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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과 일

최해근 목사

몽고메리교회 담임목사

1년에 한 번은 꼭 찾아오는 그리고 기다려지는 공휴일 중의 하나가 있다면 바로 노동절입니다. 한 여름의 무더위도 식어가고 자녀들은 새롭게 학교를 시작하는, 특히 취학하는 자녀나 대학으로 진학하는 자녀를 둔 부모님들에게는 분명히 무엇인가 새롭게 한 획을 긋는 시즌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노동절 연휴가 되면 “벌써 그 아이가 학교에 간다구?” 혹은 “벌써 둘째가 대학에 입학했다고?” 그런 식의 질문을 하다 나도 모르게 “아, 그렇게 시간이 지났구나...!” 라는 생각이 들며 성큼 내 앞에 다가선 낯선 시간에게 이상하게도 섭섭함을 느끼게 됩니다.

초청하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우리 삶에 찾아온 세월이라는 친구! 그 친구가 찾아왔음을 느낄 때마다 우리 삶에 던져지는 질문들 중의 하나는 “나는 제대로 살아왔을까?” 입니다. 낯선 타국에서 이민자의 걸음을 걷다보니 이 땅의 토박이들보다 더 바쁘게 더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는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과 일에 대해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늘 바쁘고 부지런하게 살아가는 것을 좋은 덕목으로 여기는 문화 속에서 어느 덧 나이가 들어 은퇴하게 되고 이제는 내 몸 하나 나 혼자 건사하기도 힘들만큼 세월을 보낸 사람들의 아픈 이야기 중의 하나는 ‘너무나도 바쁘게 살아왔는데 그런데 뭔가 제대로 된 방향을 걷지 못한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들 대부분은 다시 한 번 삶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좀 더 여유를 갖고 삶의 방향을 음미하며 좀 더 천천히 걸을 것이며 먹고 살아야 하는 생계문제로 인해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던 자녀들과도 더 많은 시간과 대화를 할 것이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좀 더 근본적인 가치를 지키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앞에는 언제나 ‘일’과 ‘쉼’이라는 두 개의 선택지가 놓여져 있었습니다. 일에 빠지다 보니 어느 덧 ‘쉼’을 잊어버렸고 그렇게 삶의 종착역에 도착하고 보니 챙기지 못하고 버려두고 온 귀중한 것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처럼 쉼은 우리의 걸음을 제대로 된 방향으로 조정해주고 잡아주는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하나님은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그 창조의 마지막 날에 인간을 창조하셨고 제7일 째는 창조를 마치시고 안식하셨습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6일 동안의 창조사역 후 제7일째가 안식의 날이 되었지만 인간 편에서는 창조된 바로 그 다음날 안식을 갖게 되었고 그런 안식을 갖고 난 후에 비로소 하나님이 맡기신 소임을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인간은 노동에 앞서 ‘안식’을 먼저 가져야됨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안식의 시간을 가지면서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일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와 같은 근본적인 것들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사회로 들어오면서 1분이라도 더 아껴 ‘일’하는데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안식’은 무가치하고 비효율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창조사건의 흐름 속에서 오늘 인류의 삶을 묘사해 본다면 제6일째 창조되고 제7일째에 안식을 갖는 것이 아니라 제7일째에도 바로 삶의 터전으로 달려가는, 그리고 그 다음 7일째에도 ‘안식’을 포기하고 삶의 터전으로 또 뛰어가는 ‘노동’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노동에서 노동으로 그렇게 삶을 살아가는 인류에게 찾아온 수많은 문제와 갈등. 이 모든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길은 의외로 간단해 보입니다. 바로 ‘안식’을 가진 다음에 ‘노동 혹은 일’을 하는 순서의 회복입니다. ‘안식’의 시간을 가지며 창조주에 대해 생각하고 그 창조주 앞에선 피조물의 의미와 가치와 방향을 정한 후에 ‘생업의 현장’으로 나아간다면 분명 우리의 삶은 근본적으로 방향이 다르게 나타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노동과 땀을 내 것으로 빼앗는 모습도, 내 주변의 생태계도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마구잡이로 뒤집어엎는 그런 걸음도 주저하게 만들고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안식과 쉼을 잊어버린 채 더 높은 생산성과 효율을 위해 정신없이 앞을 향해 뛰어온 인류가 오늘 뼈저리게 지불하고 있는 삶의 교훈을 보며 창조주 앞에서의 더 깊은 안식 속에서 위로 창조주를 묵상하고 옆으로 동료 사람을 바르게 주목하는 그런 삶을 소망하며, 샬롬.                                      

 hankschoi@gmail.com

09.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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