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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들

민경엽 목사 (오렌지 카운티 나침반교회)

땅콩 박사 조지 워싱턴 카버(1864-1943). 그는 부모의 얼굴도 모르는 흑인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 병약하여 사람 구실하기조차 힘들 것처럼 생각되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땅콩을 이용하여 세상을 바꾼 사람이다. 그는 목화를 재배하면서 피폐된 미국 남부 지역의 토지에 땅콩을 심게 하여 농업혁명을 일으켰다. 그런가 하면 땅콩을 이용하여 페인트, 화장품, 물감, 구두약, 식용유, 비누, 의약품 등 105가지가 넘는 식품과 200여 가지의 실용품을 발명하였다. 그래서 링컨 대통령이 노예를 해방했다면 그는 남부지역을 해방한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날 때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싫어한 사람은 있어도 그를 싫어한 백인은 없다고 극찬할 정도였다. 그는 명예와 재물이 보장된 아이오와 주립농과대학의 교수직을 버리고 가난한 흑인들을 위하여 앨라배마의 터스키기 흑인교육기관에 들어가서 평생 경제적으로 궁핍하게 지냈으며, 스스로 “하나님의 작은 실험실”이라고 부른 초라한 실험실에서 실험도구 하나 없이 빈손으로 시작하였다. 그의 실험실에는 오직 성경책 한 권만 있게 할 정도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카버 박사가 훌륭한 사람이 된 데에는 그의 신앙과 성실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지만 그가 나서 자란 과정을 보면 그의 주변에 많은 착한 사람들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먼저 그가 어릴 때 노예해방에 반대하는 무장 폭도들에 의해 어머니 메리와 납치되었을 때 노예제도를 반대했지만 필요에 의해서 메리를 고용했던 주인 모세스와 수잔 카버 부부는 그들을 애타게 찾아 나섰다. 그들은 메리가 이미 다른 곳으로 팔려가서 알 길이 없는 상황에서 카버를 말 한 필 값을 치르고 데려왔고 어린 카버에게 집안일과 정원손질과 웹스터의 철자법을 가르쳐 주었다. 또한 그에게 실을 뽑고 비누를 만들고 들판에서 약초 뿌리를 캐고 음식을 만드는 모습을 직접 보여줌으로써 장래에 농학자가 되는 길을 닦아주었다.

그런가 하면 청소년기에 학교 공부를 하는 동안 세탁업과 조산원을 했던 마리아 왓킨스는 카버를 자기 집에 허드렛일을 하면서 기거하게 해주었다. 마리아는 강한 믿음의 소유자로서 카버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였으며, 그에게 성장하여 가난한 동족들에게 자신이 배운 것을 가르쳐 주는 꿈을 심어주었다. 누구하나 의지할 자 없던 카버의 생애를 하나님을 의지하였고 하나님과 사람들을 위해 살게 만들어준 것이다. 그러다가 1890년에는 심슨예술대학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때 미술교사 버드는 예술뿐만 아니라 식물과 자연에 관심이 많은 카버를 아이오와주립대학 농과대학에 입학하게 하여 수석으로 졸업하는 최초의 흑인 학생이 되는 영예를 안게 하였다. 카버도 훌륭하였지만 카버가 인생의 길목에서 중요한 변곡점에서 만난 사람들이 모두 착한 사람들이었다. 그의 생애 동안 이룬 모든 업적들은 이런 사람들의 사랑과 친절이 아니었다면 세상에 빛을 볼 수도 없었음은 물론이다. 나는 어느 날 카버의 생애에 관한 글들을 읽다가 내 생애를 돌아보게 되었다. 이렇게 나에게도 나를 이끌어준 착한 분들이 있었다. 나를 아껴준 이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나를 신실한 사랑으로 대해준 세 사람을 잊지 못한다. 그중에도 내가 청소년기와 대학생 때 내게 신앙의 길을 깨우쳐준 이들이 말할 수 없이 고맙다. 병약한 가운데서 방황하는 내게 사랑을 부어주면서 하나님을 위해 사는 길로 이끌어주었던 중학시절 주일학교 교사, 스스로 덴마크의 그룬트비 목사의 정신을 본받아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흙 사랑을 외치며 고향으로 돌아가 농촌의 청소년들의 대부가 되었던 고등학생 때의 주일학교 교사, 그리고 사역자의 길을 갈 때 학비도 내주고 바울이 디모데를 교훈하듯 선교지에서 수십 통의 편지를 보내주며 사랑을 베풀었던 청년 때의 목회자... 그들은 모두 내가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될지를 알지 못하는 가운데서 나를 사랑했고 또한 섬겼던 착한 사람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있었기에 부족한 모습이지만 오늘의 내가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세상의 빛이라 하시고는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고 하셨다. 온 세상이 자기만을 위하는 이기주의로 돌아섰다. 점점 더 다른 이들에 대해 무심해져 가고 있다. 어느새 교회도 다른 이들에 대해 냉담한 현실이 되었다. 교회가 착하지 않은 것이다. 교회마저 저만 아는 이상한 괴물이 되어 있다. 막상 나부터 이렇게 인생과 신앙의 선배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지만 내 다음 세대에 사랑을 주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다. 이런 분위기에서 교회는 부흥은 고사하고 정체 내지 쇠퇴를 면하기 어렵다. 먼저 교회가 착해져야 한다. 그리고 교인들이 착해져야 한다. 우리 삶 속에서 우리 안의 조지 워싱턴 카버와 같은 이들을 발굴해 내야 한다. 그것이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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