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장로교회)
‘The beauty of no artificial preservations,’ 맥도날드와는 또 다른 전략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햄버거 레스토랑인 버거킹의 광고 카피이다. ‘인공방부제를 넣지 않은 아름다움’이라는 말이다. 이 광고에서 버거킹은 자기네 햄버거가 썩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 카피를 넣은 것이다.
우리 생각엔 썩어가는 버거킹 햄버거의 모습을 영상으로 본 사람들이 과연 사먹으러 갈까하지만, 버거킹은 썩는 것과 인공방부제라는 대조적인 컨셉을 통해 몇 년이 되어도 썩지 않고 양복주머니에서 발견되곤 하던 맥도널드 관련 뉴스를 접한 고객들에게 썩는 것이 신선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던진 것이다. 글쎄 맥도널드와 버거킹의 햄버거를 먹어본지 오래 되어서 실제로 비교해볼 수는 없었지만, 두 회사의 광고전쟁은 흥미롭다..
나이가 들었는데도 얼굴이 백옥같이 맑거나 피부가 깨끗한 사람을 가리켜 백옥미인이라고 한다. 그리고 요즘 발달된 성형의술로 보톡스를 맞고 얼굴 피부를 팽팽하게 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피부도 나이가 들면 아무리 단장을 하고 수술을 해도 젊은이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는 사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일단 버거킹의 광고에 승자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전세계적인 비상상황이 계속되면서, 그동안 지켜온 교회생활의 틀이 흔들리면서, New normal의 교회생활, 아니 신앙생활은 어떠해야할 것인가 조심스레 진단, 전망하는 글들이 나오고 있다. 경험하지 못한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야말로 아련한 안개 속을 들여다보듯이 다양한 자료와 경험과 지식을 동원해 전망할 뿐이다. 그러나 미래를 준비하는 우리로서는 버거킹의 광고카피를 한번쯤 깊이 새겨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동안 교회는 순수하고 맛깔나는 엄마손맛이 아니라 인공방부제 맛으로 채워지지 않았나? 예배가 그렇고, 찬양이 그렇고, 기도는 물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설교도 인공방부제가 잔뜩 첨가되어있지 않았는가? 그래서 맛있었다. 감칠맛이 나고 중독성이 있었다. 찬양은 어떤가? 특별한 리듬이나 화성이 없이 불려지던 시편찬양, 멜로디 하나만으로도 하루 종일 눈물로 부르던 찬송가는 무시당하고 강한 리듬과 애잔한 멜로디, 특이한 화성들이 더해지면서 찬송이 갖고 있는 신앙고백과 간절한 기원과 영광의 찬양을 놓치지 않았나?
교회에도 유행이 있어왔다. 경배찬양, 큐티, 설교자의 의복, 기도패턴, 단기선교, 전도행사, 부흥회 등 유행에 따라가는 교회들 속에서 교인들은 훈련받고 훈련되어졌다. 한동안 모 목사의 억양과 흐름을 그대로 따라하는 같은 교단의 후배목사들의 복사판이 오죽하면 코미디 프로에서도 인용하며 인기를 얻지 않았던가.
이 모든 교회신앙에 터가 흔들거리게 된 바이러스의 침투. 다시 버거킹의 광고문구를 떠올려보자. ‘The beauty of no artificial preservations,’ 교회는 하나님의 주신 천연의 맛을 가진 곳이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한다면 지금은 그동안 첨가되어오던 인공방부제를 버리는 시간이 된 것이다. 때가 되면 죽어 흙 속에서 썩는 게 인생인데, 보톡스의 힘과 피부미용의 힘을 빌어 유지하는 빛나는 얼굴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순수신앙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그동안 지켜온 루터와 칼빈의 개혁신앙은 무엇인지, 그렇게 따르고 싶어한 웨슬리의 영성은 진정 무엇인지, 신학적 부족함은 있었지만 시대를 이으며 금을 찾기 위해 시커먼 광부가 되듯이 인공방부제로 치장한 모든 위장(僞裝)을 벗고 주름가득하고 때가 낀 손톱이지만 오늘도 논밭으로 나가는 정직한 농부의 새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나라 속담 중에 '길이 아니면 가지 말고 말이 아니면 듣지 말라'는 말이 있고, 영어권에는 ‘See no evil, hear no evil, speak no evil(나쁜 것은 보지 말고, 나쁜 것은 듣지 말고, 나쁜 것은 말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동안 교회가 잘못했다. 교인들이 잘못했다. 특히 목사와 지도자들이 잘못했다. 이 시대를 무사히 통과해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길이 여기에 있다. 이젠 길이 아니면 가지 말고, 말이 아니면 듣지 말자. “내가 곧 그 길이요, 그 진리요, 그 생명이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단단히 새기고 첫 걸음처럼 다시 시작해야 한다. 지금부터, 나부터.
06.20.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