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해근 목사 (몽고메리교회)
매년 5월이 되면 자연스럽게 가정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한국에 살든 미국에 살든 대등소이하게 오월은 자녀와 부모 그리고 부부에 대해 누구든지 한 두 번은 돌아보게 합니다. 특히 성경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서 5월에 많이 생각나는 인물로 나오미와 룻이 될 수 있습니다. 나오미와 룻은 시어미니와 며느리의 관계로 아무리 양보하더라도 어머니와 딸과의 관계처럼 편하고 자연스럽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한 여성은 유대인이고 한 여성은 이방의 모압 출신 여성으로 약간은 엇박자가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두 사람의 관계에서 오늘 우리 시대 신앙인들이 돌아보아야 할 숨은 모습을 찾아봅니다. 남성중심의 사회 속에서 시어머니도 며느리도 과부의 신분으로 산다는 것이 결코 만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시어머니였던 나오미가 앞이 보이지 않은 현실적인 필요 앞에서 며느리에게 자신이 생각한 최선의 제안을 던집니다. 그 제안을 현대 버전으로 바꾸어 본다면 바로 며느리로 하여금 ‘친정으로 돌아가 새 사람 만나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아직 젊은 나이에 딸린 아이도 없으니 마음 넓고 이해심 많은 남성을 만나면 지금처럼 과부로 사는 것보다는 훨씬 더 괜찮은 삶이 될 것으로 시어머니가 생각하고 그 생각을 며느리에게 제안합니다. 지금으로부터 3,000여년 전에 자신의 며느리에게 이런 배려와 마음을 나누는 시어머니가 있었다는 그 자체가 놀랍기만 합니다.
시어미니 나오미가 며느리에게 이런 제안을 하면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너의 백성인 모압민족에게로 돌아가고 네가 섬기던 그 신에게로 돌아가라는 것이 시어머니 말씀의 요지입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조금이라도 피부에 더 탄력이 있고 새 사람을 만나 자녀를 낳을 수 있는 건강이 있을 때 며느리에게 친정으로 돌아가 새 삶을 시작하도록 제안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어머니 나오미가 며느리 룻에게 제안하는 이 모습에 때론 감동을 받기도 합니다. 우리 자신들도 그런 시어머니나 시아버지 혹은 어머니나 아버지가 되어야 되겠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바로 여기에 현대 신앙인들이 가지고 있는 깊은 약점이 숨어 있습니다. 한 걸음만 더 멀리 보면 “아~ 이렇게 하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되는구나!”라는 한숨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정말 근사하고 따뜻하고 상대의 삶을 배려해주는 제안처럼 들리는 시어머니 나오미가 던지는 ‘돌아가라’는 너무도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제안이 오늘 신앙인들의 가정과 자녀들의 영적인 부분을 다 뭉개고 있다는 점입니다.
시어머니 나오미의 제안대로 며느리 룻이 고향으로 돌아가 정말 멋지고 잘 생기고 경제적으로 든든한 젊은이를 만나 새로운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고 가정해봅시다. 자녀들도 여러 명 낳았고 유복하게 과부가 아닌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삶을 살았다고 해봅시다. 아무리 양보를 하더라도 그녀의 삶에 꼭 있어야 할 한 가지, 바로 하나님을 향한 생명의 삶이 빠져있다는 점입니다. 고국 모압의 친정집으로 돌아가면 여러 가지 현실적인 편리함이나 혜택은 누릴지 모르지만 그 영혼의 깊은 고뇌와 상실감 그리고 긍극적으로는 창조주와 영원히 결별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어머니 나오미의 제안이 감미롭기는 하지만 올바른 길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런 모습을 우리 가운데서도 자주 만나게 됩니다. 때로 혼기를 놓친 자녀를 둔 신앙인들이 자녀들의 결혼 사안에 대해 나오미와 아주 유사한 선택을 자녀들에게 제안하곤 합니다. ‘너 나이를 생각해 보아라. 그만한 사람이면 하늘이 준 기회이다. 학력도 있지 재력도 있지, 직장도 확실하지, 뭘 망설이냐? 예수믿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망설이니? 신앙 때문에 고민하니? 그까짓 신앙, 그게 뭐 대수라고... 집어 치워라 치워!’ 이런 안타까운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시어머니의 제안을 들었던 며느리 룻은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합니다. 며느리 룻은 시어머니가 분명히 자신을 생각해서 제안한 말씀이지만 그 제안 속에 빠져있는 ‘영혼’을 보게 됩니다.
삶의 더 많은 경험과 지식을 가진 시어머니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영혼의 실재를 보지 못했고, 젊은 이방인이었던 며느리 룻은 뚜렷하게 보고 있습니다. 룻은 친정이 있는 모압으로 돌아간다면 새로운 가정, 새로운 삶은 시작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자신이 받아 드렸고 섬겨오고 있는 영원하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은 이제 더 이상 예배할 수 없다는 그 사실에 집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룻은 시어머니의 제안을 거부하고 고집스럽게 시어머니를 따라 타국 땅으로 이주하여 이방인으로 자신의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많은 것들이 낯설고 힘들지만 자신이 선택한 신, 자신이 섬기기로 작정한 그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는 현실이 삶의 모든 부분들을 감당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믿음의 선택을 하고 이주한 낯 선 곳에서 새로운 사람, 보아스라는 사람을 만나고 그를 통해 아들을 낳게 되는데, 그 아들이 바로 다윗왕의 할아버지가 됩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필요보다 보이지 않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해 자신의 선택을 던졌던 룻을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으로 오실 때 육체적인 통로로 사용하셨습니다. 5월 가정에 달에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하고 든든한 가정을 세울까 하고 다양한 제안들이나 방법들을 찾아보곤 합니다. 그러한 제안과 방법들이 때론 실제적으로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대를 넘어 변함없이 그리고 가장 아름답고 건강하게 가정을 세우는 길은 현실적인 필요를 잠시 뒤로 하고 눈을 열어 가정을 창조하신 그 분에게 초점을 고정시켰으면 좋겠습니다. 왜냐면 그 분에게서만 생명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thec`hoi82@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