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장로교회)
국무총리가 된 요셉의 안내를 받아 바로 앞에 선 야곱은 130살이었다. 바로가 묻는다. “인생 살아온 연수가 얼마나 되셨소?” 야곱이 대답한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야곱의 대답은 사실이었다. 팥죽 한 그릇과 바꾸는 방법으로 형의 장자권을 차지한 후부터 야곱의 삶은 상당히 고단했다. 라헬과 레아 두 자매 모두를 아내로 얻고 그 여종들까지 모두 네 명의 여인과 살면서 12명이나 되는 아들을 얻기도 했지만, 네 명의 여인 중 라헬 한 여인을 유독 사랑함으로써 집안의 갈등을 스스로 유발했고, 자식들에 대한 차별대우를 하다가 그로 인해 유독 사랑하던 아들인 어린 요셉과 생이별을 하게 되었고 평생 가슴에 못이 박힌 채로 살아왔다. 자신의 고백대로 그는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 그러나 사실 어느 시대건 어떤 사람이건 험악한 세월을 살지 않은 사람이 있었던가? 세상도 ‘인생은 고해(苦海)’라고 인정했고, 이러한 세상에 대해 성경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지고 가는 삶’이라고 말했듯이 야곱만 억울한 인생을 산 것은 아니었다. 오늘날 우리가 팬더믹이라는 전 인류적으로 험악한 시대를 보내듯 시대마다 험악한 일들은 늘 계속되었고, 사람은 각자 자기의 짐을 지고 힘겨운 발걸음을 내딛으며 역사의 페이지를 써왔던 것이다.
그런데, 야곱의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는 말의 ‘험악한(險惡)’이란 말은 히브리어 ‘라아’이다. NIV를 비롯한 대부분의 영어성경에서는 ‘라아’를 고통이나 고생을 뜻하는 suffering, hardship, trouble과 같은 단어가 아니라 evil(악)로 번역해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구약성경에서 히브리어 ‘라아’는 신체적, 정신적, 감정적 고통을 표현할 때도 사용했지만 일반적으로 이보다 도덕적으로나 신앙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행위를 말할 때, 즉 하나님께 범죄하는 죄악 된 일을 말할 때 사용한 단어였다. 즉, 130살 고령의 야곱은 자신의 삶이 육체적으로도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고통스러운 세월을 살아왔다는 것을 말하면서, 세상권력의 핵심인 바로왕 앞에 선 이 시간 하나님 앞에서 살아온 자신의 죄악 된 시간을 드러내며 고백(참회)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가정의 달을 지나면서 교회마다 ‘부모를 공경하라, 아이들을 사랑으로 양육하라, 가정예배를 잘 드려라...’고 강단에서 외쳐지고 있지만 이미 이 세상은 전통적 가정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한지 오래 되었다. 뿐만 아니라 허물어지는 가정체계 앞에서 교회는 집요한 악의 도전 앞에서 방어하기에 급급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야곱이 고백한 ‘라아’라는 한숨 섞인 한 마디처럼 육체적으로 늙었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졌고, 신앙적으로 부끄러운 시대를 지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대는 험악(險惡, evil)하다. 윤리와 도덕 문제 때문이나 살기 힘든 고난과 고통의 문제가 너무 힘들어서 또는 팬더믹과 같은 세계적 질병의 바이러스 앞에서 비틀거리는 상황 때문에 험악한 것이라면 ‘인류 역사가 워낙 그렇게 흘러왔다’라고 변명할 수 있겠지만 지금 이 시대는 악(惡)의 시대, 즉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게 하는 악(Satan)이 주장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험악한 것임을 발견해야 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올해 국가기도의 날(National Day of Prayer)을 선언하면서 ‘하나님(God)’과 ‘성경(Bible)’을 언급하지 않았다. 즉,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빼버린 것이다. 뿐만 아니다. 이른바 평등법(Equality Act)이라든가, 동성애에 대한 이견으로 미서부지역 소속 한인목사 세 명에 대한 일방적 재파송 불가통보를 한 UMC(미연합감리교단)의 결정 그리고 날마다 수많은 반기독교적인 법안들이 지속적으로 발의되어 올라오고 있는 상황이 미국의 현실이다.
존 맥아더 목사는 “이 시대 문화는 이미 ‘악’의 강력한 근원지가 되어있고 그 ‘악’은 사람들에게 소셜미디어와 영화와 같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통해 얼마나 가깝고 친근하게 다가오고 있는지 모른다. 저들은 그렇게 하려고 체계적으로 이 모든 과정을 설계했다”(2020, 목자 컨퍼런스)고 말했다.
130살 야곱이 ‘험악한 세월’이라고 평가한 세상, 그 세상은 이후 수천 년을 지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험악(evil)하다. 아니 더 험악해졌고 그 험악함은 교활해져서 ‘부드러운 험악함’의 가면을 쓰고 활동하고 있다. 그러면 이 시대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야곱을 약삭빠르다고 평가할 수 있을지 몰라도 악한 사람은 아니었다. 속임수를 썼다고 하지만 그건 악한 일이 아니라 약한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선택한 삶의 방법이었을 뿐이다. 역사 속 인물들을 들여다봐도 악하기 때문에 아니라 약하기 때문에 악의 구덩이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인간의 약함이 악한 세월을 살게 했던 것이며, 악한 일을 하는 도구가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미 하나님과 화목한 상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약함 때문에 의의 옷 위에 더러운 옷을 걸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새 생명을 얻었지만 아직 하늘의 삶을 누리지 못하고 사는(already yet come) 연약함 때문에 오늘도 험악한 세월을 살고 있는 것이라는 진단을 받은 것이다.
오늘도 수많은 뉴스 속에서 악을 발견한다. 그리고 독백하고 있다. 험악한 세월을 살고 있다고... 안타깝게도 인류의 시대는 끝까지 악(惡이) 주장할 것이고 그 앞에 선 인간은 여전히 약(弱)할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130살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오늘 새로운 선언을 하고 일어나야 한다. “나는 약하다, 그러나 주의 힘은 강하다. 주는 전능자이시다” 이 원초적 신앙고백이 험악한 세월을 이기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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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