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최해근 목사

몽고메리교회 담임목사

지난 주간 사우디아라비아는 주변국인 예멘으로부터 공항과 유전이 공격을 받았습니다. 특히 세계 석유시장의 5%의 원유를 공급하는 유전이 드론의 공격으로 엄청난 피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사우디 국내선 공항이 미사일로 공격을 받은 것보다 훨씬 더 충격을 던진 것이 유전지대를 드론으로 공격하여 전 세계석유시장에 불안을 가져온 것입니다. 예멘정부로부터 반군으로 불리는 후티반란군들이 주도했다는 공식보고가 나왔지만 별로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후티반란군들의 배후에 자리잡고 있는 이란이 이 사건의 주범이라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반군 지도자인 후티는 이슬람에서 성직자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마치 ISIS의 최고 지휘자였던 아브 바크르 알바그다디가 성직자였던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잠시 왜 같은 이슬람 국가끼리 이런 전쟁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슬람의 창시자인 무함마드가 서기 632년 숨진 이후 누가 그 다음 지도자가 될 것인가를 놓고 이견이 생깁니다. 다음 지도자를 능력 위주로 선출해야 한다는 측과 혈통 위주로 세워야 한다는 쪽으로 나뉘게 됩니다. 능력위주로 하자는 측은 수니파로 불리며 혈통 중심으로 하자는 측은 시아파로 불립니다. 이들은 상대를 암살하고 암살당하는 과정을 지나면서 둘의 관계는 원수처럼 변하게 됩니다. 이렇게 두 그룹으로 나눠진 이슬람은 현재 이란을 중심으로 세계 무슬림의 10%를 차지하는 시아파 그룹과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세계 무슬림의 90%를 차지하는 수니파로 나뉘어져 전쟁과 분쟁의 소용돌이에 들어간 것입니다. 

같은 종교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총을 들고 거리낌 없이 상대를 죽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신앙입니다. 지난 1400년이 흐르는 동안 수니와 시아는 자신들의 신앙과 이익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무참한 생명을 살해했고 가장 최근에는 이라크에서 수니파인 ISIS가 시아파 무슬림을 무려 10만명이상 살해했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런 통계와 현상들을 보면서 이슬람 종교 밖의 사람들은 어떻게 이해할까요? 시아와 수니의 구별이라든지 교리와 이론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 폭력성과 잔인함에 거부감을 갖게 됩니다. 사랑이 떠나고 교리와 신학만 남아있는 종교는 그 종교가 어떤 종교이든지 거부와 비난과 조소거리가 될 뿐입니다. 신학은 보이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는 종교는 가장 잔인하고 폭력적인 일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의 생명을 헤하는 일마저도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행동하는 것을 우리는 목격해오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기독교를 아니 우리 교회들을 돌아봅니다. 세상 앞에 서 있는 교회 안에서 교리는 찾을 수 있지만 사람은 찾을 수 없는 그런 어둠이 감싸고 있지는 않는지 늘 조심하고 점검한다면 어둡고 아픈 우리 시대를 사랑과 생명의 복음으로 세워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학을 우리에게 가르치기 위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어 십자가 죽음을 허락하신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과 풍성한 사랑의 삶을 주시기 위해서 보내셨음을 기억해봅니다. 신학을 가르치는 일은 예수님이 아닌 괜찮은 교사와 선지자로서도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그를 이 땅에 보내신 성부 하나님의 마음에 무엇이 채워져 있는지 우리에게 확인시켜주신 사건이 아닌 가요! 그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사람을 사람으로 귀하게 여기는 지구촌의 내일을 소망하며, 

샬롬. 

 

10/5/2019

Leav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