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장로교회)
레시피(recipe)란 ‘조리용어의 하나로 음식 만드는 방법’이라는 단어이다. 우리나라도 불과 얼마전 세대, 먹고살기 힘들 땐 아무거나 먹고 살았고, 심지어 칡뿌리라도 뜯어대며 허기진 배를 위로하며 살아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시청률 높은 TV프로그램의 상위에는 요리 프로그램이나 먹방 프로그램이 차지하고 있다는데, 그만큼 부요해진 것인지 단지 먹고사는 삶을 넘어 맛은 물론 품격 있는 식탁문화를 누리는 삶으로 올라선 나름 선진국이 되었고 그와 맞추어 레시피라는 단어도 삶의 품격을 보여주는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복음서에 예수님과 함께 자주 등장하는 요소 중의 하나가 먹는 이야기이다. 마지막 선지자 세례요한은 들판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고, 40일 금식 후 허기져있을 예수님에게 사탄은 돌로 떡을 만들라고 유혹했다고, 그런가하면 예수님은 지탄받던 세리장이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 식탁을 나누기도 했다, 하물며 예수님의 마지막 자리도 다락방에 둘러앉은 만찬식탁이었는가 하면 아예 스스로를 가리켜 “내가 생명의 떡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후 그 ‘생명의 떡’은 2천년을 지나오는 동안 그리스도인들의 구원을 상기시키는 성만찬의 자리에서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다.
오늘날 실력 있는 요리사들의 레시피는 맛과 품위를 가르쳐주는 가치를 갖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먹는 자리를 좋아하셨지만 먹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레시피를 남기지는 않으셨다. 그 분이 남긴 것은 레시피가 아니라 당신 자신이었다. 자신이 개발한 삶의 어떠한 방법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유일한 생명의 양식이라는 사실만을 귀뜸해주고 떠나셨다. 그래서인지 이후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레시피를 구하기 위해 혈안이 되기도 했고, 그 떡을 만드는 방법들을 꽤 많이 연구해왔던 것 같다.
초대교회 이후 로마카톨릭교회는 그렇다치고 종교개혁 이후의 개신교(protestant)는 503년을 지나오는 동안 그 레시피 개발을 통해 개혁을 이루려했다면 너무 지나친 말인가? 사실, 갈수록 떡 맛보다는 떡을 만드는 요리사의 기술만 발전해온 것이 아니었나 싶다. 예수 그리스도는 작아지고 그분에 대한 레시피만 풍성해졌고 그러다 만난 코로나19로 인한 팬더믹은 그동안 소개된 다양한 레시피를 사용할 필요가 없는 환경이 되면서 갑자기 교회의 식탁은 정작 빵 없는 식탁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최근 영화 ‘밥정’과 ‘’더 먹고 가‘라는 힐링밥상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의 임지호 세프와 나눈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인터뷰 대화가 ’생명의 떡‘과 오버랩되며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레시피는 필요 없어요. 요리하는 사람들은 도구일 뿐이거든. 모든 인간은 자궁이라는 기가 막힌 궁전에서 태어난 귀한 황제잖아요. 요리사는 그분들께 밥해주는 온전한 도구예요. 그들이 밥 먹자고 예약하면 그들의 영혼이 나에게로 와서, 만들어 먹는 거예요. 둘이 아니라 일체예요. 한 몸.” 복음을 모를 임 세프가 복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태초에 계신 말씀, 그 말씀이 하나님이신데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그 분이 남긴 ‘내가 네 안에 네가 내 안에 있다’는 하나됨(聯合)의 복음을 임 세프가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도구가 좋다, 나쁘다로 평가할 일이 아닙니다. 필요한 건 비장의 레시피가 아니라 5가지 덕목입니다. 첫째, 거짓말하지 않는다. 둘째, 게으름을 버린다. 셋째, 허영심을 버린다. 넷째, 평상심을 유지한다. 다섯째, 매의 눈을 가진다. 재료를 보고 만들 때 매섭게 보고 확인하고 결정하는 데 실수가 없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달려온 130여년은 어떠했었나? 임 세프가 제시한 5가지 덕목은 한국교회 초창기 교인들에게 가르친 신앙덕목과 유사하다. 돌이켜 살펴보면 한국교회 초기, 예수 믿는다는 것은 정직한 것과 직통했고, 교회는 세상이 사는 모습과 다른 삶이 있는 곳으로 세상에 인식되었었다. 그런데 굳이 돌아보며 들추어내지 않더라도 작금의 한국기독교가 썩었다는 말에 교회는 무어라 항변할 말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진짜 떡’이야기가 아니라 ‘떡 만드는 방법’, 즉 허상을 쫓던 신앙이었기에 예수님이 남겨주신 ‘생명의 떡 이야기’는 모래성처럼 허물어져 내리기 시작했고, 강력한 한 방의 코로나19 바이러스 펀치는 기독교신앙의 구조와 시스템, 방향까지 다 허물어뜨렸다.
