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교회, 풀러 Th. M
어떤 이방인이 랍비 힐렐을 만나서 자신이 한 발로 서 있는 동안 율법 전체를 요약해서 가르쳐달라고 하였다. 한 발로 서 있는 동안이란 극히 짧은 순간이니 율법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그때 랍비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네가 하기 싫어하는 일은 이웃에게도 시키지 말라. 이것이 율법이 말하는 전부다. 나머지는 다 그 해석일 뿐이다.” 구약에서 가르치는 율법은 모두 613개다. 그중에 긍정명령, 즉 하라는 것은 248개인데 이는 사람의 뼈마디 수이다. 부정명령, 즉 하지 말라는 것은 365개로 1년을 의미한다. 이렇게 율법이 구성되어 있는 것에 대해 유대 랍비들은 1년 365일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신 명령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이 명하신 율법을 온 몸으로 살아내라는 뜻이 담겨있다고 가르쳤다.
어떤 서기관이 예수께 나아와서 계명 중에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를 물었을 때 예수는 신명기 6장 쉐마(들으라)장을 상기시키시면서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다. 마음을 다하라는 것은 하나님이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살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목숨을 다하라는 것은 순교를 각오하기까지 사랑하라는 의미다. 뜻은 원래의 의미가 이해, 지혜다. 그러므로 뜻 다해 사랑한다는 것은 맹목적으로 사랑하지 말고 지성(知性)을 다하는 것이다. 힘을 다해 사랑하라는 것은 육체적인 힘과 모든 재물, 모든 은사를 다 드려서 사랑하라는 의미다. 또한 예수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다. 결국 예수는 전체 율법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하셨으며, 이것은 십계명의 요약이기도 하다. 1-4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라. 5-10계명은 이웃을 사랑하라. 십계명은 대개 부정명령으로 되어있는데 반해 주님은 그것을 뒤집어서 긍정명령을 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내가 왜 사랑해야 하는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내가 왜 사랑해야 하는가?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벅찬데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은 또 다른 무거운 짐이다. 아무리 아등바등 노력해도 살기가 힘들고, 이웃의 것을 빼앗고 착취해도 모자란데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니? 이런 계명 자체만을 보면 이것은 우리의 고단한 인생길에 또 하나의 짐을 더할 뿐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우리에게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짐을 더 얹는다는 것은 보통 고역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답을 복음에서 찾아야 한다. 내가 죄악 가운데서 은혜로 구원받은 자라는 자각을 하면 이 문제는 쉽게 풀린다. 나를 지으시고 죄 가운데서 구해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감사한 마음이다. 만 입이 내게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고 찬양해도 늘 부족한 마음뿐이다. 더 드리고 싶은 마음뿐이다. 이런 사랑을 경험한다면 이웃을 향해서도 우리는 관대한 마음을 갖고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런 상태를 늘 유지하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러므로 이런 벽에 부닥칠 때마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지점은 바로 구원을 받은 감격의 자리, 곧 갈보리 십자가다. 구원의 그 자리에 우뚝 선 십자가를 바라보고 묵상할 때 우리에게는 다시금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한 감동의 파도가 밀려올 것이다. 돌아가신 옥한흠 목사가 생애 거의 말년에 ‘날마다 십자가를 바라보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다. 설교에서 그는 하루에 십 분간만이라도 십자가를 바라보라고 호소한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 세 가지 힘을 얻는다고 갈파하였다. 첫째는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세상살이가 다 힘들다. 특히 이민생활은 힘들다. 이민생활 속에서 성공한다는 것은 정말 힘들다. 또한 성공하지 못하고 사는 것은 더욱 힘든 노릇이다. 그럴 때 십자가를 바라보면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한다. 둘째는 거룩을 실천할 힘을 얻는다. 이 죄악된 세상에 경건을 지키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우리 자신만의 힘으로는 음란한 세상을 넘어설 수 없다. 시도 때도 없이 화내는 나의 혈기조차 극복할 수 없다. 그러나 십자가에 정과 욕심을 못 박아버렸음을 깨닫게 되면 죄를 이길 힘을 얻을 수 있다. 셋째는 희생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세상은 얼마나 이기적인가? 이런 세상에서 내가 먼저 희생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예수는 한 알의 밀알이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시고 실제로 자신이 한 알의 밀알로 죽으심으로 본을 보이셨다.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남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가? 더 이상 희생할 수 없다고 느껴질 때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한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할 이유와 능력을 얻을 수 있다. 이 사랑을 회복해야만 이 세상이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