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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라비스망(ravissement)은 어디로 갔는가

이동진 목사

(성화장로교회)

미국 색채연구소 팬톤(Pantone)이 지난 주에 ‘2022년 올해의 색상’(Announcing the Pantone color of the year 2022)을 발표했다. 지금까지는 기존의 자료에 있던 색상중에서 선정하던 ‘올해의 색’을 처음으로 직접 만든 색으로 선정한 팬톤의 새로 창조된 색(color)의 이름은 베리페리(Veri Peri)이다.

Red나 blue 또는 Yellow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색깔이 아니라 팬톤이 새롭게 만든 색인 베리페리색(色)은 평온한 느낌의 파란색에 에너지 넘치는 빨간색을 섞어 마치 보랏빛이 감도는 제비꽃 느낌을 주고 있다. 이 색상을 만들어 선정한데 대해 팬톤의 로리 프레스먼 부사장은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면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 앞에서 이 파도를 돌파하기(break through)위해 우리는 용기 있는 창의성을 발휘했다”고 밝혔다. 이와 같은 색 선정에 대해 세계 언론들은 ‘전통적 blue의 항구성과 red가 주는 에너지와 기대감’을 가질 수 있는 색이 보여주듯이 불안한 시대에 무언가 희망의 닻을 내려주기 위한 작업을 해주었다고 평가했다.

세상은 이처럼 흐름에 민감하고, 사람들에 다가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각 분야의 연구소들은 물론이지만 이윤추구의 기업들도 시대의 흐름을 신속하게 파악하고 그 물결을 어떻게 타야 할지, 어떤 물길을 만나고, 어떻게 위기를 넘어설 것인지 연구한다. 새로운 색을 만들어내는 창조적 시도를 통해 사회에 공헌하고자 한 이러한 시도에 세상은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가 가진 가장 파워풀한 힘은 ‘복음’이라는 능력이다. 이 복음 안에는 우주의 창조로부터 지구 최후의 날까지 존재할 생명의 신비가 다 들어있으며, 과거의 역사 뿐 아니라 아무도 살아보지 못한 미래와 영원이라는 초월적 시간도 담겨져 있다. 이 엄청난 ‘복음’을 가진 곳이 바로 교회이다. 그런데 정말 교회에 그 복음이 있느냐는 질문 앞에서 머뭇거리며 ‘오늘의 교회’들은 또 이렇게 팬더믹 두 번째 해를 넘어가고 있다.

색(color)의 표준을 만들고 분류하는 회사는 인류에게 희망을 전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 새로운 색을 그야말로 ‘창조’해내는데, ‘오늘의 교회’는 가쁜 숨과 한숨을 내쉬는 인류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아쉽게도 마침 오늘 한국뉴스에서는 ‘여성 교인과 불륜 즐기려 교회자금 1600만원 빼돌린 60대 목사’라는 민망한 제목의 보도가 전하지고 있다.

프랑스 미학자 에티엔 수리오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능력으로 ‘라비스망(ravissement)’을 꼽았는데, ‘강탈하다, 약탈하다’라는 뜻의 프랑스어인 이 말은 ‘어떤 것에 마음을 완전히 빼앗겨 몰입하는 능력“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세상은 이 라비스망이 인류의 오늘을 만들어냈다고 스스로 높이 평가하면서 교회를 비웃고 있는 것만 같다. 영광과 전능과 위엄과 사랑과 긍휼과 은혜라는 단어에 완전몰입하지 못하고 껍데기만 서있는 것 같은 교회를 향해.  부끄럽고 안타깝지만 또 한 해가 넘어가는 이 시간, 우리는 세상의 라비스망 앞에서 교회의 라비스망은 어디로 사라져버렸는지 철저히 돌아보아야 한다.

팬더믹의 두 번째 겨울이 넘어가고 있다. 색채연구소는 색을 창조(?)했다면서 베리페리색을 선보이고 있는데, 창조의 근원인 교회는 무엇을 세상에 내어놓으며 위로한다고, 힘을 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창조’를 색채연구소에게 넘겨준 교회, 30배, 60배, 100배라는 성장의 비밀을 갖고 있음에도 무력하게 시들어 열매 없는 나무로 서있는 벌거벗긴 교회의 솔직한 현주소. 여전히 성탄의 종은 또 울려오는데 인류에게 유일한 메시지인 신비한 사랑의 비밀을 갖고 있는 ‘그 교회’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가!

광야를 지나는 약속의 백성들처럼 팬더믹의 광야를 지나는 교회가 ‘하나님의 창조를 창조하는 복음의 능력’에 라비스망되어 새롭게 태어나 메시아탄생의 순전한 기쁨을 맞이하기를 바란다.

12.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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