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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사는 법

이동진 목사

(성화장로교회)

성탄의 주인공은 아기예수이다. 그러나 그 주인공을 탄생시킨 인물은 산모(産母)인 마리아였다. 어느 날 180도 바뀐 인생을 사는 사람이 가끔 있다. 그러나 마리아와 같은 특별한 변화를 체험한 사람은 없다. 마리아는 모든 산모들이 아이의 아빠와의 관계를 통해 아기를 낳게 되는 법칙에서 불려나와 성령으로 잉태된 아기를 출산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 마리아는 하늘의 음성을 듣게 되었는데,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들려온 그 음성은 이 엄청난 충격을 다 흡수해 나오는 가장 부드러운 소리였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Hail, thou that art highly favored, the Lord is with thee).”

그 소리는 은혜와 평안과 주님의 함께하심을 전해주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경험이 처음인 마리아는 너무 놀라서 이게 무슨 일인가 생각하기 시작했다(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눅1:29). 인간의 마음과 생각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생각만 했을 뿐인 마리아에게 구체적인 변화의 내용을 전해준다 성령으로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생물학적으로도, 의학적으로도, 주변의 경험상으로도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임신과 출산의 방법으로 전해들은 마리아는 왜 하필 나여야 하는 것일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상황이지만 마리아는 한 가지 대답으로 자신의 인생을 내어놓고 변혁의 첫 발을 움직이게 된다. 그 한 가지 대답은 믿음이었다(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눅1:38). 그 후에 마리아의 일생이 어떠했을지는 마리아의 찬가로 알려진 누가복음의 기록(눅1:46-55)을 통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바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는 그녀의 고백이 일생의 삶을 분명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모파상은 단편소설 ‘여자의 일생’에서 주인공 로잘리의 마지막 대사를 통해서 이렇게 말한다. “인생이란 그렇게 행복한 것도 행복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우리의 삶이 늘 아름다운 건 아니지만 그래도 살만한 가치가 있다.” 레미제라블 이후 최고의 프랑스 소설로 꼽히는 작품이지만 결국 인간의 경험은 이 정도까지의 고백에 이를 뿐이다.

팬더믹 해라고 불리는 2020년이 성탄과 연말을 앞두고 조용히 그림자처럼 지나가고 있다. 모파상의 ‘한 여자’가 사는 법처럼 바라보는 인생도 나쁘지 않다. 아니 이런 마음을 통해서라도 위로받고 싶은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그래도 꽤 위안이 되지 않는가? “나의 삶이 늘 아름다운 것 아니지만 그래도 살만한 가치가 있었던 한 해였다”라는 독백.

최근 페이스북에서 한 젊은 여성과 친구가 맺어졌고 포스팅되어 올라오는 그녀의 일상을 보면서 로잘리의 삶보다 마리아의 삶을 발견하면서 흥미로움을 갖게 되었다. 한국의 모교회(母敎會)와의 연결고리가 이어져 페이스북 친구로 맺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 여성은 아마도 남편과 따로 살고 있고, 네 자녀는 아빠와 함께 타주에서 지내는 것으로 보였다. 

포스팅 내용으로 봐서 12월 현재 그녀는 갑자기 옮기게 된 뉴욕의 어느 오피스에서 숙식과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자신의 포스팅에서 슬쩍 언급한대로 ‘그지 같은 생활’이라고 절망할 상황들이 계속 이어져왔는데도 한 줄의 포스팅에도 투정이나 불평 원망을 쓴 적이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참고로 그녀의 사진은 본인의 용모를 비롯해 두 마리의 반려견, 책상 위의 컴퓨터와 몇 가지 사무기기 등이 결코 ‘없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는 꽤 실력 있는 커리어우먼의 자질을 충분히 갖춘 것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로 ZOOM을 통해 관련 회사 담당자들과 활발한 미팅을 하는 모습들도 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그녀의 포스팅에서 ‘마리아의 찬가’를 듣는다. 맨해튼 한가운데서 지금으로선 아무 것도 없이 삶을 투자하며 살아가고 있는 아주 평범한 이야기들 속에서 왜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한다”는 마리아의 노래 소리가 들려올까. 주차가 워낙 힘든 도시인 뉴욕 맨해튼 한가운데서 그녀는 싼 스트릿 피킹에 차를 세우고 자전거로 30분 거리의 숙소로 들어와 자고 일찍 일어나 꽤 비싼 주차티켓을 떼지 않기 위해 차를 옮겨놓곤 하는데 그 날은 새벽 6시에 차를 옮기러 나가기엔 몸이 너무 지쳐있었다. 그냥 내처 자고 일어나 자전거로 30분을 달려갔는데 마침 인근 공립학교가 휴교여서 주차위반티켓이 안붙어 있다. 그날의 포스팅은 이렇게 맺음 한다. ‘멀쩡한 내 차를 보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오피스로 돌아오는 길은 진짜 시원하고 통쾌하고 뭔가 막 힘이 솟는다. 아, 어젯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

뉴욕의 한 여자가 사는 이야기에서 팬더믹에 눌린 사람들에게 힘을 줄 메시지를 본다. 뉴욕의 겨울에 매일 파킹을 옮겨놓으며 자전거로 30분 거리의 숙소로 와서 잔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하고 짜증나는 일인가. 그러나 ‘그 여자가 사는 법’은 이렇다. “상황은 나보고 불행하고 그지 같은 상황이라고 말하지만 내 몸은 튼튼해지고 있는 중이라 읽는다.”

마리아의 찬가는 고상한 소프라노 솔로가 아니다. 시장판의 이야기들이 멜로디가 되고 화음이 되는 소리가 마리아가 노래했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한다”는 고백이라면 이제 지겨워진 팬더믹 현실 또한 찬양의 노래 소리로 바꿀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불행하고 그지 같은 삶이라고 투정부리고 싶은 우리에게 맨해튼의 한 여자가 사는 이야기는 마리아의 찬가를 불러주고 있다.

 

12.19.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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