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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자!

민경엽 목사 (오렌지 카운티 나침반교회)

최근에 파푸아뉴기니의 쿠오트 부족을 위해 16년간 문자를 만들어주고 성경을 번역해준 정 철화 선교사가 신약성경 오디오 봉헌식에 가서 찍은 사진들을 보내주었다. 유능한 선교사가 인내로써 맺은 열매가 풍성함을 보면서 성경번역 선교사들의 수고가 새삼 마음에 와 닿았다. 그러면서 우리말 성경은 어떻게 우리 손에 들어왔는지 궁금했다. 또한 비교적 짧은 기간에 세계가 놀라는 큰 부흥을 이룩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오늘 이러한 부흥운동을 계승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되짚어보았다.

1878년 스코틀랜드 성서공회가 파송한 존 로스 목사의 마가복음이 우리말로 번역된 최초의 성경이다. 원래 로스는 중국에 선교사역을 하러온 사람이었는데 대동강에서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의 이야기를 듣고 조선 선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중국에 도착한 지 1년도 안되어 아내를 잃는 절망을 딛고 우여곡절 끝에 1876년 그는 한글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았는데 그가 청나라와 한약재를 무역하며 한문과 만주어에 능통한 지식인 이응찬이었다. 당시에 서양인을 돕는 일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기에 이응찬은 다른 사람들이 보는 데서는 절대로 아는 척 하지 말아달라는 조건을 달아서 도움을 주었고 아직 믿지도 않는 상태에서 마가복음을 번역하였다. 그런데 어떤 불량배들이 이 사실을 알고는 위협하며 돈을 뜯어서 이응찬은 도망가고 말았다. 그러다가 1879년 봄에 이응찬은 먼저 믿은 백홍준 등의 친구들과 성경을 읽고 공부하면서 예수님을 영접하였다. 하지만 그는 이전에 사업의 실패를 통해 가까이 했던 아편과 술을 끊지 못하여 세례를 받기를 원하였지만 거절당했다. 그러다가 완전히 끊기로 결심을 한 후 1879년 7월에 존 로스 목사의 제부가 되는 매킨타이어 목사에 의해 중국땅 만주의 영구라는 지역에서 한국 개신교인으로는 세 번째로 세례를 받았다. 이외에도 당시 로스 선교사를 도와주며 성경을 번역하고 인쇄, 보급한 백홍준, 서상륜, 김청송과 같은 이들이 한국교회사에는 별같이 빛나는 존재들이다.

한국의 개신교회보다 천주교회는 100여 년 전에 들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세가 개신교의 1/3수준이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성경을 번역하고 보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연세대학교 총장을 지낸 백낙준 박사는 천주교회에 대해 “1784년 이승훈이 교회를 창설한 이래 1866년까지 82년이란 세월이 흘러갔지만 그동안 쪽복음서 한 권이나 성경의 어느 한 부분도 번역하려 하지 않았다”고 지적하였다. 하지만 개신교에서는 1885년 언더우드, 아펜젤러 선교사가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로 입국할 당시 이미 평안도 의주 지역에 100여 명(백홍준 전도), 서울 지역 300여 명(서상륜 전도)의 세례 지원자가 있었다. 또한 만주땅 집안 지역에는 한인교회(김청송 전도)가 존재했다. 이런 놀라운 사실이 가능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성경이 번역되었고, 그 성경이 권서인이라는 사람들에 의해 쪽복음 형태로 팔렸고, 그렇게 성경을 접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 개신교회는 초창기부터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신하였고 그 말씀을 중심으로 한 신앙이 확고하게 자리 잡은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교회들마다 말씀 중심 신앙이 꽃피었고 한국교회의 초기에는 부흥회라는 말보다는 사경회라는 말이 더 많이 쓰이기도 하였다. 1890년 채택된 네비우스 선교정책의 근간으로 사경회가 널리 시행되었는데 이 사경회가 부흥운동을 위한 영적 각성의 토양을 제공해 주었다. 1903년 원산부흥운동도 사경회에서 비롯되었고, 1907년 1월에 있었던 평양 대부흥운동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던 장대현교회에서의 평안남도 남자 도사경회도 말씀을 사모하던 사람들이 두 주간의 집회에서 계속 말씀을 받다가 일어났다.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종교개혁은 본질회복 운동이었다. 종교개혁은 말씀 회복 운동이었다. 종교개혁은 두 권의 성경을 중심으로 일어났다고도 할 수 있다. 그 하나가 말틴 루터를 통하여 로마서를 중심으로 일어난 구원론적인 각성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존 칼빈을 통하여 야고보서를 중심으로 한 실천론적인 교회의 각성이었다. 오늘날 한국교회와 이민교회에는 이 두 가지의 개혁이 더불어 일어나야 한다. 성도 개개인을 만나서 확인해보면 교회를 그리 오래 다니고도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부지기수다. 그런 의미에서 기존의 교인들에게 전도폭발과 같이 복음을 원색적으로 증언하는 사역이 지속되어야 할 필요를 강력히 느낀다. 동시에 제네바에서 일어났던 존 칼빈의 말씀을 근거로 한 개인과 사회의 개혁운동의 기치를 다시금 높이 들어야 한다. 그래서 부족한 우리를 향하여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짐을 보아야 하겠다.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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