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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

민경엽 목사 (오렌지 카운티 나침반교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누가 물어오면 나는 언제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꼽는다. 그 긴 영화를 몇 번을 반복해서 본 것 같다. 이게 1930년대의 영화(1939년 작)란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작품이 탁월하지만 비비안 리나 클라크 케이블을 비롯한 수많은 연기자의 연기도 모두 적절하고 훌륭하다. 그러나 내가 그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영화에 담긴 미국 남부인들 특유의 강인함 때문이다. 사실은 소설이 나오고 일반에 읽힐 때 마치 광풍이 부는 것 같이 잘 팔렸다고 하지만 저자 마거릿 미첼 여사가 이 책을 출판하기까지의 과정 역시 험난했다. 여사는 1929년에 탈고를 하고 수백여 곳의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으나 모두 거절당하였다. 이 소설을 출간한 맥밀런 출판사 역시 초판이 1,037쪽이었으니 당시의 원고로 트렁크 하나 가득 찰 분량이었기에 처음에는 읽는 것조차 거절하였다. 그러다가 여사의 절친 파커슨이 출판결정 담당자가 뉴욕으로 가는 열차의 좌석에 이 트렁크를 놓아두고 꼭 읽어주기를 당부했으나 그는 무시하였다. 다시 인편으로 메모를 전했지만 또 무시하였다. 급기야 전보를 치고 나서야 한숨을 쉬면서 읽기 시작했으나 급속도로 빠져들어 뉴욕에 도착할 때까지 그 어마어마한 원고를 다 읽고는 당장 출판계약을 맺었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오면, 영화는 남북전쟁의 패배로 인해 남자들은 모두 징병되어 죽었고, 농장은 황폐해지고, 가축은 모조리 도둑맞고, 노예들은 죄다 도망치고, 3년간이나 수확하여 쌓아둔 목화는 모조리 불타버린 상황에서 아버지는 그 충격으로 정신이상이 되고, 떠나지 못한 가련한 노예들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하는 힘겨운 처지에 있는 주인공 스칼렛은 자기 고향 타라의 흙먼지를 움켜쥐고는 재건의 의지를 불태우면서 이렇게 결심한다. “하나님께 맹세해. 다시는 배고프지 않겠어. 내가 도둑질을 하든 살인을 저지르든 다시는 결코 배고프지 않겠어.” 그런가 하면 영화의 마지막에는 스칼렛을 사랑했던 남자 주인공 레트가 자기를 떠나버린 가운데 어떻게 하면 그가 돌아오게 할까 하는 문제로 안달하던 스칼렛이 우선 잠을 자기로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테니까”(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저마다 다른 영감을 얻을 수 있지만 내가 받은 도전은 이런 것이다. 강한 자는 어떤 문제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시름을 덮어두고 잠부터 잘 수 있기에 강한 자이기도 하다.

이민 교회에서는 시험에 드는 사람이 많다. 목회자 때문에 시험이 들기도 하고 교인들 간에 서로에 대해 시험이 든다. 최근의 가나안 현상 역시 시험이란 관점에서 설명될 수 있다.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자매’라는 찬송가를 부르면서도 교회를 떠나는 일이 잦다. 그러니 교회는 떠나가는 사람으로 인해 후유증에 시달리고 떠나간 그 사람도 새로운 영적인 보금자리를 찾기까지 헤매고 방황하고 무기력해진다. 시험을 당할 때 사람들은 외부의 요인을 찾는다. 누구 때문에 시험을 당한다고 생각하고 집중적으로 외부적 요인을 비난하고 자신이 시험을 당하는 현실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청교도 신학자 존 오웬의 말을 빌리면, 시험이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기에 적합하지 않거나 모자라는 상태”이다. 시험이란 외부의 요인을 어느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결국 자신이 하나님께 순종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하는 ‘자기’의 문제라는 것이다.

최근에 홍수환 선수의 1977년 파나마에서 열린 카라스키야와의 주니어페더급 타이틀이 걸린 권투 시합을 다시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1회전에는 잘 싸우던 그가 2회전에만 네 번 다운을 당하였다. 아나운서도 그가 카라스키야에 비해 기량의 차이가 커서 어쩔 수 없다는 투로 멘트를 날렸는데, 3회전에서 그는 미친 듯이 주먹을 날려 기적과도 같은 KO승을 따냈다. 복싱계에 전무후무한 4전5기의 신화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가 어떻게 이겼는가? 정신의 승리였다. 또한 맷집의 승리였다. 그에게는 두드려 맞으면서 잠시 쓰러졌지만 카라스키야처럼 아예 드러누워 버리지는 않는 단단한 맷집이 있었다. 시험이 드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문제를 일으켜 시험이 들게 하는 요인이 외부에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약한 체질이 시험이 드는 당사자에게도 있는 것이다. 도종환은 노래하였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는 것은 꽃에게만 있는 현상이 아니다. 하지만 꽃들이 흔들리기에 더 강하게 뿌리를 내리듯이 흔들리기 때문에 신자는 신앙이 성장하고 영적으로 강한 체질을 갖는다. 다만 흔들릴 때 그 흔들림을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하고, 흔들림 속에도 살아남기를 결단해야 한다. 그리고 정 힘든 문제 앞에서는 이렇게 말하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테니까, 나는 우선 잠부터 자야겠어.” 시험 앞에서 흔들리는 이유가 잠이 부족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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