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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Forum)의 우상에서 빛의 절기로

최동진 목사 (샌디에고 반석장로교회)

지난 주 한국에서는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 대도시에서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촛불집회가 무려 200만으로 타올랐다. 대통령을 포함한 최씨 일파들의 국정농단에 백성들의 분노는 촛불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형국이다. 초겨울 눈비가 예상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어린 아이들의 손을 잡고 광장에 모인 부모들, 전국에서 1, 2주 걸쳐 트랙터를 몰고 올라오는 성난 농심들, 심지어 한창 공부에 열중해야 할 중, 고등학생들까지 그냥 앉아서 공부만 할 수 없다며 역사의 현장에 발자국을 남기겠다고 온갖 페러디물들을 들고 참여하고 있었다. 우리들의 어린 자녀들을 거친 진도 앞바다에 수장해버린 세월호사건 이후, 또한번 무너져 내리는 참담한 우리 민족의 누추한 자화상을 향한 촛불들이 횃불 되어 태우고 있는 준엄한 광장의 외침을 목격하고 있다. 일찍이 400여 년 전 영국의 유명한 경험주의 철학자인 프란시스 베이컨은 "신(新)오르가눔(Organum)"이라는 그의 책에서 네 개의 우상(Idola)들을 논하고 있다. 먼저는 '종족의 우상'이다. 인간이 살아오는 자신들의 삶의 방식에 따라 농축되어온 문화적 선입견에 따라 사물들을 판단한다는 것이다. 특히 인간 집단의 문화적 선입견이 때론 울퉁불퉁한 거울과 같을 수 있다고 했다. 특정 집단은 이념에 따라 믿고 싶어 하는 것만 진리로 믿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종족의 우상은 정치집단에서 두드러지는데, 최근까지 문제가 되고 있는 한국사 국정화 작업 시도를 통한 역사왜곡의 예이다.

다음으로 '동굴의 우상'을 얘기한다. 동굴의 우상은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비롯된 것인데, 개인의 좁은 소견에서 빚어지는 착각들, 개인의 호의나 편견, 만족이 빚어내는 우상을 말하는 것이다. 어떤 동굴에 죄수들이 갇혀있는데 이 죄수들은 자세와 목이 고정되어있어 어두운 벽만 쳐다보게 되어있다. 그래서 뒤쪽의 불빛에 반사된 다른 죄수들의 그림자만 보고 살게 되어 있다고 한다. 어두운 권력의 맛을 본 자는 권력의 그림자만 쫓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 다음으로 '시장(광장, forum)의 우상'을 얘기한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시장(광장)에서 주고받는 얘기들, 혹은 확인되지 않는 풍문들을 광장에 모인 대중들의 위압감에 사로잡혀 그대로 믿고 따르는 태도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정확한 진실이나 팩트와는 상관없이 모여든 사람들의 소문에 의해서만 진실 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에 실체적 접근과는 상관없이 사람들의 말에 쉽게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우상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의 극복을 위해 베이컨은 언어나 혹은 말보다는 자기 자신의 실제적인 경험의 중요함을 강조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극장의 우상'을 논한다. '시장(광장)의 우상'과 비슷한 것이지만 이것은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나 영화에 의해 가장된 실체, 선호하는 인기 연예인들의 주장을 은연중에 진실처럼 믿고 신뢰하거나 유명한 사람들의 말이라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려는 태도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세속적으로 부하고 성공한 권력은 과정에 상관없이 모든 것이 선한 것으로 믿으려는 심리이다. 베이컨은 이러한 우상들이 한 인간이나 사물의 올바른 실체에 접근하는 장애물이 되기에 이를 극복할 때에만 진정 바른 실체를 규명할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금번에 드러난 국가 최고 권력자를 중심으로 엮어지고 있는 국정농단의 실체는 비단 어제 오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들의 지금까지 이어온 어두운 인류문명의 역사를 그대로 답습하고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타락한 인간학의 문제에서 기인한다. 오히려 문명이 발달할수록 더욱 지능적이고 교묘해지고 있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정치, 경제, 종교, 문화 전반에 걸친 총체적인 바벨론 음녀의 어둠의 세력들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정치권력으로 감추려 해도 불꽃같으신 하나님의 눈길을 피할 수 있는 자들은 아무도 없음을 증거한다. 하나님은 침묵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때가 되어 드러내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성경의 역사는 증명한다. 이러한 거짓 신들의 우상을 드러내시고 만천하 앞에 심판하심으로 그 우상으로부터 돌아서기를 기대하신다.

광장의 우상을 깨기 위해 광장에 모인 수백만의 촛불은 마치 부정과 부패, 불의를 향하신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의 심판의 횃불이었다. 남녀노소, 너와 내가 손에 손을 잡고 화염병대신 약하고 연한 손을 연이어 공평과 정의를 노래한 자들은 기쁨과 축제의 빛이 되었다. 꽃 스티커를 경찰 차량에 붙여주며 수고하는 경찰들을 안아주고, 얼어붙는 손 녹이라고 따뜻한 차와 커피를 내놓는 이웃들은 사랑과 화목의 빛이었다. 모두 한 목소리로 싱싱하고 푸른 상록수, 평화의 행진을 함께 떼창한 자들은 공평과 정의의 빛이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을 기다리며 기대하는 빛의 절기가 시작된다. 차가운 광장의 우상에 사로잡힌 자들은 따뜻한 복음의 광장으로 화하기를 기대한다. 아테네의 아고라 광장에서 사도 바울이 에피쿠로스와 스토아학파와 논쟁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했듯이(행17:17), 이 추운 겨울에 우리 안에서부터 소망의 빛, 평화의 빛, 기쁨의 빛, 사랑의 빛이 횃불되어 타오르는 빛의 절기가 되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혼란에 빠진 우리의 조국이 속히 모든 부정과 부패 권력을 일소하고 진정한 복음의 빛으로 공법을 강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흐르는 민족으로 거듭나는 빛의 절기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johndjc@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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