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산청의 작은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한 학생이 대구의 중학교로 가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대구까지 학교를 보내는 것은 쉬운 상황이 아니었지만, 아버지는 자식의 앞날을 위해 그리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공부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들은 대구중학교로 유학을 간 그해, 중학교 1학년 68명 중에 68등이라는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너무 큰 실망하실 거 같아 성적표의 68등이라는 숫자를 1등으로 고쳐 아버지께 가져다 드렸습니다. 하지만 어설픈 거짓말은 뜻밖의 일로 번졌습니다. 아버지는 자식의 1등을 축하한다고 시골 재산목록 1호인 돼지를 잡아 마을 잔치를 연 것입니다. 아들은 자신의 거짓말 때문에 가장 큰 재산이었던 돼지를 아낌없이 포기한 아버지의 모습을 평생 죄책감으로 마음에 담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 이후 이 아들은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정말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아들은 박사가 되고, 대학교수가 되고, 대학교 총장이 되었습니다. 아들에게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가 중학생이 된 어느 날 아들은 아버지에게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저 중학교 1학년 때 1등은요...." 아버지는 아들의 말을 막았습니다. "알고 있었다. 그만해라, 손자 듣는다." 경북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신 ‘박찬석 박사’의 이야기입니다(인터넷에서 퍼온 글).
자식의 뻔한 거짓말에도 묵묵히 기다려주신 아버지의 마음은 과연 어떤 것일까? 시골 가난한 집에서 농사짓고 돼지를 기르던 아버지는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자식은 부모의 기대와 믿음의 크기만큼 성장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가슴에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육신의 아버지도 이렇게 자식에게 거는 기대가 크고, 자식은 아버지의 기대와 믿음만큼 성장한다는데, 하물며 우리일까 보냐? 하나님 아버지가 당신의 백성이요, 자녀요, 종들인 우리들에게 거는 기대가 무엇일까? “너 하나님의 사람아”(딤전6:11) 라고 불리우며 사는 그 자리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야기 하나 합니다.
어느 강사가 강의 도중 지갑에서 100불짜리 지폐를 보여주며 말합니다. "이 100불을 갖고 싶은 사람 손 들어보세요."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의아해 하면서도 모두 손을 듭니다. 그러자 강사는 그 100불을 주먹에 꽉 쥐고 구기더니 다시 말합니다. "여기 구겨진 이 100불을 갖고 싶은 사람 손 들어보세요." 이번에도 모두 손을 듭니다. 강사가 구겨진 100불을 바닥에 던집니다. 100불짜리 지폐는 구겨지고 뽀얗게 먼지까지 묻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말합니다. "구겨지고 버려진 이 100불을 갖고 싶은 사람 손 들어보세요." 역시 모두 손을 듭니다. 그걸 본 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여기 100불짜리 지폐를 마구 구기고 바닥에 던져 더럽게 했더라도 여러분이 생각하는 100불의 가치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나'라는 존재의 가치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나’라는 존재가 인생의 역경을 겪으면서 구겨지고 더러워졌을지라도 ‘나’라는 존재 가치는 전과 다름없이 소중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세상을 살다 보면 때론 이 100불의 지폐처럼 인생이 구겨지고 더러워질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들은 스스로를 자책하고, 평가 절하하고, 절망하고, 우울증에, 열등감에, 대인 기피증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100불짜리 지폐가 구겨졌고 더러워졌을지라도 그 100불엔 100불의 가치가 그대로 남아있듯이, 우리들의 인생이 문제들로 아무리 구겨지고 더러워졌을지라도 우리의 정체성, 즉 내가 ‘하나님의 자녀요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내적 가치’는 나에게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게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 불리워지는 그 자리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실을 비유로 말씀해주십니다. 작은아들이 아버지께 재산을 미리 달라고 해서 흥청망청 다 쓰고 알거지가 되었습니다. 배가 너무 고파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를 먹으며 종살이를 하다가 문득 아버지께로 돌아가고 싶어 염치불구하고 얼굴에 철판을 깔고 아버지 집으로 향합니다. 집 나간 작은아들이 언제나 돌아올까, 늘 언덕에 올라 기다리던 아버지! 저 멀리서 누더기를 입고 거지가 되어 돌아오는 작은 아들을 보고는 달려갑니다.
아무리 작은아들이 아버지를 배반하고, 재산을 갖고 떠나 탕진하고, 거지가 될 정도로 인생이 구겨지고 더러워져도 아버지에게 이 작은아들이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정체성과 내적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결국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껴안고 잔치를 베풀고 좋은 옷을 입힙니다. ‘치료와 회복과 소생’의 역사입니다.
이런 “하나님과 나와의 끊을 내야 끊을 수 없는 관계”, “자기 정체성과 내적 가치”를,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불리우는 그 자리’를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5-39). 우리 인생의 어떤 순간이라도 “나”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고 주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 서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다시 세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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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