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드림포럼 대표
살다보면 많은 사건과 사고들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사건과 사고들이 발생하기 이전에 반드시 징후들이 존재한다는 법칙이 있습니다.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입니다. 참 흥미롭습니다.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Herbert William Heinrich, 1931년)가 펴낸 “산업재해 예방 : 과학적 접근(Industrial Accident Prevention : A Scientific Approach)”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을 쓴 하인리히는 미국의 트래블러스 보험사(Travelers Insurance Company)에서 ‘엔지니어링 및 손실 통제’에 관련된 부서에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업무상 수많은 사고 통계를 접하게 됩니다. 그는 산업재해 사례들을 분석하는 가운데 통계적 법칙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산업재해가 발생하여 ‘사망자와 중상자’가 1명이 나오면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29명이 나온다는 겁니다. 또 그전에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 뻔한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이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때문에 그는 이 법칙을 ‘1 : 29 : 300 법칙’이라고 불렀습니다.
큰 재해와 작은 재해 그리고 사소한 사고의 발생 비율이 ‘1 : 29 : 300’이라는 겁니다. 아무리 큰 사고라고 하여도 그것이 우연히 또는 어느 한순간에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이전에 그 사고와 같은 이유로 “아이고, 큰일 날 뻔했네!” 라는 300건 정도의 잠재적 부상자가 있었고, 실제로 그 사고와 같은 이유로 “이만하길 다행이지”라는 29번의 경미한 사고들이 그 이전에 있었다는 겁니다. 이 하인리히 법칙을 정리하자면, ‘큰 사고가 일어나기 전 1)다수의 징후들(300번의 잠재적 위험, 29번의 경미한 사고)를 통하여 이미 충분한 경고가 있었고 2)이때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결국 큰 사고라는 실제 상황이 발생하므로 3)다수의 징후 경고들에 예민해야 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한다’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큰 사고는 항상 작은 사고들을 경시하고 방치할 때 발생한다는 것입니다(인터넷에서 내용참조).
우리들의 실생활에 시사해주는 바가 큽니다. 하나는 “준비”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천국)에 대해 종합적으로 말씀하신 마태복음 25장은 10처녀의 비유로 시작됩니다. 이어 달란트의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로 이어집니다. 이 세 비유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나뉜다”는 것입니다. 10처녀의 비유는 슬기로운 5처녀와 미려한 5처녀로, 달란트의 비유는 착하고 충성된 종과 미련하고 악한 종으로, 양과 염소의 비유는 말 그대로 양과 염소로, 주인에 의해 반드시 나눠집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는 ‘누구에게나 열려져 있지만 아무나 가는 나라는 아니다’라는, 즉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들어가는 자들만 들어가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그 비유 가운데 첫 번째인 열처녀의 비유를 봅니다. 전하고 싶은 여러 말씀들이 많지만 가장 핵심은 역시 “준비”입니다. 기름을 미리 준비한자 만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신랑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하인리히 법칙”, 등잔에 불이 꺼질 수도 있는 상황 그때를 대비해서 미리미리 기름을 준비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혹 다른 말로 하자면 “위기관리능력”입니다.
어느 기업체를 운영하시는 장로님이 계십니다. 매해마다 100여명 이상의 직원들을 신규 채용하시는 꽤 잘되는 중소기업체 사장이셨습니다. 하루는 점심을 같이 하면서 물었습니다. “장로님은 매해마다 직원들을 무슨 기준으로 신규 채용하십니까?”, 이때 돌아온 대답이, “목사님, 위기관리 능력입니다. 평상시에는 웬만큼 스펙들은 다 갖췄기에 능력이 나타나봤자 거기서 거기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위기가 닥칠 때 능력의 진가가 나타납니다.“ 항상 위기가 닥칠 때를 위해서,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서, 기름을 준비하는 슬기로운 5처녀 즉 미리미리 평소에 돌발 돌출되는 위기 상황들을 예상해보며 그 솔루션을 씨름하며 고민하며 준비하는 사람들 슬기로운 5처녀들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다른 하나는 “회개”입니다. 회개는 고치는 겁니다. 내 지식과 경험과 돈, 내 명예와 권력과 힘에 고집과 아집이 들어가면 웬만해서는 고쳐지지 않습니다. 닭이 우는 3번의 소리만 듣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떠오르는 영적 민감함,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인생의 끝과 영생의 시작을 바라보는 영적 예민함이 있어야 합니다. 자녀들을 통하여, 지인들을 통하여, 말씀과 찬송과 기도와 봉사와 예배 가운데 전하여지는 가벼운 찔림에도 반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못할 때 결국 회초리로, 회초리로 안 되면 몽둥이로, 몽둥이로 안 되면 결국 큰 재앙이 이어지게 됩니다. 영적 무감각 때문에 생기는 불필요한 징계입니다. 작은 떨림에도, 따끔할 정도의 회초리에도 회개할 수 있는 영적 예민함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제 연말을 보내고 또 새해를 맞습니다. 뭐 새해라고 작년과 그리 크게 달라질게 있겠습니까? 다만 새해를 맞는 내가 작년보다 조금 더 성숙해진다면, 아마 새해는 나에게 더 나은 나날들이 될 것입니다. 새해에는 영적으로 깨어 가던 길 잠시 멈추어 서서(매우 자주 “STOP", 점검) 스스로를 돌아보며(매우 자주 “CHECK", 회개) 항상 옷매무새 가다듬고 간다면, 분명 소망과 기대와 꿈으로 가득찬 한해가 될 것입니다.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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