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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날 단상

김인환 목사

전 총신대 총장

이번 아버지날에 나의 사랑스러운 자녀들이 나에게 문자를 보내왔다. 요약하면 고맙다는 말과 아빠를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그냥 지나가는 말이 아니었고, 그 속에는 그들의 깊은 진심이 있었다. 많은 위로가 되었고, 자식을 키운 보람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과연 내가 이들에게 이러한 진심어린 말을 들을 만큼 그동안 내가 아빠 노릇 잘했나 라고 자문자답해 보았다. 아무래도 나는 빵점 아빠였다는 생각이 앞섰다. 

유학시절 친구의 중매로 지금의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결혼해서 아들 딸 아들 삼남매를 낳았다. 우리들에게는 미국에 아무런 일가친척이 없었기에 악전고투하면서 이들을 키웠다. 가난과 무경험, 감당하기 어려운 학업과 직장이 주는 무거운 짐들이 우리들을 짓눌렀다. 설상가상으로 허약한 건강 때문에 우리들 자신의 생존도 힘겨운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맡겨주신 이 삼남매를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총신대학교의 교수로 초빙 받아 한국에서 교수생활이 시작되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가족들을 한국으로 데려갈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몇 년 동안 한국에서의 생활기반이 잡힐 때까지 나 혼자 한국과 미국을 오가면서 교수생활과 아빠 노릇을 병행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러다 온 가족을 한국으로 데려가 함께 생활하면서 자식들을 키워보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한국의 언어와 문화와 학습의 차이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다시 집사람과 아이들을 미국으로 보내고 나는 또 다시 한국과 미국을 오가면서 아빠 노릇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학교 사임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많이 기도하면서 그 응답을 구했지만, 왜 너에게 지워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팽개치고 너 좋은 대로 인생을 살려고 하는가? 그러면 나는 너와 함께 하지 않겠다는 응답 밖에 없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소명과 아빠로서의 자식에 대한 의무 사이를 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엄중한 하나님의 소명에 순종하지 않을 수 없어 30여년의 총신대 교수와 마지막 보직으로서의 총장, 서울역 노숙자들 사역인 참좋은친구들 이사장, 대신대 총장, 남아프리카공화국 안에 위치한 에스와티니(옛 스와질랜드) 왕국에 세워진 Eswatini Medical Christian University의 Vice Chancellor, CEO/President의 직을 끝내고 최근 미국의 가정으로 돌아가기까지 나는 자식들과 항상 함께 지내지 못하는 소위 기러기아빠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여름과 겨울 방학 두 달과, 공무출장 중 잠시 만나는 시간 동안 겨우 자식들과 얼굴을 맞대는 아빠 노릇하다 보니 제대로 이들에게 아빠 노릇을 할 리가 만무했다. 

모든 공직을 마감하고 미국 집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까지 아내가 우리 자녀들의 아빠였고 엄마였다. 자식들 옆으로 돌아왔을 때 이들은 모두 결혼해서 모두 각자의 가정을 가지고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었고 내 나이는 이미 70을 훌쩍 넘어서 있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나는 정말 불가항력적인 이유로 지금 집 사람과 얼마 전 한국에 돌아와 생활하고 있다. 아내와 항상 함께 생활할 수 있어서 참 좋지만, 그렇게도 오랫동안 바라고 또 바랐던 사랑하는 자식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기회는 이제 영영 가질 수 없게 되었고, 자주 만날 수 있는 기회조차 제대로 가질 수 없게 되므로 올해 아버지날에 자식들이 이런 아빠에게 보내온 감사의 문자와 이런 아빠를 그래도 깊이 사랑한다는 문자는 과거 어느 때보다 특별한 감회와 반성을 하게 한다. 

세상의 모든 아빠들은 모두 사정이 다르겠지만, 나름대로 자식을 잘 키웠다는 자부심보다는 회한과 아쉬움이 훨씬 많으리라 생각한다. 젊을 때는 경험부족과 미숙함,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의 문제 등등으로 자식을 제대로 돌볼 수 없다가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심적으로 정신을 차릴 수 있고, 경험도 쌓이고, 또 여러 가지 면에서 여유가 생길만 하면 이미 그때는 아이들이 모두 각자의 인생살이를 하느라 아빠와 소원해지고 만다. 아마 이러한 이유로 나이든 아빠 엄마가 유독 손자녀들을 보면 그들이 한없이 귀엽고 사랑스러워 자신이 가진 모든 것, 심지어 생명까지도 이 손자녀들에게 주고 싶어지는가 보다. 

내 사랑하는 자식들아, 참 미안하다. 못난 아빠인데도 너희들이 진심을 다해 이런 아빠를 고마워하고 사랑해주어 너무도 고맙다. 너희들은 이런 아빠를 반면교사로 삼아 하나님께서 너희들에게 맡긴 너희들의 자식들에게 훌륭한 아빠가 되어다오. 

06.27.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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