중국요리, 불란서요리, 한국궁중요리 레시피 등 세상의 다양한 요리 레시피처럼 교회에도 얼마나 많은 레시피가 개발되었던가. 백종원의 레시피를 따라하면 라면 맛도 기가 막혔고, 그의 레시피는 요리문화의 혁신을 이루었듯이 한국교회도 새롭게 개발되어 발표하는 신앙생활 레시피에 얼마나 열광했던가... 그 레시피로 만든 식탁의 이름을 부흥이라 부르며 6백만 숫자에서 800만, 일천만, 천이백만으로 숫자를 마구 올려 부르지 않았던가. ‘밥정’이라는 영화제목이 생각난다. 밥, 그 속에 얼마나 따스함이 있었는지, 그 속에 얼마나 사랑이 깃들었었는지 아니 그 속에 있는 엄마. 그런데 한국교회는 고향인 엄마 뱃속 같은 하나님아버지의 품은 오래 전에 잃어버리고 단지 숫자와 사이즈 속에 모든 사랑을 묻어버렸던 것은 아닌가.
한국교회는 팬더믹기간을 통해 이제 그 ‘신앙밥정’을 찾아가야 한다. 정갈하고 품위있어 보이는 식탁문화가 아니라 밥 속에 있는 엄마 손맛을 찾아가야 한다. 말씀 속에 알알이 스며있는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을 찾아야 한다. 한겨울 아랫목 이불 속에 자식을 위해 넣어둔 따스한 밥 한 공기 같은 복음의 떡은 어디 있는지 찾아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말씀을 직접 만지고 느껴야한다. 인터뷰에서 질문이 던져졌다. “나물을 무칠 때 손아귀에서 삭삭 바람소리 나는 게 참 신기하네요. 그 과정에서 맛이 일어나는 건가요?” 임 세프가 대답한다. “시계방향으로 심장의 리듬을 맞춰 힘차게 돌릴 때 좋은 에너지가 생겨요. 손맛이죠. 심장의 울림을 손의 에너지로 전달하는 게 음식이예요.” 그는 진정한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왜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이고 그 말씀이 생명의 떡이라는 것, 즉 그 떡을 먹어야 영원한 생명으로 잇대어 살게 되는 것’이라는 사실은 놓아두고, 그 떡의 모양과 재료와 방법만 말하고 있었는가? 세프가 식재료인 풀잎을 심장리듬에 맞춰 손바닥으로 비벼대듯이 친히 식재료처럼 십자가에 몸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 심장리듬을 맞추어 호흡하며 직접 만나보고 싶다.
신앙레시피는 없다. 아니 신앙레시피라고 따르던 것들을 이젠 버려야 한다. 친히 한 영혼, 한 영혼이 살아나는 신앙의 재료가 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삶으로 살아내는 신앙이야말로 손에서 손으로 전달되어온 어머니의 손맛 같은 한국교회의 신앙유산임을 기억하자.
11.14.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