들이 있지만, 저는 광의로 가장 먼저 우선 교회와 크리스챤들의 책임을 담아봅니다. 하나님이 한반도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북한지역에는 원산과 평양 대부흥운동을 일으키셨고 남한지역에는 세계사적으로 유례없는 한국기독교 부흥 시대를 열어주셨건만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창조 질서인 평화를 연습하고 실천해내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한국교회와 크리스챤들은 통감 회개하고 한반도, 한민족의 평화를 연습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오늘을 살아내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번과 다음번 시론에 그 이야기들을 이어 담아내 봅니다. 가장 먼저 한반도의 평화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한반도에서의 평화란 무엇인가? 에 대한 ‘공감형성’입니다. 먼저 국제사회에서 바라보는 남한과 북한은 엄연히 다른 2개의 국가라는 현실 인식을 분명히 해야 됩니다. 그동안에 우리는 양방 모두 무력통일, 흡수통일, 평화통일 즉 국가와 국가간의 통일을 축으로 방법을 논했다면, 이제는 그걸 넘어서서 국가와 국가간의 평화를 축으로 한반도 통일을 논하는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우리가 남북한 통일의 문제를 다루기 전에 남북한이 먼저 함께 평화를 연습하고 실천하여 길을 닦아나가는 일들이 통일 이전에 우리가 마땅히 선행되어져야 할 일들이라는 맥락입니다. 평화에는 여러 개념들이 있지만 특별히 남북한 같이 적대적 구조 속에서의 한반도의 평화는, 분쟁이 없는 상태에서의 평화가 아니라 분쟁을 겪고 있더라도 그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상존, 공존, 상생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 ‘평화로 나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한국 여권 가지고 자유롭게 북한을 방문하고 북한 여권 갖고 자유롭게 한국을 방문할 수 있는 길, 그러한 길을 닦으며 나가는 것 그리고 한반도에서 한민족으로서 세계를 향해 동반성장을 함께 꿈꿀 수 있다면 이것이 ’한반도의 평화‘입니다. 그리고 이의 축적을 바탕으로 평화로 통일을 그려나가게 될 것입니다. 필자는 이러한 꿈을 꾸며 ‘사단법인 평화드림포럼 (PEACE DREAM FORUM. PDF. www.peacedream.org)’을 시작했습니다. ‘평화드림포럼’(통일부 소속)이라는 이름은 “평화를 드림(꿈꾸고), 우리의 기도와 수고를 하나님께 드림(실천하고). 이러한 평화를 한반도와 세계에 쭉 펼치자, 드리우자, 드림(하나님 나라)”라는 3가지 의미를 담고, 포럼을 통하여 공감과 실천의 외연을 넓혀나가자는 뜻으로 2021년 6월25일에 ‘6·25를 평화의 날’로 선포하며 첫걸음을 띄었습니다. 미국 코네티컷주 뉴헤븐에 있는 예일대학교 중앙 센터빌딩 둥그런 벽에는 사람 이름들이 빼곡히 적혀 있습니다. 예일대학교 재학생이나 졸업생들 가운데 베트남전쟁, 이라크전쟁 등등에서 사망한 전사자의 이름들입니다. 물론 거기에는 코리아전쟁도 있습니다. 한리버(한강), 낙동리버(낙동강) 전투 등등의 이름 아래에 전사자들 명단이 빼곡히 적혀져 있습니다. 이들이 과연 그당시 한국이란 나라를 알았을까요? 전혀 몰랐을겁니다. 다만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그들은 머나먼 땅 한반도에 생명을 내 놓았습니다. 만약 이분들의 피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과 저희들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희생들을 어찌 우리가 잊겠습니까? 절대 잊어서도 안되고 잊혀져서도 안됩니다. 우리는 이런 6·25를 분명히 충분히 기억은 하되, 이젠 6·25가 우리들에게 더 이상 한반도 평화를 향해 걸어가는 장애물로 작용하거나 발목을 잡아서는 안된다는 마음으로 미래지향적 내일을 그려보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취지로 ‘6·25를 평화의 날’로 선포하면서, 이젠 6·25가 ‘민족화해’와 ‘평화로 통일을 논하며’ 다음세대 가치와 유산을 위해 서로 평화를 연습하고 평화를 실천하는 그런 날로써 분명히 자리매김할수 있도록, 역사적으로 한번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된다는 취지로 ‘6·25를 평화의 날’로 선포한 것입니다. 그러니 다른 오해가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미가 4:3). ‘하나님의 창조질서인 평화’ 입니다. 6월을 맞아 한반도에서의 평화를 기도하며 하나님이 하실 평화를 고백합니다. 다음달 시론에 이어갑니다.

pastor.eun@gmail.com

 

06.0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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