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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기억을 덮어주는 은혜

최해근 목사

몽고메리교회 담임목사

근자에 전국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뉴스로 작년에 있었던 연방대법원 판사 브렛 캐버너 인준건과 버지니아 주지사인 랠프 노담(Ralph Northam) 건이 있습니다. 이 두 사건의 공통점은 바로 ‘35’라는 숫자입니다. 브렛 캐버너는 1983년 고등학교 앨범에 남겼던 글이 문제가 되어 대법원판사 인준과정이 더디고 힘들었습니다. 반면 버지니아 주지사인 노담의 경우에는 1984년 의과대학 앨범에 남긴 사진이 인종차별적인 모습을 담고 있어 자신이 속한 민주당에서조차 심각한 사퇴의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두 사건 모두 35년 전에 있었던 기록이 문제가 되어 현재 그들의 발목을 잡았던 것입니다. 똑같이 35년 전의 사건이지만 캐버너 쪽은 틴에이저 때의 일이고 노담 주지사의 경우는 25살, 의과대학에 다닐 때의 일입니다. 비슷한 것 같지만 사람들의 반응이 현격히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노담 주지사가 흑인분장을 한 것이 왜 그렇게 문제가 될까요? 그 배경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유랑극단에 해당될 수 있는 것으로 미국에서 민스트렐(minstrel) 극단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19세기 초반에 흥행했던 이 극단이 가지고 있는 단골 레퍼토리는 백인이 흑인분장을 하고 흑인들의 춤을 추며 흑인억양으로 말을 하곤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흑인들의 인격에 흠을 내고 우습게 보이도록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인이 흑인의 얼굴색으로 분장을 하고 말을 흉내 내는 일은 미국 땅에서는 절대 하지 말아야 금기가 된 것입니다. 백인이 동양인의 얼굴로 변장을 하고 영어를 더듬으면서 천박한 몸동작을 극중에서 보이게 되면 동양인들이 절대로 좋아할 리가 없을 것이며, 백인이 한국인으로 얼굴을 분장한 후 된장찌개를 끓이면서 엉터리 영어를 하고 외설적인 춤을 춘다면 그런 모습을 대하는 한국인들의 감정이 결코 편하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작년 10월 23일, NBC 방송에서 아침 뉴스시간을 담당했던 켈리(Megyn Kelly)가 자신이 어렸을 적에는 할로인데이에 흑인 분장을 하고 흑인 옷을 입고 다녔는데 그게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 말을 들었던 사람들이 벌떼같이 일어나 문제가 아닌 것이 아니라 심각한 문제가 된다고 반론을 재기했고 그런 켈리의 사고방식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결국 연봉 2천만불을 받았던 켈리는 NBC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35년전 의과대학을 다닐 때 흑인분장을 한 사진이 앨범에서 발견된 후 그 사진의 주인공인 버지니아주지사를 향해 민주당 공화당 할 것 없이 모두 한 목소리로 인종차별적인 행동을 취한 노담 주지사는 반드시 사표를 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 이렇게 말할까요? 상대방이 가진 아픈 기억 때문입니다. 만일 흑인들의 성공적인 삶을 묘사하기 위해 변장을 하고 억양을 바꾼다면 흑인들이 그토록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성공적인 삶의 묘사가 아니라 무시되고 억눌렸던 노예시대의 삶을 흉내 내며 그 모습을 보고 백인들이 웃고 떠들고 하는 것은 분명 노예시대의 삶을 살았던 흑인들에게는 아픔이 되는 것입니다.

올바르게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인격자라면 상대가 숨기고 싶어 하는 지난날의 아픈 기억이나 상처를 감추어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교회당의 깊은 곳에서 뿐만 아니라 날마다 만나는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아픈 기억과 상처를 덮어주는 것만으로도 전달될 수 있음을 기억하고 그 길로 한 해 동안 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thechoi82@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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