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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의 지도력!

은희곤 목사

평화드림포럼 대표

다윗왕은 밧세바를 범했을 뿐 아니라 남편인 충성된 장군 우리아도 죽게 만듭니다. 분명히 왕이 해서는 안 될 나쁜 짓을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어마무시한 왕의 권력 때문에 일반 백성들은 ‘에이, 왕인데 그런 것쯤이야’ 하며 애써 외면하고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냥 지나가지 않으셨습니다.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다윗의 잘못과 죄를 짚으셨습니다. 

‘밧세바 신드롬’(bathsheba-syndrome)이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습니다. 이름 첫마디에 벌써 목욕을 뜻하는 ‘bath...’라는 말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이는 ‘고위 공무원, 고위 공직자들의 도덕 결핍증’을 말합니다. 내가 왕, 대통령인데, 내가 장관, 비서실장인데, 내가 기업 총수인데, 내가 돈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총장, 이사장, 문화 예술계의 킹메이커인데, 내가 비선 실세인데, 내가 한가닥 하는 이들과 얼마나 친한 사람인데, 내가 목사, 감독, 신부, 주교, 장로인데, ‘내가 ....인데’하며 설마 이 정도쯤이야 감히 누가 뭐라겠느냐? 라고 갑질을 일삼습니다. 아예 이것을 잘못이라고 느끼지도 못하는 ‘도덕적 윤리적 결핍증’이 바로 ‘밧세바 신드롬’입니다. 헌데 이 ‘밧세바 신드롬’은 불어의 ‘노블리제 오블리주’(noblesse oblige)와도 일맥상통합니다. 사회의 지도층이라면 그에 따른 높은 준법정신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구약성경의 밧세바와 다윗의 이야기는 약 3000년전 일이지만 오늘도 ‘밧세바 신드롬’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2006년 미국의 여성 사회운동가 ‘타라나 버크’가 이에 저항하기 위해 ‘미투운동’(Me Too Movement)을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도 2018년 검찰 내부통신망 ‘이프로스(e-pros)’ 게시판에 '나는 소망합니다'라는 글을 올린 ‘서지현 검사’를 시작으로 공개적으로 ‘미투운동’이 시작됐습니다. 이어 정치 사회 문화 경제 교육 종교계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존경하고 정의를 부르짖고 사랑했던 인물들이 봇물 터지듯 매일같이 뉴스 화면을 한동안 점령했습니다. 하루아침에 그 높은 곳에서 대책 없이 그냥 뚝뚝 바닥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남성들을 적으로 몰아가는 ‘페미니즘’도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타라나 버크’는 “분명 미투 운동은 성폭력을 겪은 이들 모두를 위한 것이지 여성들만을 위한 운동이 아닙니다. 남자들은 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관계없이 어느 집단에서든 제도와 권력을 이용하여 강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사회적 약자들을 그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강압적으로 자기의 욕심과 욕망을 성취하려고 위해를 가할 때, 이것은 분명한 범죄행위입니다. 그러기에 ‘미투운동’도 ‘밧세바 신드롬’에 대한 ‘저항운동’중 하나입니다. 

아직도 교회 안에서 “내가 목사, 장로요, 중요한 인물이기에” 상대적으로 약자들을 성적으로나 회의할 때나 교회생활에서나 강압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런 모습들이 습관적으로 나온다면 역시 ‘밧세바 신드롬’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말씀이 나단 선지자가 되어’ 분명히 말합니다. 다윗처럼 땅을 치고 자복하며 회개하라고. 우리들에게 주어진 직분은 섬김을 위할 뿐입니다(벧전4:10, 빌2:3, 고전12:22-27). 다만 ‘청지기’일 따름입니다. 

요즘 한국은 대선이 다가올수록 어떤 분이 대통령이 되어도 참 힘들겠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들을 주변에서 종종 듣게 됩니다. 연이어 터져 나오는 과거의 행적들을 볼 때 ‘노블리제 오블리주’라는 인성과 선행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밧세바 신드롬’과 더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필자가 모 대학교 이사로 있었을 때 총장후보들과 인터뷰를 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후보들 모두 “내가 총장이 된다면 이렇게 저렇게 장학금을 마련하여 사랑하는 학생들에게 제공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당시 필자는 그분들에게 이렇게 질문을 했습니다. “두 분 모두 평교수부터 시작하여 교무처장, 대학원장 등 학교 보직을 다 거치셨는데 꼭 총장이 돼야만 그리하나요? 평교수 때는 학생들을 사랑하지 않으셨나요?” 평상시 진정성을 물어봤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대통령후보 두 분들도 후보가 되고 난 후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이전에 그들이 평범했을 당시에 행했던 ‘노블리제 오블리주’의 실천과 선행들의 이야기들을 듣고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계속 후보가 되기 전까지도 이어졌다면 그 진정성은 충분한 ‘자격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누구도 이런 이야기들을 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개개인이 판단할 문제이지만 갑갑합니다. 

개신교회는 ‘저항, Protestant’입니다. 세상은 우리와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을 봅니다. 개신교회와 신자들은 언제나 어디서나 마땅히 ‘밧세바 신드롬’에 저항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먼저 참회의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와 신자들이 사회 안에 일어나고 있는 ‘밧세바 신드롬’에 ‘프로테스탄트 저항’해야 합니다. 교회와 신자들이 사회 안에서 끊임없이 ‘노블리제 오블리주’의 선행을 실천하여 그 진정성을 보여야 합니다. 교회와 신자들이 이 나라와 사회를 차별 없이 공평한 공의로운 하나님 나라로 이끌어가는 진정한 지표, 표지(Sign)가 되어야 합니다. 그 길이 올 한해 우리들의 신앙순례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이번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진정한 지도자가 대통령으로 선출될 수 있기를 함께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02.0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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