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장로교회)
인생을 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길의 이름을 나그네길 또는 여행길이라 부른다. 인류는 그 길을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 그러다가 말과 같은 동물이나 바퀴를 이용하기 시작했고, 불과 100여 년 전에는 엔진을 개발해 추진력이라는 에너지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제대로 속도를 즐기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십 년 전의 일이다.
길을 떠나는 여행은 자유롭지만 불편하고 불안하기도 한 길이다. 그래서인가, 인류의 역사는 불편을 감내해왔고, 불안한 흔들림의 부침을 경험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자연재해가 무섭게 흔들어대었고, 때론 전쟁이 흔들었다. 그리고 가끔 전염병도 온 세상을 흔들었다. 14세기에 창궐했던 흑사병(黑死病, Black Death)은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며 유럽 전역을 흔들기도 했는데 이 외에도 콜레라, 결핵, 천연두, 독감, 에이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병이 지구촌 곳곳을 흔들어대며 지나갔다. 그러나 인류사회의 환경위생 개선과 더불어 예방백신과 항생물질 개발 등을 통해 지구상에서 잠시 사라지곤 했다. 이에 미국 공중위생국장이었던 윌리엄 스튜어트는 ‘전염병 시대는 이제 종말을 고했다’고 선언했지만 이 말이 채 귓전을 떠나기도 전에 나타난 메르스(MERS,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Coronavirus 중동호흡기증후군)나 사스(SARS,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같은 새로운 전염능력을 장착한 전염병이 한바탕 휩쓸더니 마침내 초강력 핵폭탄같은 COVID19이 지금 각 대륙을 몇 달째 흔들어대고 있다. 이 흔들림은 결국 가장 평범한 단어이자 안도의 숨을 쉬게 해주던 일상(normal)이라는 단어마저 쫓아내고 new-normal이라는 신조어의 옷을 입고 이전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을 폐쇄시켜버렸다.
지금 인류는 길을 잃어버렸다. 지금 인류가 만난 길을 예언이라도 하듯, 남성보컬그룹 god가 이미 19년전인 2001년에 ‘길’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사람들은 길이 다 정해져 있는지 아니면 자기가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또 걸어가고 있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팬더믹 기간이 길어지면서 사회 각 분야에서 전문가들은 어디로 가야 살 길이 열리는지를 제안하고 있다. 그 중에 한국 신경정신의학회 백종우 재난정신건강위원장은 “사회적 신뢰가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는 핵심자원”이라고 길을 제시하면서 “물리적 방역만큼 중요한 것이 마음의 방역”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백 위원장은 “길 잃은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첫째 화살인 경제적 문제나 건강문제와 같은 것은 피할 수 없는 화살이지만 이어서 날아오는 두 번째 화살인 불안, 공포, 혐오감 등의 화살은 피하고 조절할 수 있는 것”이라면서 “두 번째 화살만 피해도 인류는 살 길을 찾아갈 여유가 있게 된다”고 안심시키는 설명을 했다. 이와 같은 견해에 대해 정신과전문의들도 “일반적으로 심리방역을 위해서 우선되어야하는 두 가지를 든다면 사회적 신뢰와 어깨동무하며 걸어가는 연대감”이라고 거들고 있듯이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의 생활 속에서도 함께하는 마음이야말로 이 상황을 극복하게 해주는 힘이 된다는 점을 강조해주고 있다.
사람에게 있어 정신은 생각보다 훨씬 더 힘이 있다. 그래서 힘 역(力)자를 붙여서 정신력(精神力)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그런데 이 정신력은 지식에서 나온다고 한다. 의과대학생이 처음 세균학 실습을 하고나면 모두 열심히 손을 씻는다고 하는데 실습시간에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세균투성이 자기 손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어서 면역학 수업을 받고 나면 수시로 손을 씻던 습관이 다시 이전의 일상습관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미세한 바이러스가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인간 스스로 강력한 면역체계가 몸 안에서 활성화되어 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균형 잡힌 바른 몸지식이 너무 두려워하거나 너무 자만하지 않도록 해주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라는 말이다.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을 소개하는 복음서 중에 특히 마가복음은 길의 복음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모든 스토리가 길과 연결되어 기록되어있는 특징을 갖고 있다.
대부분 기록들이 길을 가다가, 길을 떠나기 전에, 어디어디에 도착해서.... 일어나고 있다. “내가 곧 길(I am the Way)”이라고 선언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길을 가면서 제자들에게 길의 방향과 목적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남성보컬그룹 god는 “길을 알 수 없다”고 “정말 이 길이 나의 길인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고 있는데 비해, 복음서의 GOD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자신의 길되심과 그 길과 동행해 도착하면 만나게 될 천국을 보여주고 있다.
경제학자도 지금 우리가 가는 팬더믹길의 여파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지 못하고, 사회학자도 이 상황의 파도가 얼마나 거세게 덮여올지 예측하지 못하고, 신경정신과 닥터도 어떻게 정신력을 다져나갈 수 있는지 인도해주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세상의 힘에 흔들려온 교회도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길되심과 그 길을 어떻게 따라가는 것인지를 가르쳐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석류가 붉게 익으면 계절이 바뀐 것임을 알 수 있다는데 우리는 이제 어찌해야하나? 석류열매는 벌써 저토록 붉어졌는데......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시작이라고 했던가. 시론(時論)의 글도 이 시대의 방향과 행함을 논(論)하기에는 너무나 연약하고 부족하다. 그러나 크리스천신문의 시론은 그나마 믿을 구석이 있다. 말씀이라는 길을 안내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교회의 논리가 시시하다 말해도 굳이 그들과 뒤엉켜 시간을 소비하고 싶지는 않다. 이미 석류 붉어지듯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인 시대가 되었고, 지금 인류가 의지할 유일한 길은 여전히 ‘그 말씀’뿐이기 때문이다.
09.19.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