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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살아야 자식이 삽니다


한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해인가 학군이 좋다는 강남에서 아파트 분양할 때 가장 비싼 층이 25층 고층아파트에 5층이었다고 합니다. 이유는 바로 앞이 초등학교인데, 5층에서는 아파트 베란다에 망원경 설치해놓고 교실을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어느 때까지 자기 품에 끼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중학교만 들어가도 어림없습니다. 부모보다 또래 친구들하고 같이 있는 것을 더 행복해 합니다. 이렇게 우리 자녀들이 커가면서 점점 부모의 품을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 이상한 게 아닙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문제는 이때, “우리 자녀들이 세상의 쾌락과 유혹에 휩쓸려 같이 마약하고, 같이 나쁜 짓하고, 안하면 왕따 당하는 그 안에서 어떻게 스스로 올바르고 당당하게 살 수 있을까?”가 우리 부모들이 가져야 하는 현실적 고민이어야 합니다. 방법은 단 하나뿐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언제 어디서나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그리고 가야만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그리고 있어야 할 자리와 있어서는 안되는 자리를” 스스로 판단하고 분별할 수 있는 ‘신앙적 가치관’을 심어줘야 합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최상은 자녀들이 이렇게 ‘신앙적 가치관’을 갖도록 도와주는 일입니다. 어떻게 도울 수 있나요? 

어느 날 한 어머니가 아들을 데리고 먼 길을 걸어 간디를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제발 도와주세요. 제 아들이 설탕을 지나치게 좋아해요. 건강에 나쁘다고 아무리 타일러도 제 얘긴 듣지 않아요. 그런데 제 아들이 간디 선생님을 존경해서 선생님께서 끊으라고 말씀해주시면 끊겠다는군요.“ 간디는 잠시 소년을 바라보더니 어머니께 말했습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보름 뒤에 아드님을 데려오십시오." 먼 거리를 걸어왔기에 어머니는 야속했지만, 보름 뒤 아들을 데리고 다시 간디를 찾아왔습니다. 간디는 소년에게 말합니다. "얘야, 설탕을 많이 먹으면 건강을 해치니 먹지 않는 것이 좋겠구나!" 설탕을 먹지 않겠노라 약속한 아들을 보며, 고마운 뜻을 거듭 전하던 어머니는, 궁금한 것이 생각나 간디에게 묻습니다. "선생님 보름 전에 찾아뵈었을 때 그때 말씀해주시지, 왜 보름 후에 다시 오라고 하신 건가요?" 간디는 말하기를, "사실 저도 설탕을 좋아합니다. 보름 전 그때는 설탕을 자주 먹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제가 설탕을 먹으면서 설탕을 먹지 말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설탕을 끊어야 했습니다.”

간디의 삶이 존경받았던 이유입니다. ‘양육’입니다. “교육, Pedagogy”와 “양육, Peideia”는 다릅니다. 부모가 거짓말하면서 아이들에게 거짓말 하지 말라고 가르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가르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결국 부모가 거짓말하면 자녀들도 거짓말합니다. 굳이 안 가르쳐도 부모가 정직하게 살면 아이들도 몸으로 배워 정직하게 삽니다. 부모가 자기는 그렇게 안 살고 그렇게 안하면서 아이들에게 그렇게 살라하면 자녀들이 노여워합니다. 자녀들이 “아빠나 잘하세요, 엄마나 잘하세요!” 하며 콧방귀도 안 뀝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엡 6:4) 그러나 부모들이 먼저 그렇게 살면,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며 자라난 아이들도 그렇게 살게 됩니다. 

“양육, Peideia, Nurture”입니다.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 성경은 우리들에게 “양육”을 말합니다. 모든 것의 출발은 가정입니다. 부모의 삶입니다. 아이들의 삶에서 부모인 나를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은혜입니다. 부모가 먼저 성경봐야 그 모습을 보고 커가는 아이들도 성경 봅니다. 부모가 먼저 찬송해야 그 모습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이 입에서 찬송이 떠나지 않습니다. 부모가 먼저 기도해야 그 모습을 보고 커가는 아이들도 기도합니다. 이것이 ‘양육’입니다. 부모는 이렇게 자기의 삶을 통하여 아이들이 신앙적 가치관을 갖고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어느 리서치 기관에서 조사한 통계입니다. 부모가 자녀들과 하는 대화 가운데 80% 이상이 “잘 잤니, 잘 지내니?, 밥 먹었니, 어디 안 아프니?, 무슨 일 없니” 등등이 끝이라고 합니다. 우리들은 자녀들과 함께 예배하고, 말씀 읽고, 기도하고 찬송하면서 그들이 갖고 있는 꿈과 비전을 나눠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뤄지지 위해서는 하나님이 도우셔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줘야 합니다. 함께 기도하며, 격려하고 축복해주는 그런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코로나 때문에 우리들의 삶에는 적잖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중 하나가 가정에서 부모들이 자녀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이 시간이 우리 부모들이 아이들의 영혼에 신앙적 가치관을 삶을 통하여 나눌 수 있는 너무나 좋은 기회입니다. 고난이 주는 유익이요 축복입니다. 부모가 살아야 자식이 삽니다. 어린이 주일에 먼저 부모 된 나를 돌아볼 수 있다면 은혜입니다. 문제부모와 문제가정은 있어도 문제아는 없습니다. 믿음의 가정을 잘 일구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양육을 통하여 우리 자녀들이 신앙적 가치관을 갖게 되는 복중의 복이 모든 자녀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pastor.eun@gmail.com

05.09.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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