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엽 목사 (오렌지 카운티 나침반교회)
교회 사역에서 피하고 싶은 일 중에 하나가 직분자 선거다. 직분자가 있는 것은 목회사역에 큰 도움이 된다. 아주 작은 교회라 할지라도 목회자가 더욱 기도하는 일과 말씀 전하는 본무에 충실하려면 직분자는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장로를 세워 놓았더니 교회에서 결정적으로 어려운 위기 때 한 몫씩을 감당한다. 권사를 세우니 교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찾아다니며 위로와 격려를 해서 약한 자들로 하여금 교회생활의 참 맛을 알게 해준다. 안수집사 역시 교회에서 땀 흘리는 일은 도맡아 하니 그들로 인해서 교회가 활기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분자 선거를 여전히 피하고 싶은 이유는 당선되는 이들만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선거에도 그랬다. 많은 이들이 당선이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낙선한 이들이 몇 있었다. 목자의 마음은 양들이 아프면 따라 아픈 것이다. 당선자들의 명단을 발표하는 가운데서도 환호작약할 수 없었다. 함께 결과를 듣는 교인들 역시 당선자보다는 낙선자의 눈치를 보면서 조용조용히 당선된 이들에게만 축하를 건넨다. 이전에 선거를 치를 때 낙선된 한 가정은 끝없는 설득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교회를 떠났다. 가슴 아픈 이야기를 친구 목사에게 했더니 자기는 선거를 잘못해서 수십 명이 떼 지어 떠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래서 선거를 하는 당일에 어느 낙선자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전라북도 김제에 가면 기역자 예배당으로 유명한 금산교회가 있다. 그 교회는 1905년 미국 남장로교 소속 루이스 테이트 선교사의 전도로 조덕삼이라는 이가 세운 교회다. 조덕삼은 운수업과 광산업을 하는 엄청난 부자였기에 교회를 자기의 돈을 내서 세웠다. 그런데 그 집에서 머슴을 살던 이자익이라는 자가 함께 예수를 믿고 같은 날에 세례를 받았다. 이자익은 조덕삼보다 열다섯 살이나 아래이며, 고아로 자라서 떠돌다가 여섯 살에 조덕삼의 집에서 받아주어 머슴을 살았다. 그 교회가 성장을 하여 오십 명쯤 되었을 때 장로 한 명을 피택하기 위해 투표를 했는데 마침 주인 조덕삼과 머슴 이자익이 함께 출마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주인은 낙선을 하고 머슴은 당선이 되었다. 결과를 받아든 교인들이 술렁이며 큰 근심을 하는 표정들이 역력했다. 사태를 눈치 챈 조덕삼이 일어나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하나님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 이자익 장로님을 잘 받들어 교회를 더 잘 섬기겠습니다.” 그러자 불안하고 초조했던 온 교회가 대환영을 하면서 박수를 쳤다. 당선된 머슴 이자익보다 낙선된 주인 조덕삼이 훨씬 더 존경받게 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는 2대 장로가 되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조덕삼 장로는 모든 경비를 대주면서 이자익 장로를 평양신학교에 입학시키고 공부를 하게 했다. 그 후 목사가 되자 조 장로가 나서서 이자익 목사를 금산교회 담임목사로 청빙하였다. 한국교회가 어려운 시기에 탁월한 지도력을 가진 이자익 목사는 장로교 역사상 세 번이나 총회장을 역임하는 초유의 목사가 되었다. 조덕삼 장로는 4선 국회의원이었던 고 조세형 의원의 조부이다.
당선자는 자신을 충성스럽게 여기셔서 직분을 주심을 감사하면서 충성을 다해야 한다. 말과 행실에서, 교회의 출석과 봉사와 헌금생활에서 모범을 보이는 것은 기본이고 교회가 어려울 때마다 혼신의 노력을 다해서 앞장서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라고 직분자를 세웠는데도 종종 문제를 만드는 직분자들로 인해 교회는 어려움에 빠진다. 일꾼을 세웠더니 일감만 되기도 한다. 장로는 자상한 아버지의 역할로, 권사는 따뜻한 어머니와 같은 모습으로, 안수집사는 열심히 성도들을 위해 땀 흘려 일하는 형님 같은 자세로 섬겨야 한다. 낙선자는, 선거는 사람이 하지만 당선되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이라는 것을 숙연히 받아들여야 한다. 실망하고 좌절하여 배신감에 교회를 떠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묻고 겸손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조덕삼 장로의 예와 같이 교인들에게 더욱 존경받고 또한 큰 축복이 임한다.
직분자 선거가 있던 날 저녁에 당선한 이들에게는 축하의 전화를, 낙선한 이들에게는 위로의 전화를 드렸다. 당선될 줄만 알았던 낙선자 가운데 한 사람은 아직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는지 전화도 받지 않아서 힘들어하고 있는데 도리어 위로의 문자를 전해왔다. “저는 괜찮습니다. 기도 중에 성령님께서 미리 평안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제 마음을 미리 준비시키신 것 같습니다. 단지 다음 주일에 성도님들 대할 때 인간인지라 좀 불편할 것 같기는 하네요. 또한 내 자신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음을 솔직히 인정합니다. 목사님도 속상해 하지 마세요.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이제는 목사님, 사모님께 민폐 끼치는 일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가슴 뭉클한 감동이 임했다. 그 낙선자가 영적으로 성장하여 더 깊은 성도가 되는 모습이 마음에 그려졌다. 하나님은 교회사역 가운데 피하고 싶은 일을 통해서도 교회가 성장, 성숙하게 하신다. 그래서 목회자도 자라가게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