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장로교회)
팬데믹 상황으로 교회의 주일예배가 실제적 영향을 받기 시작한지 1년이 되었다. 신조어(新造語)가 된 ‘대면예배’, ‘온라인예배’와 같은 말들이 통용되기 시작하고, 이미 오래 전 추억과 같은 모습인 자동차 안에서 영화를 보는 것처럼 주차장에 세워놓은 차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풍경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아직도 신학적 합의가 되지 못한 가운데 1회용 ‘포도주와 빵’으로 화면 속 목회자의 안내에 따라 혼자 거행하는 성찬식을 갖거나, 성찬식 자체를 아예 갖지 못한 교회도 한둘이 아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봄이 왔고, 바로 앞에 고난주일과 부활주일이 다가와 있다. 그야말로 그동안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시간을 캘리포니아의 교회가 몸으로 경험해온 1년, 부활은 주님재림하실 때 일어날 미래적 사건인 동시에 성도의 삶 속에 날마다 부어주시는 은혜의 사건이라고 가르쳐온 교회가 과연 팬데믹으로 인한 셧다운 1년 만에 부활을 맛볼 수 있을 것인가.
에릭 가세티 LA시장은 지난 15일, 셧다운 1년을 맞아 코로나19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을 추모하면서 지난 1년간 LA카운티에서만 2만2천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다고 밝혔다. 가세티 시장은 “1994년 노스리지 지진 당시 57명의 사망자가 나왔는데, 매일 60여명의 사망자가 나온 지난 1년 365일은 하루도 빠짐없이 노스리지 지진이 일어난 것과 같은 것”이었다며 침통해했다. 이번 주부터 행정규제가 완화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긴장을 풀기엔 여전히 불안한 상황임을 모두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육체와 함께 영혼을 다루는 교회모임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먼저 각자 스스로의 신앙에 물어보고, 우리가 믿어온 신앙에 물어보아야할 때가 되었다.
우연히 이날치밴드라는 팀의 노래를 듣게 되었다. ‘범 내려온다’라는, 한마디로 ‘비빔밥 밴드’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날치밴드는 장영규라는 음악가를 중심해 1995년부터 퓨전국악의 모습으로 활동한 락밴드 싱싱이 모체가 된 밴드이다. 그 후 세월이 흐르고 2년 전인 2019년 5월 ‘이날치밴드’라는 이름으로 이테원에서 가진 ‘들썩들썩 수궁가’라는 단독공연 이후 계속된 온라인 공연은 ‘Feel the Rythem of Korea’라는 주제의 이른바 조선힙으로 소개되면서 3억뷰 이상의 기록을 세워가고 있다. 교회의 부활을 말하다가 갑자기 웬 밴드이야기인가? 교회가(목회자와 교회리더들이) 밴드음악인들의 생각만큼이라도 깊고, 넓고, 멀리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날치밴드가 판소리 ‘수궁가’의 ‘범내려온다’를 이 시대에 절묘하게 접합시키고, 그 속에서 시대정신과 문화의 흐름을 회복해내었듯이 교회에 내려온 범은 과연 무엇이며 교회는 그 범을 어떻게 해야 할까.
밴드리더 장영규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음악을 섞기 시작할 때 발생하는 리듬이 있다. 그건 장르로서의 리듬이 아니라 소리 안에 이미 들어있는 리듬이다. 그게 충돌하면서 새로운 리듬이 만들어지는데 나는 그 재미에 푹 빠져 있다..... 판소리 리듬은 규칙이 없는데 또 규칙이 있다.” 이러한 음악세계를 펼쳐온 장영규는 “저는 젊은 시절부터 재질과 성분이 다른 사람들과 섞이며 지내는 걸 좋아했는데 그게 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라고 고백했다. 이 글을 쓰면서 ‘범 내려온다’라는 노래를 다시 들어보고, 판소리 수궁가의 이 부분을 찾아 들어봐도 범이 왜 내려오는지, 범이 내려와 무엇을 했다든지, 범이 내려옴으로써 마을에 무슨 변화가 생겼다든지 하는 이야기는 없다. 그냥 범의 발톱, 입, 귀, 꼬리, 털 그리고 어흥 소리가 어떻다는 표현을 하며 그 범이 내려온다고 반복할 뿐이다.
팬데믹으로 인한 셧다운과 예배모임의 중단 등 새로운 경험 속에 지내온 1년을 돌아보며 교회의 모습을 살펴본다. 이 시대에 전통적인 판소리로 수궁가(수궁가를 들려주면 듣고 있었을까?) 이날치밴드는 역사 속에 누워있던 판소리를 오늘 다시 살아서 판을 흔들어놓았다. 교회가 가지고 지켜온 신앙의 전통은 빛나는 황금잔에 받아놓은 물이 아니라 끊이지 않고 솟아나는 샘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것이지만 원래부터 나오던 옛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샘물 뜨러가기가 귀찮았었나, 샘물받기에 조급해졌나, 교회는 나름마다 든든하고 안전하며 녹슬지 않는 수도파이프를 연결하기도 하고 멋진 수도꼭지를 달아놓고, 맛있고 영양 있는 물을 마시기 위해 정수기도 달아놓은 편리하고 멋진 모습이 된 것인가. 교회의 담론이 대면예배와 영상예배의 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우린 범을 마주할 수 없을 것이다. 범은 한민족 가운데 무서운 존재를 넘어서 민속 가운데 친구로 들어와 어울려 리듬에 맞춰 춤을 추게 하고 있는데, 우린 아직도 무서워만 하고 있지 않은가.
1년 전 온 세계와 교회를 강타한 무서운 범, 코로나19! 그리고 그로 인한 두려움.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그 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되었네’ 이 찬송은 ‘범 내려온다’는 판소리처럼 우리에게 있었다. 그런데 여전히 두려워하며 한숨짓고 있는 오늘 교회에 이날치밴드의 ‘범 내려온다’가 들려온다. 자료실에 소장되어 있던 판소리가 이 시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삶을 흥얼거리게 하듯이 교회도 두려움을 데려와 기도가 되게 하고, 노래가 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론의 기독교가 아니라 실재(實在)의 기독교임을 드러내는 계기였음을 보여주는 셧다운 1년 후의 새로운 교회로 세상 앞에 서는 위풍당당함을 기대해본다.
djlee7777@gmail.com
03.20.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