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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붉은 바위그늘 아래로 들어오라

이동진 목사

(성화장로교회)

이 시대만큼 발전한 시대는 없었다. 굳이 석기시대, 청동기시대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작금의 시대는 엄청난 문명발전을 이룬 범우주적 시대이다. 무엇보다 컴퓨터의 발달은 4차 산업혁명(Fourth Industrial Revolution)이라고 일컬어지는 급속한 변화를 통해 미래사회를 세차게 끌어당겨놓고 있다. 이와 같은 변화는 18세기의 1차 산업혁명이 가져온 변화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획기적인 인류사회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이야기보다 ‘가상인간(假想人間)’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고, 특히 비대면 사회를 앞당긴 팬더믹의 영향으로 준비할 겨를도 없이 다가온 초월적우주의 세계인 메타버스(Metaverse)에 올라 타버리고 말았다.

메타라는 단어의 뜻인 가상(假像)이라는 말 자체가 의미하듯 체온과 감정이 교류하는 인간의 만남이 아니라 우주 너머에 있을 신비로우면서도 두렵기도 한 어떠한 공간 속에서 차가운 상대를 대하며 살아야하는 시대가 이미 너무 가까이 와있는 것이다.

장작을 패서 군불 때며 따뜻하게 덥혀놓은 온돌방 아랫목은 불과 한 시대만에 먼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고, 이미 사람들은 손에 쥔 스마트폰으로 집안 전체를 훈훈하게 만들어놓고 들어갈 수 있는 편리함을 누리며 살고 있다. ‘발전’이라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또 새로운 발전을 이루어내는 급속한 변화의 물결은 무엇이든 순식간에 퇴물(退物)로 만들어버리거나, 존중받아야할 인권(人權)마저도 경제력과 활동력 저하나 나이라는 숫자가 많아졌다는 이유로 쓸모없는 퇴물취급을 해버리고 있다. 지금 우리는 이러한 시대에 그야말로 ‘길 잃고 갈 바를 몰라 울기 직전인 어린아이’같이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외딴 섬처럼 서있는 인생‘이 되어버렸다.

영국의 모더니즘 시인 T.S. 엘리엇이 ‘황무지(荒蕪地, The Waste Land)’를 발표한 것이 약 100년 전인 1922년이었다. 엘리엇은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한 문장으로 시를 시작하고 있다. 시인이 이렇게 노래한 ‘황무지’를 세계자연환경보존연합(IUCN)에서는 2009년에 발표한 ‘황무지가 무엇인가?(What is a wilderness)’라는 보고서에서 ‘원형 그대로 보존된, 그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은 거친 자연 지대로, 인간이 제어하거나 도로·송유관 등 여타 인프라를 구축하지 않은 원생(原生)자연보호구역을 황무지라 한다’고 정의해놓았다.

전세계의 기상이변은 북극의 빙하가 아니더라도 LA에서도 이상고온이라든가 극심한 가뭄 또는 습도의 증가 같은 현상으로 체감되어지고 있다. 그래서 인간사회는 피부에 와 닿는 감촉만으로도 느낄 수 있는 쾌적함을 잃어버렸다는 자괴감과 절망 때문에 가상의 공간, 메타버스 시대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상세계라는 새로운 방법으로라도 벗어나보려는 욕망이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있는 이 시대에 ‘사람 손이 닿지 않은 청정지역’이라는 ‘황무지’에 대한 전문기구의 해석이 더 마음에 와 닿는 이유는 탈(脫)성경적인 인본주의적 해석이라든가, 극히 개인적인 영적경험 또는 고착된 교리의 집단적 고집(?)으로 여기저기 순수한 신앙의 땅을 파헤쳐놓음으로써 더 이상 기독교가 청정신앙의 황무지가 아니라 황폐한 땅을 만들어버린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이미 메타버스라는 가상의 미래로 가는 차에 올라타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시인 엘리엇은 ‘황무지’에서 죽음이나 절망만 던져준 것이 아니라 에스겔서를 인용하면서 소망의 희미한 빛을 비춰주고 있다는 것을 찾아내기를 바라고 있다고 “이 붉은 바위 그늘로 들어오너라(Come in under the shadow of this red rock)”고 소리쳤다. 이 한 마디는 ‘황무지’를 쓸모없는 땅에서 ‘깨끗하고 가능성 가득한 땅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주고 있다.

‘십자가 그늘 밑에 나 쉬기 원하네’라는 찬송가 가사를 연상시켜주는 이 한 줄이 ‘황무지’라는 시 전체에 흐르는 암울한 기운을 말끔히 걷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면 오늘날 아무리 둘러봐도 딱히 의지할 곳 없는 이 시대 속에서도 여전히 피할 바위가 되어주시는 하나님을 찾는 길밖에는 생명의 길이 없다는 사실도 충분히 찾아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djlee7777@gmail.com

09.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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